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계 역사학자이자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니샤 맥 스위니(Naoíse Mac Sweeney) 책이 번역되었다. 펭귄에서 2023년에 나왔는데 10-20년 후 번역되는 케이스도 많은 역사학분야에서 이례적으로 빨리 번역되었다.

아일랜드계 이름이라 나오이스가 아니라 니샤로 읽는다. 작은 아씨, 레이드버드 등으로 유명한 시어샤 로난(Saoirse Ronan)도 이렇게 읽는다. ao합쳐서 이로 읽는다.


서양은 단일하지 않다.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고, 후대에 구성되었고, 필요에 의해 발명되었다, 라는 주장은 이미 학계에서도 검증되고 대중에게도 널리 퍼져있는 주장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 블랙 아테나를 쓴 마틴 버널, 폼페이의 메리 비어드가 이미 서양은 단일한 문명체가 아니며, 그리스로마 중심주의, 르네상스의 재해석, 계몽주의적 전통 모두역사적으로 구성되었다고 수차례 일갈했다. 고인물이다 못해 화석이 된 이야기다. 그런데 무엇이 특별한가?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서양이라는 오래된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은 아닌가?

특별한 점은 기존 비판이 제국사 비판, 지성사적 접근으로 거시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 책은 14명의 개별 인물의 생애를 통해 퀼트형 전기적 역사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도 동양, 아프리카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지 않았다는 익숙한 헤도로도토스로 시작했다가 특히 사피예 술탄이나 기독교 개종한 앙골라의 은징가나 남성 교양인의 전유물 시를 짓는 여성노예 필리스 휘틀리 같은 여러 여성, 소수자를 발굴해서 작은 인물을 통해 거대 담론을 드러냈다.


또한 서양성이라는 개념이 상속된다는 점을 제기했는데, 이 상속은 선택적이다. 아까 말한 필립스 모리스는 고전과 시에 정통했지만 "노예화된 유명인 enslaved celebrity"였고 백인 주류 사회는 진정한 서양의 후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서삼경, 전서와 초서에 정통하고 국악을 전공한 동남아시아인, 흑인, 인도인이 있다면 우리도 진정한 우리문화의 후예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역으로 할 수 있다. 과연 주류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이 책의 이야기는 서양을 케이스스터디한 것일 뿐, 서양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문화가 다 문화적으로는 개방적인 듯 보이나, 인종, 계급, 성별에 따라 배제적으로 작동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펭귄에서 출판되었는데 읽기 쉬운 편이다. 영어 원서를 보면 조금 더 알 수 있다. 기존 탈서양 비판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술술 읽기 어려웠고 고매한 학술 언어에 갖혀있었다. 각주도 많았고 다른 인접분야 이론과 학자명이 수없이 튀어나왔다. 박식한 빌 브라이슨이 튀는 문체로 종횡무진 역사를 서술한 것이 가독성이 좋으나 스펙트럼이 넓은 책의 예외다. (우리나라에는 고 남경태 선생이 있었다)



원서는 영국 12파운드, 미국 17달러, 약 2만1천원선의 400페이지짜리 책이다. 펭귄은 100% 친환경 재생지라 가벼워 들고 다니기 좋다. 물론 재질 냄새는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친환경이라고 홍보하고 사실 비용절감이 목적이다.


한국은 3만2천원(10% 할인 후 2만9700원)이다. 종이재질이 더 좋고 더 무거워 들고다니기 어렵다. 사실상 소장용이다. 한국인은 이런 고급스러운 인문학분야는 양장이 아니면 사질 않는다. 문고본 인문학책은 팔리지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룬 14명 목록은 이렇다

제1장 순수성을 거부하다: 헤로도토스

제2장 아시아계 유럽인: 리빌라

제3장 고대 세계의 국제적 계승자: 알킨디

제4장 재등장한 아시아계 유럽인: 비테르보의 고프레도

제5장 기독교 세계라는 환상: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

제6장 고대를 재상상하다: 툴리아 다라고나

제7장 미답의 길: 사피예 술탄

제8장 서양과 지식: 프랜시스 베이컨

제9장 서양과 제국주의: 앙골라의 은징가

제10장 서양과 정치: 조지프 워런

제11장 서양과 인종: 필리스 휘틀리

제12장 서양과 근대성: 윌리엄 글래드스턴

제13장 서양과 그 비판자들: 에드워드 사이드

제14장 서양과 그 적수들: 캐리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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