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섬과 본섬은 한 대륙으로 이어져있지 않아 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모지코항까지 전차로 온 다음 시모노세키로 연락선을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 이 지역의 부흥은 청일전쟁 배상금 약 2억량의 일부로 건설된 야하타제철소가 견인했는데 1906년 한 해만 일본 내 철강의 90%를 생산했고 2차대전 때도 필요한 철강총량의 절반을 제공했다.


그래서 규슈에서 가장 정주인구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지만 연락선을 타기 위해 멈췄다가 이동하는 방식이 번거로워 칸몬 해협에 해저 터널을 뚫은 이후 중심지로서 기능을 상실해 지금은 관광지화가 되었다. 하카타 후쿠오카로 가는 동선과 겹치지 않았던 것. 한때 부흥했던 도시는 시대가 변하고 제도와 교통의 흐름이 바뀌며 의미를 잃어간다. 충청의 충, 경상의 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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