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헌을 많이 읽은 학자는 우리가 쉬이 알 수 없는 사실과 통찰을 과거 사료로부터 꺼내준다는 큰 장점이 있지만

대개 글이 만연체에 중언부언(redundancy)하며 핵심을 찌르지(to the point) 못하고 변죽을 울린다는(beat around the bush) 큰 단점이 있다.


유대인으로서 UCLA에서 탈무드를 가르치는 이 다니엘 보야린도 그 예외가 아닌데, 사료리딩이 정확하고 탄탄하며 글맛이 있어서 어쨌든 끝까지 읽게 된다. 서문에 종교적으로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아보려는 것일 뿐인걸요" 라고 학자의 마지막 수단을 취하거나, 왜 기독교와 유대교만 다루고 이슬람은 안 다루느냐는 질문에 "제 분야가 아닌걸요"라고 쉬운 길을 택한다고 하는 부분이 위트있었다.


종교 전문가가 아닌 대다수에게 필요한 인사이트는 세 가지 였다.

1) 나는 뉴 뭐시기야, 새로운 집단이야, 우리는 달라, 나는 정통!, 나는 새롭지! 하면서 젊은 쇄신이 일어나면 이에 어쨌든 기존 집단도 대응해야하는데 그러는 와중에 상호 영향을 주면서 시대와 맥락이 상호 구성된다. 


2) 아주 오랜 세월동안 정통이냐 이단이냐 등의 여러 논쟁이 있었는데 그 근거가 되는 문헌과 용어는 대부분 2-5세기 때 만들어졌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는 그 이전에 이미 형성이 되고 있었던 것.


3) 정통과 이단의 그 사이 어딘가 그레이한 영역에 어느 편에도 들지 못한 소수 파벌이 있는데 이들도 포함해서 하나의 네러티브를 완성한다. 즉, 보이는 주류 대다수가 종교의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것. 하나의 교단이 택하지 않은 길을 톺아보는 것도 선택한 길을 톺아보는 것만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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