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영화 엘리오 보고왔다. 오늘 개봉했다.


마블은 페이즈 4,5,6까지 가면서 이전의 작품 대략 36개를 거의 다 봐야 서사진행, 캐릭터설명, 떡밥과 복선을 다 이해할 수 있는데반해 디즈니는 시리즈가 30개에 달하지만 몇 개를 건너뛰어도 감상에 전혀 지장이 없다.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자꾸 찾아오면 나에게 길들여진다고 했는데, 디즈니 역시 스토리 구조와 선명한 기승전결의 스타일과 가족 중심주의를 대중에게 명확히 습득시켜서 디즈니 영화는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맛이다. 이때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해 인종, 문화, 배경 등 내부 요소를 다르게 조합한다.


예를 들어 모아나는 폴리네시아 배경에 바다항해 소재에 환경생태와 공동체서사를 조합해 족장 가문의 외동딸로서 전통과 책임 사이에 갈등을 겪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렸으며

코코는 멕시코 배경에 사후세계 소재에 대가족 전통과 잃어버린 아버지 서사를 조합해 뮤지션이라는 꿈의 억압과 기억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이야기를 노래했고

메리다와 마법의 숲(Brave)는 스코틀랜드 배경에 중세 판타지와 모녀전쟁 소재를 조합해 자율성을 요구하는 딸과 억누르는 엄마 사이의 세대 갈등을 표현했고 

비슷한 방식으로 엔칸토는 콜롬비아 배경의 라틴팝 뮤지컬애니메이션이고 루카는 이탈리아와 바다괴물 이야기이다.

그런데 너무 한 문화권으로 이야기가 치중하면 해당하는 나라에서만 각광받고 전세계적 흥행은 더디다는 것을 깨달은 디즈니가 최근들어서 그런 뾰족한 소수자성은 다소 지양하고 보다 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접근성 있는 보편 서사를 추구한다. 예컨대 엘리멘탈은 한국계 감독이 만든 한국 이민자 이야기지만 페르시아 이민자나 다른 미국내 이민자들에게도 설득력이 있도록 캐릭터 디자인을 바람, 불 등 오행원소로 바꾸었다. 만약 얼굴을 한국인으로 했다면 그나마의 흥행도 없었을 수 있겠다.

디즈니애니 중 최저 수익을 기록한 비운의 작품 메이의 새빨간 비밀(Turning Red)는 1억 달러넘는 심각한 손실이 났다. 한국인들이 많이 뛰어넘었을 법한 두 디즈니 영화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카 시리즈(사실 세 편)인데 미국의 자동차에 대한 애착과 중부, 서부 횡하고 황량한 사막 지역풍경을 알고 있어야 감정적 몰입이 가능하다. 메이는 중국계 이민자와 여성성장서사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둘 다 구체적 묘사는 차이가 있어도 미국땅 위에 살아가는 자들의 정서가 아주 깊게 배어나온다. 그래서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같은 외국을 그리지 않아도 상당히 이국적 느낌이 난다. 비유하자면 우리 내부의 또 하나의 외국, 국내의 국제인 것이다. 말하자면 도심 외곽 지역에서 벌어지는,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다문화 소수자 서사같은 것이다.


메이의 감독은 도미 시(Domee Shi)는 흥행 참패라는 뼈저린 와신상담을 딛고 이번 엘리오에서 공동 감독으로 복귀하며 너무 소수에게만 호소하는 서사는 버리고 보편성을 획득하려했다. 과도한 PC주의 논란 이후 피트 닥터가 복귀하면서 잘 매만진 티도 난다. 부모 없이 라틴계 고모 밑에서 자라나는데 여성군인이고, 이름은 러시아스러운 올가이며, 스패니시 이민자가 보통 부유한 백인이 등장하는 SF물의 주인공으로서 외계여행을 한다. 중간에는 물리 잘 하냐고 흑인 남자청소년에게 물어보는 장면을 삽입해 백인 남성 중심인 과학계에 아프리카 미국인의 참여를 간접적으로 독려하기도 한다. 스페인어는 처음에 황금색 원반 돌릴 때 한 번만 등장한다.


참고로 토론토라이프의 기사에 따르면 도미 시의 도미는 낯선 이름인데 doumi 콩 두豆에 쌀 미米로 중국 충칭에서 태어나 2살 때 캐나다로 이민간 석자여(본명 한자발음)의 부모님이 대충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콩과 쌀, 두미다.

https://torontolife.com/culture/how-domee-shi-turning-red-became-new-pixar-superstar/


잘 만든 SF작품은 미국에 많고 주인공이 라틴계라도 클리셰는 기존 레퍼런스에서 따올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드니 블뇌브 감독의 컨택트(Arrival, 2016)에서 외계인과 조우할 때 나온 직사각형의 공간이 엘리오가 우주선에 빨려들어가서 외계인과 조우할 때 똑같이 등장하는데 공간의 색감은 차가운 백색이 아니라 터렐스러운 하얀핑크빛의 색감이다.


