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과 한국미술사학회가 주최한 <동아시아 왕실문화와 미술> 학술대회가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후원을 받아 오늘열렸다. 내일까지 이틀간 진행된다.


국가유산청장, 국립고궁박물관장, 한국미술사학회장의 축사에서 정말로 전통과 옛문화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의 말과 분위기에서 옛 것을 향한 떳떳한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이후 이어진 교수들의 강연에서도 학자의 윤리적 태도가 전해졌다. 내가 연구하고 밝혀내지 않으면 누구도 이 작품을 알지 못할거야, 하는 어떤 결의의 태도.


사실 아무리 같은 분야 연구자들이 모여있어도 자기의 말을 다 이해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학문분과가 미세하고 오랜 훈련과 깊은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제가 박막처럼 얇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자는 학술대회에 10명이 앉아있건 100명이 앉아있건 그냥 무대 위 연기자처럼 독백을 한다. 옛 문헌을 내가 읽고 정치한 글로 써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고,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큰 상관하지 않는 눈치다. 대중 전달력은 다소 희생하고 엄격한 사료리딩과 역사적 정확도에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공쿠르상 수상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는데, 연구자는 자기가 연구하는 것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하다.



하버드대 일본미술사 교수이자 동아시아문명학과장인 멜리사 맥콜믹의 기조연설에서 한국미술사학회의 열정과 노고를 칭찬을 하는데, 약간 으잉 하는 의문스러운 말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유익한 토론을 했는데, 맛있다고 말할 수 없는 맛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이었다. 블랙유머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표현인 것 같다. 나름 위트를 주려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 기조연설에서 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한국의 에브리타임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의 교수 평가 사이트 ratemyprofessors의 멜리사 맥콜믹에 대한 평가에 한 유저가 she is not an ice queen(새침데기 아니예요, 콧대 높은 여왕님 아니예요)라고 썼는데, 이 부분이 옛날에 인상깊었던 것이 생각나서 스크린샷 캡쳐올린다. 사실 ratemyprofessors의 수익구조는 평판에 민감한 교수들이 안좋은 댓글을 막아달라고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고 암암리에 알려져있다. 우리나라의 댓글알바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예 안좋은 평도 아예 좋기만한 평도 다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그냥 중간정도의 평에 뜬금없이 not an ice queen이라고 어떤 정보를 준다면 그건 눈 여겨봐야할만한 사실이다. 실제로 그런 말이 있으니까 맥락없이 갑자기 근데 그런 사람은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 그때는 그냥 그런가 했는데, 홍상수 영화에서 늘 등장하는, 생각 없이 말을 약간 밉게 하는 캐릭터가 하는 대사같은 느낌의 말을 들으니까 문득 옛날에 봤던 정보가 생각이 났다. "맛 없었어요"라고 심플하게 하거나, 사적인 자리에서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까 다음에는 다른데가요"라고 해결을 보면 될텐데. 공적 연설에서 "결코 맛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레스토랑이었으나.."같이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심플하게 나중에 맛있는 거 먹으러가면 되지,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게 무슨 의도가 있는지




강연은 별관 강당에서 들을 수도 있고 유투브로도 들을 수 있다. 한영일중 4개국어로 통역이 제공된다. 오전에는 컴퓨터 유투브로 보다가 전시회 보러 오후부터 나가 늦은 오후에는 이동 중에 핸드폰 유투브로 조금씩 들었다. 종료시간이 되니까 아예 꺼져서 뒷부분은 듣지 못했다. 물론 학술대회 특성상 발표집에 논문과 토론문까지 모두 있다. 강연자도 설명을 한다기 보다 문어체의 논문을 읽고, 토론자도 토론문을 그냥 읽고, 토론의 답변이 유의미했다면 언젠가 나중에 다시 논문으로 나오기 때문에 구두발표를 놓쳐도 큰 상관은 없다. 발표집은 온라인에서 pdf로 배포되어있다.


첫 날인 오늘은 조선4개, 일본3개, 청나라2개 발표가 있었다.


조선4개: 조선 궁중회화, 조선중기 태항아리와 후기 어진에 대한 연구

조선 말기(1900년)에 지방 화원에서 어진 화사로 변한 채용신의 인물 연구


일본3개: 쇼무 천황과 쇼소인 보물, 류쿠 국왕 초상화, 일본 궁정의 물질문화


그리고 청나라 2개: 집경조갑, 청 고종 황제의 소상에 대한 연구

여기서 특이한 것은 청나라 연구자 2명 모두 대륙중국이 아니라 대만 타이베이고궁박물원 연사였다는 점.


특히 집경조갑 연구에서 백십건은 상자형 구조의 보물함으로 일본과 유럽의 외래물품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를 청대 다보격과 무엇이 다른가를 비교했다. 토론자는 조선 후기 유행했던 책가도의 형식적 기원이 청대 다보격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다보격이 아니라 백십건아니냐를 질문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하고 흥미로운 주제임에도 현장참석자나 시청자는 대단히 많지는 않았다.



라이브 시청자는 오전, 오후 기준

한국어125, 142명

영어 7, 4명

중국어 2, 11명

일본어 9명, 11명이다.


오전에 컴퓨터로 접속해서 들었으니 오전 중국어 시청자는 나를 제외하면 1명이었던 셈. 현장에서 통역자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정작 시청자보다 통역자의 숫자가 더 많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왜 그럴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너무 전문적

2) 너무 옛 주제

3) 홍보 부족

이라는 모두 생각할 수 있는 당연한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에서 왕실문화가 인기없는 까닭이 하나있지 않나 싶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인물들은 친일논란을 피할 수가 없고 독립과 건국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라가 망했는데 위정자는 무엇을 했느냐는 인민들의 분노가 있었다.


이조가 망했다는 공통된 인식하에, 독립운동은 건국이었던 셈이다.


이승만은 왕가혈통으로 알려져있으나 몰락했고 윗대에 벼슬을 하지못했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는 영친왕의 귀국도 막았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니 정통왕가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일본제국의 항복으로 광복은 기적처럼 주어졌고, 강대국의 패권다툼과 내분 속에 건국이 되고, 다시 냉전구도에 내전을 겪었다. 전쟁터는 한반도였는데 전쟁의 종식은 강대국의 힘으로 이루어졌는데, 종전 후 폐허를 재건하며 먹고사니즘에 바쁘다보니 전통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었다. 가치를 아는 사람도 많이 죽고, 잘 모르는데 일단 배고프니 문화재이든 아니든 그냥 일본에 팔아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군부독재와 싸우고 민주화를 이루어내고 세계화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문득 먹고 살만해져 생각해보니 왕실은 너무 오래 전 일이고, 왕가의 후손이 이런 역사의 분기점에 기여한 바가 없다. 그렇게 왕실문화는 대중의 뇌리에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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