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206418.html



다시 ‘씨너스’로 돌아가보자. ‘유럽의 흑인’이었던 아일랜드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백인’이 된다. 미국 사회의 백인 우월주의에 동화되어 흑인들 위에 군림했고, 일부는 케이케이케이(KKK)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처럼 ‘백인성’이란 단순한 피부색이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획득되는 정체성이다. ‘씨너스’는 이런 역사를 뱀파이어가 된 아일랜드인을 통해 풀어낸다. 그렇다, 주크 조인트 앞에 찾아온 이들은 그냥 아일랜드인이 아니라 뱀파이어들이었다.




그러나 동화란 결국 흑인의 문화를 탈취하고 영혼을 빼앗아 무력화하는 과정일 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영화가 또 한편 있다. 21세기 블랙 웨이브 대표작인 조던 필의 ‘겟 아웃’(2017)이다. 이 작품에서 백인들은 흑인 신체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탐하면서도 그들의 주체성이나 경험, 목소리를 철저히 지워버리려고 한다.



모두를 뱀파이어로 만들려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과 뱀파이어가 되지 않으려는 흑인들, 즉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 한판 전쟁이 펼쳐진다. 그리고 아프리카계의 블루스와 아일랜드계의 포크가 스크린 위에서 자웅을 겨루게 된다. 이 영화의 장르는 호러가 아니라 뮤지컬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리고 영화는 질문한다. “사악하다”는 것은 누구의 언어인가? ‘씨너스’는 이 단어를 다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노예제로 인해 삶을 짓밟힌 흑인을 위로했던 건 음악과 종교였다. 음악이 사악한 것일 수 있다면, 그건 그 노래가 노예들을 위로하고, 그들 자신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탱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주크 조인트란 백인들에겐 지극히 사악한 공간, 두려운 공간이 되었다.



쿠글러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2022)에서 아프리카인과 아메리카 선주민의 이야기를 교차시켰다. ‘씨너스’에 이르러서는 그 위에 아일랜드계와 중국계 이민자들의 역사를 덧붙인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했으되, 주류 역사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이들의 사연을 초자연적 스펙터클과 함께 되살려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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