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에 올라온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마라> 봤다. 비운의 창고영화로, 7년 묵힌 영화다. 물류창고 컨테이너 보관기간도 3년이 최대고, 심지어 인삼도 7년 이상되면 썩는다는데. SNL 숏폼 트렌드도 몇 주면 바뀌는 세상에 7년을 묵은 비운의 창고 영화다.
1. 구체적으로 왜 7년이냐? 찾아보니
2018년 12월에 크랭크인했는데
2019년 3월에 크랭크업하고 5년 7개월만인 2024년 10월에 개봉하고 8만5천명이라는 처참한 기록을 안은 채
2025년 6월에 세컨드런으로 넷플릭스에 넘어왔다
2. 연기는 좋다. 특히 김대명의 연기가 준수하다.
3. 유태오 배우가 중국 범죄조직 보스의 똘마니로 도살 전문 망나니로서 도끼칼을 들고 고광석(허동원 분)을 막 베는 장면이 있는데
유태오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2022년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 2023년 패스트 라이브즈(셀린 송 감독)보다 훨씬 더 어렸을 시절이다.
영화가 얼마나 타이밍이 늦었는지, 그 기간 동안 사람이 얼마나 자랐는지, 시간이 지나며 얼마나 얼굴이 성숙해갔는지 볼 수 있다. 유태오가 이렇게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면 포스터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단역이다.
4. 한창 2017년 즈음에 개봉했으면 범죄드라마, 느와르, 액션 스릴러 그리고 범죄경찰의 피카레스크극으로서 재밌었겠지만 코로나의 타격으로 시절을 많이 잃었다.
5. 인천 화교나 중국 범죄 조직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도 문제지만, 한국에 넘어온 중국 범죄조직보스의 중국어가 너무 형편이 없다. 한국인 배우인 것이 너무 티난다. 거의 페이퍼타올이 요기잉네 수준이다
6. 극의 진행이 중간부분부터 힘을 잃는다. 동기가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고 관객에게 그 설득력을 잃은 까닭이다. 특히 메인캐릭터의 중간 행동전환은 납득이 잘 안된다. 무엇보다 아이 수술비 마련이라는 모든 행동의 이유가 너무 올드하다는 것이 함정. 캐릭터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다 이 선량하고 어린 아이의 비싼 수술비를 마련해야하는 당위성에서 비롯되는데
과연 아이는 무조건 선한가? 개인적 불행이 사회적 범죄를 정당화하는가? 라는 질문이 남는다.
7.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처럼 느와르의 엔딩은 무조건 아이와 함께 해외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헬조선을 탈출해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동남아 휴양지에서 40억 플렉스하면서 살고 싶은 한국인의 꿈처럼 느껴진다.
8. 8. 영화에서는 공중전화가 등장한다. 핸드폰을 버리고 도망치는 형사가 주인공과 연락하기 위해 사용한다. 아직도 재난 등 공공적 필요에 의해 공중전화를 유지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이는 드물 듯하다. 특히 MZ세대 중에 공중전화를 사용해 본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일단 동전을 안 들고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 상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지 않다. 그래도 10년대까지는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로 공중전화를 이용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역사 안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공중전화신이 과연 오늘날 대중에게 소구력이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찾아야할 정도일 듯한데. 무엇보다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통신매체의 발달은 사람들의 소통방식뿐 아니라, 영화 속 연락장면의 연출방식도 함께 바꿔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삐삐와 공중전화의 시대는 5091(오늘밤에 전화해줘)를 받고 공중전화에서 집전화로 연락했다. 영화에서는 상대를 다방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장면이 많았다. PC통신과 삐삐를 통해 익명으로 소통하면서 점점 사이가 가까워지는 서사인 <접속>이 대표적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선 공중전화를 통해 만나고, <올드보이>에서는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술 취한 채 가족하고 통화하다가 머리를 가격당하고 사립 감옥에 갇힌다.
이후 벽돌폰이 등장하면서 이동 중에도 통화가 가능해졌지만 메시지 전송은 제한적이어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감정을 전했다. 애니콜 시대에도 한 달 요금제에 따라 문자 알 수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긴 메시지를 여러 번 보낼 수 없었다. 카톡과 완전히 다른 감성이다. 게다가 이때는 지금의 자판형 키보드 쿼티와는 달리 버튼 하나에 여러 글자가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엄지로 버튼을 여러 번 눌러서 기호를 입력해야했다. <봄날은 간다>나 <클래식>에서 영화 속 연인들은 몇 번이나 버튼을 눌러 잘 자 한마디를 보내곤 했고 이런 짧은 시적 한 마디에 많은 감정과 의미를 부여했다. 또, 답장이 오기까지의 간절한 기다림이 극의 긴장감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 통신매체의 발달은 커뮤니케이션기술, 도구 제도의 발전이면서 동시에 생활양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사람이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리듬, 속도, 거리감, 기다림에 관여하고 관계의 진정성과 만남의 피상성 등을 함께 변화시킨다. 이러한 소통의 모습이 옛 영화 속 연출방식에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의 시대. 영상통화, 실시간, 무제한, 장문의 메시지, SNS에, GPS 위치공유까지 연락방식은 다양해졌고, 이에 맞춰 영화 속 등장인물 간의 연락방식, 관계 거리감도 달라졌다. 지금은 필요하면 바로 연락하고, 연락을 안 받으면 "아이씨 왜 전화 안 받아!"라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접속> <클래식> 때는 상상할 수 없던 대사다. 느리게 다가오던 감정의 고조 대신 즉각적 반응과 끊임없는 연결이 새로운 서사의 리듬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