디즈니 기존 시리즈가 생각나기도 핟나. 소울스러운 캐릭터 디자인에 인사이드 아웃스러운 표면 질감에 토이스토리와 버즈라이트이어, 월-E스러운 우주배경이다.


봉준호가 확실히 미래적 취향을 가졌다. 최근작 미키17에서 굼벵이 같은 외계인을 귀엽게 연출했는데, 엘리오에 이르러 글로든은 확실히 무해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곤충류다. 특히 목소리도 10대 이하의 귀여운 어린아이라서 더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생각해본다면, 스타워즈나 스타트렉처럼 인간의 외형이지만 골격이나 피부구성이나 언어가 다른 자가 외계인이라는 상상에서 한층 더 진일보해 곤충까지 외계인의 범위에 들어왔다. 이전 영화에서는 레이저총 쏘아 죽일 몹에 불과했었다. 그만큼 인간적 유대감의 범위가 확장되었다. 피터싱어가 제창한 윤리적 범위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글로든 캐릭터는 갑옷이 외골격이 되는 갑각류라는 점에서 마징가Z부터 시작해 무적캡틴사우루스, 제이캅스(우리방송에 상영된 버전 제목은 K-캅스) 등의 로봇 변신 합체 만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일본의 70-80년대를 호령한 변신물로서 서양의 과학기술이라는 외피를 입어도 정신만큼은 동양의 어린아이가 조종한다는 개항시기의 화두, 동도서기, 화혼양재를 솜씨좋게 시각화한 작품들이다. 엘리오에 그런 아이디어는 없다. 다만 캐논으로 쏘아서 죽이는 시연할 때 꽃 같은 연약한 존재를 쏘는 것이 특이하다. 어린 아이들을 감안해서 톤다운해서 표현한 것이다. 비군사적, 연성목표물에 큰 탄환과 과도한 중화기로 쐈으니, 무기와 목표물의 성격이 맞지 않은 부적절한 할당, 미스매치된 타겟이다.


특히 눈에 띄이는 레퍼런스는 엘리오가 지구의 리더로서 그라이곤 군주의 침입을 막겠다는 연설을 하는 장면에서 보이는 스타워즈 은하의회를 닮은 연단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amphitheater)에서 레퍼런스를 따온 부분이다. 거대한 반원형 구조물의 중앙 하단에 발언을 위한 연단이 있고 그 주위로 계단식으로 배열된 수백 개의 캡슐형 의석이 벽면을 따라 원형으로 층층이 배치되어 있는데 각 의석에는 의원들이 앉아 있어 이 발언자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도 나왔던 대학 계단형 강의실같지만, 중심의 발언자에게 모두가 시선을 집중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다수의 의원이 위에서 권력자 한 명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탑다운의 권력구조가 읽힌다. 이런 배치는 발언자가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으나 청중은 집단으로서 익명성을 보장받는다. 왕관을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권력의 횡포를 제어하기 위한 건축공간이다. 그러나 그 권력구조가 투영된 권력공간을 기형적으로 반영해 소시민적 외계인 대사들은 위협에 대응하기는 커녕 도망가기에 바쁘고, 지구에서 이제 막 도착한 철부지 아이에게 그라이곤 군주의 침략이라는 거대한 임무를 떠넘기다.


이때 이 대사(앰배서더)들의 대사(말)도 스타워즈의 영국 의회 억양을 많이 따왔다. 

계속 음료수 쭉쭉 빨아대는 헬릭스 대사는 물론 영국 중년 남성 귀족처럼 예의바르게 말하지만 기회주의적이다.

마인드 리딩을 할 수 있는 퀘스타 대사는 영국 중년 여성 귀족의 억양과 표현을 사용하고(그러나 성우는 파키스탄 혼혈이다) 개중 가장 현실적이고 배려심이 있다.

중량감있는 조각처럼 생긴 테그맨 대사는 말이 조각조각나고 절뚝절뚝거리며 말하는 것이 스타워즈의 드로이드 C-3PO를 모델로 한 것 같다.

그라이곤 군주가 확실히 권위적인 미국 중년 남성 억양이다.


그럼 엘리오의 다른 디즈니 작품과 차별화는 무엇일까?

일단 보통 한 번 삑사리 개그를 넣어주는데 그런 부분 없이 서사가 직선으로 쭉 진행한다.

예를 들어 미국 너드남 식의 웁스! 실수! 하는 식의 개그코드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은 없다.

