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담 송은에 다녀왔다. 매년하는 송은미술대상을 하고있다. 올해 21회는 권아람 작가가 수상했다.
디스플레이에 스테인리스, 거울을 조합해 평면 위에 여러 시점이 조합하면서 번개처럼 번쩍이기도 석양처럼 붉게 물들기도 한 피버아이 작품이 인상적이다.



<권아람 <피버아이> 2025 LED 스테인리스 슈퍼 거울 철 스크린 가변설치>
아마 많이들 놓칠 것 같은데 1층에 영사기로 보여주는 단어 조합을 3층 독립방에 가면 ASMR 같은 목소리가 속삭여준다. 아울러 이 방의 막다른 끝에는 1번부터 12번까지 넘버링된 설명이 아무렇게 붙어있는 평면이 있는데 측면벽에 보면 그 넘버링에 해당하는 일러스트 12개가 섹션 3개에 나누어 붙어있다.

<권아람 Nowhere Happiness 2012/2025 슬라이드 프로젝터 단어들 가변설치>

<권아람 지니 2025 6채널 사운드 조명 연동 사운드 시스템 도상 그래픽 가변 설치>
과거에 기계장치를 어떻게 상상했는지 케이스를 가져온 것인데, 일부러 관객이 왔다갔다하며 매칭을 확인해보도록 해서 탐험과 발견의 과정을 유도하고 있다. 아울러 5번 자동계산 머신(차분기관)의 아이디어는 2층 복도에 보이는 아주 복잡한 레이어로 구성된 기계장치를 찍은 디지털프린팅에서도 진화된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권아람 이종교배 2025 피그먼트 프린트 검정거울 접착식 필름지에 디지털 흑백 인쇄 가변설치>
이 삽화 12개는 대개 실제 만들어졌다기보다 책 속의 일러스트로만 존재하는 도상이라는 점에 주목해야한다. 처음에는 말로 하다가, 책으로 쓰고 그 다음 그림을 덧붙여서 시각보조를 더하는데, 여전히 실물이 없고 픽션의 영역에 존재하던 아이디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구현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프로토모델이 나오고 시간이 또 지나서 상용화되면 점점 이를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게된다. 전기차, 배터리, 우주선, 미사일, 핵, 프린터, TV, 냉장고, 청소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기술이 그런 단계를 밟았다. 에너지와 시간 소모를 기준으로 오름차순 배열했을 때 말이 가장 빠르고, 글이 그 다음이며, 그 다음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그림이고, 한참 지나서 초기 모델이 발명되다가 투자를 받아 상용화되고 대중에게 퍼지는 단계로 흘러간다. 이때, 상용화가 되면 초기의 아이디어와는 많이 달라진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생각해보는게 생각의 훈련에 도움이 된다.

3층 지니(2025)의 12가지 기계장치에 대한 삽화는 섹션 3개 나누어 배치되어있다. 5번, 6번, 12번이 특이하다.

1)
1번 12세기 아랍 공작모양 자동 손 씻는 기계
2번 고대 그리스 크레타섬 수호 자동 청동 거인 탈로스
3번 19세기 영국 지성의 행진
4번 수학자 헤론의 물과 공기의 원리를 사용한 새소리 아우토마톤

2)
5번 19세기 찰스 배비지의 차분기관(디지털 계산기) -> 2층 5번 이종교배의 아이디어
6번 18세기 자크 드 보탕송의 오리모양 섭취 배설이 가능한 오토마타(기계인형) -> 최근 테이트모던의 이미래도, 리움의 아나카-이도 기계공학과 뚝뚝 떨어지는 바이오펑크를 결합하고 있다. 분비물이 나오고 신진대사할 수 있는 철로 된 기계장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상상의 근원이다.
7번 16세기 그레고르 라이슈 수학 계산(산술)의 우의화(사람모습)

3)
8번 19세기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 삽화. 조각가 제페토는 한국 메타버스 플랫폼 이름이라고 써있다.
9번 피노키오 최초의 모습. 어원을 설명한다. 소나무 피노와 눈(오키오)의 합성어. 그러니까 8번은 제작자 9번은 제작품이다.
10번 그리스 연극유래용어 데우스 엑스 마키나
11번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12번 카라바조가 그린 성 토마스의 의심하는 손(부활한 예수의 못 자국에 손을 집어넣어 확인해보는 장면)이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는 현대인의 손짓과 닮았다고 써있다. 이 부분이 매우 특이하다. 12번이 없었으면 STS나 과학사분야의 기계장치 발달사 같은 아카이빙이었을텐데 이 부분에서 예술가적 트위스트를 더했다.
왜 섹션을 나누어 배치했을지도 생각해보면 재밌다. 관객 각자가 할 수 있는 생각의 훈련이다.
권아람 작가의 작품을 보러갔는데 중간 홀에서 부르고뉴 지방에 작업실을 만드는 브이로그를 찍은 디자이너 에르완 부홀렉의 4막, 27분짜리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아주 재밌었는데 이는 영화 리뷰로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