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서 사진 찍는 문제에 대해
2007년 애플 출시 후 화질 좋은 스마트폰이 상용화되며 2010년대 중반 즈음부터 전시장에서 사진찍는 사람의 문제가 생겨났다. 이전에는 무거운 캐논 카메라를 들고와서 찍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지만 이들은 사진을 찍는다는 자각이 있었고 갤러리와 양해를 구하거나 사전협약을 했다. 그 당시에도 사진 찍는 것은 권고되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고 더러는 찍으면 안된다고 써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처럼 엄격하게 사진금지라는 공식표기가 보일정도로 공론화되거나 문제시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크게 의식이 안되었다고 생각. 가벼운 폴라로이드는 기념 사진용이었지 예술사진촬영용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폰 보급 이후엔 비전문가도 모두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문화가 되었고 전시장에 너도나도 사진을 찍게 되는데 관계자 입장에서는 작품보다는 자기 얼굴 찍고 인증샷 남길 뿐인 그들의 의도가 더 불편했을 것 같다. 예술에 관심없고 저작권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윤리적 태도도 견지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사진을 찍어 사이버스페이스에 올리면 그만큼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 오지 않으니 티켓 수익이 더디다는 재정적 문제도 있었고. 그렇게 작품촬영금지를 공언하자 이제 관객들의 불만이 생긴다. 나는 1년에 한 두번 전시보러 오는데 사진도 못 찍게 하냐?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나 혼자 볼건데 왜 이리 깐깐하게굴어?
사회트렌드는 더 많은 사진을 찍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계속 무분별한 사람들을 제지하기도 어려운데다가 현장관리직원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10년대 후반 이후 플래시 없이 사진촬영, 다만 상업적 이용은 금지로 대폭 완화된 것 같다. 이제 희생되는 것은 조용히 전시를 감상하는 자들의 평화. 사진 셔터 소리에 몰입이 깨지고 온전한 감상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이를 뚫고 어쨌든 찍는 사람들도 우후죽순 생긴다. 국내 전시 중 저작권 문제로 사진 촬영 금지하는 작품은 김환기고, 관객 경험을 제고하고자 사진 촬영 금지하는 전시는 제임스 터렐이다.
둘 다 내가 안 찍는다기 보다 얖에서 찰칵찰칵 대는 사람이 없으니 작품이 뚜렷하게 보이고 기억에 오래남는다. 그런데 이들은 유명하고...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SNS에 홍보가 필요한 작가는 관객이 더 많이 찍어서 언급해주기를 원한다. 양극화되는 셈. 절대 찍지 마세요와 꼭 찍어 주세요.
일본은 저작권문제도 있고 몰입적 관객경험을 위해 아직 엄격하게 촬영금지를 하는데 나는 심지어 중국인들이 바디캠으로 몰래 찍는 것도 보았다. 어떻게든 뚫고 촬영하는 사람은 있는 법.
몰입방해, 타인의 감상 방해, 저작권 침해, 예술에 대한 진지하지 않은 태도, 그러나 홍보를 해야하는 문제, 양극화 등등 수많은 문제가 겹쳐있는 가운데 또 다른 문제는 선별적 정의다.
한 친구가 최근 샤갈전을 두 번 갔는데 처음에는 왜 사진촬영금지라면서 찍는 사람들을 제지하지 않지? 왜 전시관별로 느슨한 태도를 취하지? 아직 운영이 세팅 안되서인가? 라고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금지구역이 해제되고 확장된 것과 인스타에 자신은 못 찍은 사진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불만을 표한 적이 있다. 요컨대 왜 규칙을 지키는 자가 피해를 보느냐? 라는 화가 포함된, 이 사람은 허용하고 다른 사람은 제지하는 선별적 정의에 대한 문제다. 나는 그 샤갈전에서 찍지 말라는 작품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조명이 가려져 있는 작품은 이건 문제다 싶어서 사진 찍었다. 반고흐도 찍지말라해서 작품사진은 안 찍었지만 영어 문법오류와 오타가 있는 설명은 찍었다. 이 모두 작품기록용이라기보다 문제점 리포트용이었는데, 그 모든 전시에서 사진을 몰래 몰래 찍는 사람을 두엇 보았다. 걸리면 그냥 재수가 없는거야, 하고 생각하는 듯. 길에서는 새치기하고 도로에서는 칼치기하는 사람들처럼. 올림픽대로에서 강남진입할 때보면 특히 뒤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차들은 무시하고 입구 부근에서 새치기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같다. 한 두번 어쩔 수 없이 그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 대한민국 각자도생 사회야 규칙을 지키면 너만 손해야.. 이런 사람들이 사회 전체을 좀 먹는다.
규칙이면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어야하는데 누군 봐주고 누군 봐주지 않으니 도덕을 자발적으로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누가 도덕을 지킬까? 자기 손해를 입게되면 도덕을 지키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그게 회복되지않고 장기간 지속되면 사회 전체의 선이 하락한다. 적당히 대충대충 상황봐가면서 규칙 어기면서 성공하고 부를 이루어왔던 사람들이 사회를 안에서 썩게한다.
물론 제지는 운영사측의 업무이고 내가 일일이 신경쓰면 작품관람에 방해받으니 굳이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는 편이 내게 이득이다. 다만 선별적 정의는 차별같이 느껴지는데. 샤갈전에 VIP로 초청받은 인플루언서들의 블로그엔 작품이 많이 올라와있었는 것을 보고 다음 날 실제로 갔더니 찍지 말라고 입구에서 제지할 때는 조금 의뭉스럽긴했다. 어디엔 올려져있던데? 그치만 꾹 참고 나도 작품 사진을 찍지 않았다.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황들은 한 두 번이 아니다.
나이 들고 권력있는 사람이 오면 주최측 팀장급 모시고 다니면서 아유 선생님은 찍으셔도 돼요~
김환기 작품이 촬영금지인데 중년 남성이 찍으면 아무 말도 안하다가 중년 여성이나 젊은 남성 여성이 찍으면 환기재단이.. 하면서 설명하는 직원도 봤고
중년 남성이 자기 찍겠다고 뒤에서 헛기침하며 눈치 주는 경우도 있었고
중년 여성이 작품찍겠다고 바로 옆에서 찰칵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촬영제지하자: 알았어 알았어 씁! 조용! 얼마 받는다고 뭘 이렇게 열심히해?
조금 다른 예시지만 현장직원에게 정신데미지를 크게 줄 것 같은 상황도 여러 번 봤다.
어디서 여자가 말대꾸야!
사전 협조 없이 학생들 데리고 개인 설명하는 어느 유명교수: 나 여기 사장하고 아는 사이야
관람객 전체에게 광역 데미지를 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한 청년을 보면서: 요즘 애들 멘탈이 문제야 왜 몸에 뭘 저렇게 그려놨어?
한 여성을 보면서: 젊어서 아이를 낳아야 애가 건강한것도 모르고 쯧쯧 이런 거 보러다니지 말고 남자나 만나야하는데
둘 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쓰고 있어서 매우 다행이었지만 내 기분이 불쾌했다.
다들 정말 왜들 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