특히 나올 법한 부분은 우주선이 쏜 빛의 터널을 통해 빨려들어가는 장면인데, 원래라면 그 장면에서 한 번 쿵 하고 떨어지거나 했을 것이다. 지구에서 자기가 있을 곳은 없어 우주인에게 납치당하고 싶어 해변에 SOS신호그림을 그리고, 우연히 고모 일터에서 잡힌 외계인 메시지에 답신을 보내고, 땡땡이와 부적응으로 인해 고모가 보낸 단기캠프에 갔다가, 학폭과 다구리의 위협에 도망가다가 외계인에게 납치당하는 기승에 해당하는 부분이 경제적이고 속도감있게 진행된다. 무엇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삑사리 개그 하나 없이 외계행성까지 스트레이트로 직진한다.


지금-여기의 공간에서 소외되고 자기와 멀리 떨어진 외계행성에서 진정한 친구를 만나고 성장을 한다는 표면의 서사지만 외계행성을 외국이라고 생각하면 이중의 메시지가 읽힌다. 어느 누구는 자기가 있는 공간과 불화해서 저 멀리 나와 언어 문화 지역 기후가 다른 곳에 가야 편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민을 가고 유학을 가고 하는 것이다. 엘리오의 집은 풍요로운 물품으로 가득차있고 글로벌 사우스의 저개발국가의 평균삶에 비하면 호화로운 삶이지만 엘리오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물질과 관계없이 정신이 다른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중동에서 가부장제와 여성인권억압과 전통종교의 압박에 신음하는 이들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런 것을 문제로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들, 즉 문화적 외계인들 사이에서 더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한국사회가 불편한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굴레과 족쇄가 전혀 문제가 안되는 또 다른 문화적 지역적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동했을 때 당연히 수반되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새로 배워야하는 언어와 다른 문화적 관습. 엘리오는 언어를 통역기로 너무 쉽게 처리했고, 처음보는 우우우가 미국문화식으로 대화모드를 체인지해준다는 점에서 과도한 환상이 녹아있다. 예컨대 중력 원래대로 해줄까요?에 대해 엘리오가 I'm fine 괜찮아 했는데, 발화된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맥락적으로 겸양의 표현으로 생각해 중력을 원래대로 바꿔주고 (괜찮아라는 말에 사회맥락적으로 적절한 패턴으로 바꿔서 대응했다는 뜻) 웰컴드링크도 준다. 외계인도 과도하게 영국식 매너가 배어있고 이계의 존재가 누군지 확인없이 환대와 배려를 베풀어준다.


하이퍼점프가 가능한 공간까지 가기 위해 우주 쓰레기(debris)가 있는 지대를 넘을 때 맥맬의 신호가 끊긴 곳에서 전세계의 무선동호회가 무정부적 용병집단처럼 등장해 파편의 동선을 분석해주는 부분은 스타워즈 로그원이 생각난다. 베트남, 일본의 무선동호회(일본은 곤니찌와! 까지 말해준다)까지 등장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공식 기관들이 좋은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도와준다는 언더독 서사다.


고모인 올가의 캐릭터 디자인은 영장류의 턱과 같은 하관 구조에 입꼬리에 팔자주름이 살짝 걸리게 했다. 캐릭터 배경은 부모노릇 교본을 공부하며 맡겨진 형제or자매의 아이, 즉 조카를 돌보는 것인데 이 역시 확장된 가족형태로 특이한 구조다. 아이 기르기 도감 보면서 공부하는 것은 굳이 최신은 아닌 패런팅 트렌드지만 미국적이다. 그녀의 위치 궤도관찰대(즉 과학부대) 여군 소령에 유년기에 해병대 단기캠프를 다녔다는 점은 특이하다. 그리고 캠프 담당자에게 아이가 코 조금 다쳤는데 너네 인성함양방침에 문제있다고 상관에게 따질거라고 클레임 거는 모습은 정말 최근 엄마들의 모습이다. PTSD...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는 2005년에 나와 젊은 청소년의 yo 하는 대사를 비판적으로 느끼는 어른세대를 묘사한 바 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사회언어학적으로는 매 세대마다 즐겨 사용하는 표현, 억양, 어휘가 다르다. 브레이킹 배드의 아내 스카일러 와이트는 제시의 표현을 불편하게 느끼지만 엘리오에서는 그런 장면은 없다. 그저 같은 언어라도 세대별로 다른 표현을 쓴다는 예시일 뿐. 엘리오에서는 대표적 MZ세대 어휘로 shredded가 사용되었는데 보통 잘게 찢긴 치즈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지만 요즘에는 근육 질감이 잘 쪼개졌다는 뜻, 즉 몸 좋다는 말로 사용된다. 헬스짐에서의 운동 트렌드를 반영한 어휘다. 슈레더는 파쇄기로 보통 알려져있지만 석션(흡입)이 치과에서 피와 침 빨아들이는 흡입기로 쓰이는 것처럼 의미는 같을지라도 다른 분야와 상황에서 다른 맥락으로 쓰이는 말들이 있다. 사회적 동음이의어의 범위가 한자(명청중국어)에서 영어까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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