10. 아시아프가 DDP에서 했을 즈음이, 한국미술시장 2017년 최대 호황기와 맞물려서 출품작도 많고 활발했다. 요새는 침체기다.
2014-2021년 수출호조, 양적완화, 부동산 호황기와 맞물려 자산가치 급상승으로 인해 앉은 자리에서 몇 억의 공돈이 생긴 이들이 여럿있었다. 한 푼 두 푼 시간당 임금으로 벌었으면 안 그랬을 사람들이 몇 십, 몇 백은 그냥 신경 안 쓰고 쓴 편. 꽁돈이 쓰기 즐겁다.
그렇게 집에 그림 걸고 싶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지금은 줄었다.
끝물에 고점에서 판 이들은 매도인이 받아줘서 현금화를 했지만 끝까지 들고 있는 이들은 지금 여윳돈이 없다. 그래서 미술시장도 불황이다. 생필품 등 일차적 소비도 대출금 상환 때문에 매여서 가처분소득도 부족하다.
지금 구매자는 신규진입자보다는 원래 샀던 VIP 바이어 위주고 일종의 애프터서비스, 커리어 지속성을 위해 갤러리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예술계란 원래 그런 패턴이 있다. 정성하 같은 유투브 스타 기타리스트도 캐논 연주 같이 한 두개로 뜬 랜드마크 작품을 만들어 대중에게 인상을 남기고 그 이후는 팬서비스 겸해서 최신 유행하는 곡 커버 올리는 식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11. 이제 시장에 진출하는 작가들이라, "하나도 안 팔렸다"는 낙인이 더 두려워서 도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냥 질러보지 뭐, 안되면 어쩔 수 없고, 하는 흔쾌한 마음으로 살기 어려운 팍팍한 시절이다. 실패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존 작가도 존버하고 있으니 신규진입자에게 사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12. 최근 리뉴얼한 대한항공 프레스티지 라운지 영상(8.18 정식오픈이기에 지금은 초청위주)을 봤는데 거기에 걸려있는 작품은 대개 중견작가거나 교포작가인듯하다. 물성실험하면서 깔끔하고 직관적이고, 너무 트라우마-심리-정체성 같은 어려운 테마로 가지 않고, 구도와 시점에 창의적 배치를 주고, 도예, 조각과 설치미술 같은 입체감있는 작품이 많았다.
아시아프에 걸려있는 작품을 그런 라운지에 배치한다고 생각했을 때 어울릴만한 작품이 있을까? DP가 브라운-블랙 계열에?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13. 과거보다 나전칠기, 도예, 장식 분야가 덜 보인다. 재료비가 너무 비싼 탓이다. 어느정도 돈을 쓰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를 보장할 수 없고, 이미 네임 밸류 있는 중견 작가들과 경쟁해야하는 잔인한 레드 오션이다.
14. 이런 전시회에 출품하고, 순수미술하겠다고 대학원에 적을 두고 끝까지 버티고 있는 이들은 존중받아야할 이들이다.
본래 집이 부자가 아니라면 작품활동으로만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하는게 당연지사다. 여건만 되었으면 나도 유학가고 재료비 마음껏 써서 작품활동을 하고 싶겠다. 집에서 미대입시부터 대학까지는 어떻게든 해주었더라도 그 이후까지 책임져줄 수 없는 곳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로서도 작품을 통해 소득활동을 해야 성취감도 있고 자아 효능감도 높아질테다.
허나 현실은 녹록치 않고 많이들 살 길을 찾아 인접분야로 탈출한다
예컨대 체육계에서 여성은 필라테스, 남성은 헬스트레이너로 많이 이직했던 것처럼, 하나의 큰 시장이 열릴 때 그쪽으로 많이 이동한다.
예술계는 까페 겸직, 까페 오픈하면서 작가 활동을 병행하거나, 임대료 싼 지방에 공방 열거나, 아니면 성인 취미반, 여의도 오피스텔 임대해 직장인 대상 원데이클래스를 열면서 버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게 아니면 광고회사, 일러스트레이터 등으로 취직해버렸다. 영화회사 미술팀이나 화장품회사 같은 미적 감각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편히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수미술로 먹고 살겠다고 배를 곯고 있는 이나, 인접분야로 취직한 이나 자기가 지금까지 최소 7년은 갈고 닦은 기술로 먹고 살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괴리감이 밤의 어둠처럼 마음을 갉아먹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지금은 잠깐 팔렸더라도 내년은 알 수 없다. 한 치 앞 길을 보장할 수 없는 길을 헤매며 걷는다. 누가 이 길이 쉽다했나
15. 아시아프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전액 작가에게만 간다. 티켓팅으로 수익을 감당하는데 대관비가 보장이 안되면 스태프 인건비도 많지 않을 것 같다.
16. 대학생이 출품하는 느낌이고, 졸업 못하고 아직 사회에 완전히 나가기엔 두려운 대학원생까지는 확대된 학생으로서 오케이겠다. 졸업생이 출품하면 너무 애들 리그에 작품을 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졸업하면 무법천지의 약육강식의 세계다. 두려운게 당연하다. 아시아프와 키아프 사이의 어떤 중간 단계는 없을까?
17. 복도쪽 히든 아티스트의 그림은 확실히 완성도도 있고 자기 세계도 있는 느낌이다. 미대생 출신이 아닌 것 같은 그림도 보이고, 나이대가 높을 것 같은 그림도 있다.
기계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갤러리와는 달리 대관료도 없고 수수료가 없는 좋은 행사지만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