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도입 후발주자의 발전단계 징검다리 뛰어넘기
비동시성의 동시성. 전세계의 모든 국가가 다함께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클린턴 시기 메트로폴리탄 뉴욕은 아프리카 국가의 수도에 비해 외계문명급의 신천지였고. 60년대 한국과 일본은 현해탄을 기점으로 이세계나 다름없었다. 저개발국가의 외교관이 선진국에 파견되는 것은 자기나라보다 부유한 별나라에 가는 것으로 흡사 왕이 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엘리오 같은 일이다.
벨이 전화기를 발명하고 국토에 통신선을 깔기 시작한다. 해저케이블도 깔면서 국제전화가 가능해진다. 도시에는 공중전화망이 깔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파망을 사용한 무선전화기가 개발이 된다. 도입 초기에는 경쟁을 하지만 더 빠르고 안정적인 통화품질을 보장하게 되고 유선전화기가 하지 못하는 다양한 기능이 탑재되면서 그간 거액을 들여 깔았던 전화망은 의미를 잃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그동안 지하를 뒤엎어 통신망을 깔지 않았던 국가가 경제발전을 시작하면 이전단계를 뛰어넘고 무선전화기가 보급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섬이 많은 인도네시아, 사막지형 아랍, 국토가 길고 숲이 많은 베트남 등에 스마트폰이 보급된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도 사막에서 도피하는 미군이 아랍 마을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빌려 전화해 미군 본부에 탈출사실을 알린다.
물론 저임금으로 노동집약적 경제구조를 추구하기 때문에 아직 가계소득이 많지 않아 제품은 저가형이어야 알맞다. 영어로는 feasible. 이를 간파하지 못해 라인의 초기 진출이 실패했다. 타이밍은 정확히 계산했는데 보급형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고급형으로 들이밀었다. 비싸더라도 좋은 거 써! 공돌이들의 흔한 실수다. 경제성장하는 나라는 우수하고 좋고 비싼 제품이 아니라 싸고 적절한 가격의 제품이 비교우위에 있다.
컴퓨터도 비슷하다. 수퍼컴에서 퍼스널컴퓨터로 성능이 진화하면서 소형으로 각 가정에 보급된 컴퓨터는 노트북이 되어 이동성까지 보장한다. 20세기 후반 미국과 일본은 이 발달 단계를 온전히 겪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PC를 뛰어넘고 노트북을 먼저 받아들였다. 섬이 많아 PC는 무겁고 운송이 불편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학생들은 PC를 본 적도 쓴 적도 없다고 한다. 일부는 랩탑에서 타이핑을 해본 경험도 없다. 엄지로 스마트폰 자판으로 입력하는 것만 알고 있다. 이런 나라에선 캠코더, 캐논, 필름 카메라 등과 연관된 집단의 문화적 기억이 없고 바로 스마트폰 인스타그램으로 건너뛴다.
교통도 비슷하다. 메이지시대(1872년)부터 전차가 다녔다는 일본은 60년대에 도카이도 철도를 깔아 도쿄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등 철도망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210km/h 정도를 견딜 수 있게 깔았는데 이정도도 당시에는 매우 빠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신칸센이 발전해 360km/h로 주파할 수 있게 되었는데 철도노선이 속도를 버티지 못해 최고 285km/h로 감속해서 주행한다. 노선도 터널을 뚫은 산요신칸센에 비해 곡선구간이 많아 우회해서 시간을 많이 소모한다. 인프라는 초기 도입시 설계에 이후 계속 제약을 받는다. 우리나라도 선구적인 비저너리가 마이카시대를 예상하고 경부선 8차선, 테헤란로 10차선을 깔지 않았다면 지금쯤 멕시코시티, LA, 자카르타, 테헤란 같은 엄청난 교통체증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교통은 아직 통신에서 유선→무선으로 바뀐 정도의 전환점이 완전히 구현되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퍼스널 모빌리티와 드론 등이 그 하나의 밴티지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유선전화 시대에 도심에 공중전화 부스를 곳곳에 배치하고 각 가정의 유선전화기를 위한 통신망을 깔았지만 무선전화시대에는 필요없게 되고 다 들어엎게 된 것처럼. 교통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선로망이 아니라 개인맞춤형으로 이동하게 될 것 같다. 고속도로와 차가 있지만 별개이면서 보조적인 역할을 할 것 같다.
지금 인구가 폭발하고 경제 발달 초입에 들어갔는데 인프라가 깔리지 않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혹은 통일 이후 북한지역에서는 거대한 투자가 필요한 공공 인프라를 점프하고 스윙, 다트 같은 앱기반 개인형 이동장치로 이동하는게 보편화될 것 같다. 마치 무선전화기처럼 편리하고 간편하고 가볍게.
울퉁불퉁한 흙길 위를 편하게 달릴 수 있는 좁은 트랙은 필요할 것 같고 그정도는 깔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호버처럼 부유해서 공기중을 이동할 수도 있겠다. 그럼 목적지에서 목적지까지만 이동할 수 있고 터널도 안 뚫어도 되어서 환경친화적이다. 도착해서 호버를 개인집 태양열 전기충전소에서 고속충전시키고.
금융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출생증명 신분증명 등 사회적 신뢰와 제도를 바탕으로 한 통장거래 기반의 은행금융이 보급되지 않고 핸드폰이 바로 신분증명서의 기능을 하게 되면서 통장 개설을 건너뛰고 모바일 거래로 전환되었다.
요지는, 세계의 나라는 같은 시간선에 살고 있는게 아니라 각자의 경제기술발전에 따라 다른 시대를 살고 있어, 2025년에도 선사시대 초기부족국가를 살고 있는 섬나라가 있을 수 있고, 산업화 전 전근대를 살고 있는 나라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세계에서 어떤 나라가 경제발전의 후발주자로서 뒤늦게 기술을 도입하면 브레이킹 포인트 이전의 기술은 무시하고 간편하고 가볍고 싸고 기동성이 좋은 기술을 먼저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 경험한 선진국의 발달단계를 그대로 밟는 것이 아니라.
후발주자는 패스트 팔로워라 기존 롤모델의 모든 것을 답습할 필요가 없다. 한국은 이제 후발주자가 아니다. 우리는 선도적 모델을 고민해야할 때다. 후발주자는 이제 자신의 때가 오고 있는 저개발국가다. 바로 스마트글래스, 자율주행, 우주스페이스, 푸드테크, 바이오기술, 피지컬AI로 넘어갈지 모른다. 후발주자가 선진국을 뛰어넘는 일은 많이 힘들다. 선진국의 초기모델을 뛰어넘는다는 말일 뿐이다. 선진국은 기존의 모델과 씨름하느라 사회적 비용과 철거 비용을 지불하며 넥스트 테크놀로지 기회를 놓치고 기력을 소진하는 동안 후발주자는 허허벌판에서 최신 모델을 도입해 급성장을 할 것이다. 물론 선진국은 여전히 기술을 선도하고 제품을 고급화하겠다. 100년 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얼마나 인류문명이 천지개벽을 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