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allerycrane.com/current/4
평창 갤러리 크레인에 다녀왔다. 가나아트 바로 앞에 있다. 오픈 두 번째 전시로 오경훈전을 하고 있다.
북촌의 페레스가 방을 빼더니 그 윗집 디아, 레이지 마이크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압구정 일본계 SH 등의 해외화랑 뿐 아니라 10년 이상 유지해 온 지역의 강자 합정지구와 인미공도 없어지는 가운데 또 어디에선 갤러리 크레인, 실버팁 등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지는 갤러리도 있다. 팬데믹 이후 굵직한 국제정세 변동 가운데 시장도 발맞춰 새로운 메이크업을 선보인다. 새로 런칭한 곳에는 포부가 느껴진다. 뉴노멀이 될지는 지켜봐야할 일이지만, FSC→LCC의 기조변화와 마찬가지로, 빙하기에는 잦은 트렌드에 적응 가능한 기동성있는 젊은 감각이 지속가능성에 이바지하는 듯 하다. 즉, 위기에는 공룡이 아니라 작고 잽싼 포유류가 살아남는다는 뜻. 기존 제품과 서비스를 분절해 팔고 있는 대기업의 최근 행보도 이와 같다.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지나 커스터마이징, 가성비까지 왔고 이제 익숙한 것의 소분까지 왔다.
오경훈 작가의 작품은 대형연작과 그 측면의 벽에서 보이는 팝아트적 작품과, 대형연작의 맞은 편에 있는 기묘하고 실험적인 작품 2개로 나누어볼 수 있다. viva la ddu ddu ddi va는 약 2m x 3m의 대형인데 외젠 들라쿠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마리안느 같은 인물을 가운데 두고 좌우측이 구분된다. 나무 아래 대각선방향으로 중심점을 향해 바라보는 인물들과, 오른쪽의 구름에 가린 산 아래 수박 먹는 녹아내리는 비인간 형상들은 시선이 산란되어 있다. 핑크빛 파스텔톤이 동화적이면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으스스한 언캐니한 느낌이 든다. 형식과 기법은 판타지스러운데 내용은 전통구도를 따랐다. 그 측면의 벽들도 영웅적인 한 인물을 드라마틱하게 조명하는 팝아트판 그리스로마인물이다. 손기정이 기증한 국중박의 그리스투구 같은 것을 쓰고 고추를 덜렁인채 뛰어 올라가는 아이 영웅을 측면 하단에서 올려다 보는 구도로 영웅적인 모습을 강조한 그림이나 키쓰네멘을 머리에 쓴 채 물동이를 따르는 어여쁘고 조신한 사람까지 속알맹이는 유럽전통회화의 구도다. 배경의 선 표현은 James Jean을 닮았다. 그만큼 화려하거나 과장되지는 않았지만.
한편 그 앞을 마주보고 있는 작품군은 전혀 다른 감성으로 톤앤매너에서 부각된다. 파스텔톤으로 종말과 신화적 각성의 순간을 그리면서 그 중심축을
눈으로 설정해 인물의 심리적 폭발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삼는다.
눈을 크게 뜨고 중심을 향해 내지르는 듯한 표정은 감정이 폭발하는 임계점, 혹은 정신적 전환이나 비극의 순간처럼 느껴진다. 외부로 방사되는 에너지의 흐름를 표현한 기하학적 번개 스트로크와 함께 눈에서 내면의 힘이 외부로 방출되며 감정도 발산된다.
거친 회화적 질감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진 세계, 또는 기억의 마모된 장면처럼 느껴지고, 빛줄기가 눈을 원점으로 하여 터져 나가는 듯한 모습은 내면의 방사이자 외부의 계시같은 인상이다. 세 명의 인물이 숨겨져 있다.
캔버스별로, 테마별로 눈이 다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었음에 주목해야한다. 어떤 눈은 민트나 붉은색으로 가득하고 어떤 눈은 감겨있고 어떤 눈은 세밀하다. 인물의 눈 표현과 시선처리를 기반으로 중심 테마가 정갈하게 정렬된다. 눈 주변의 붉은기와 노랑기의 색 대비는 감정의 과열, 정신적 고양 또는 분노를 나타내는 것 같고, 채도 낮은 녹색 이끼가 덮인 배경의 그림의 말똥말똥한 검은 눈은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 가장 만화적이고 코믹한 눈은 역시 손기정투구를 쓴 아이다. 진지하고 비범하다.
언뜻 사토시 콘 감독의 <Perfect Blue>도 생각나고 Hikari Shimoda의 천진하면서 공허하고 광기있는 짝짝이 별눈(최애의 아이를 연상시킴), Audrey Kawasaki의 기묘하고 매혹적이며 침묵하는 눈도 조금씩 느껴진다.
특이하고 재밌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