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있는 일민미술관에 다녀왔다. 시대복장, 혹은 컨템포러리 아웃핏이라는 제목으로 패션트렌드의 최전선에서 경주하고 있는 세 스튜디오 지용킴, 포스트아카이브팩션(파프), HYEIN SEO의 아카이브전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전시다.


뮤지엄의 전통적 유물배치나 인스타그래머블한 상업전시와 청담 한류거리의 브랜드 디스플레이, 이 셋 어딘가 사이에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의 전시 디스플레이다. 스튜디오의 쇼룸처럼 옷을 진열해놓기도, 선블리칭 즉 해에 탄 자국을 남긴 옷과 회화작품을 병치시켜놓기도, 영사기를 활용해 레트로한 느낌의 사진들을 찰칵찰칵 거리며 보여주기도, 벽에 나란히 작업사진을 배치해 평행선을 따라 걸으며 그 과정을 만끽하게 해주기도, 설치예술품 같은 디스플레이 무지개다리를 보게끔 하기도 했고, 재봉할 때 신체부위 선을 따라 그린 패턴종이로 바닥을 꾸며놓기도 했다.



전시된 작품보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더 눈길이 간다. 성수, 연남, 맥북, 노마드, 무채색 검정 재킷에 테크웨어 백팩, 유명 브랜드 신발, 타투, 높은 확률로 담배 혹은 전담, 직업은 콘텐츠 디렉터 혹은 크리에이티브 매니저 혹은 스타일리스트. 아이덴티티를 다루며 스타일이 본질이라 생각하는 이들. 브랜드의 철학을 입히고 힙한 시각언어로 풀어내고 최신 바이럴의 맥을 짚는다. 그들에게 어쩌면 패션은 몸에 걸치는 직물이 아니라 애티튜드이고 세계를 해석하는 렌즈일지도....


워라벨은 희미하고 일과 삶이 섞여있다. 협업자들과도 뒤엉켜 작업하고 섞여 지낸다. 시대의 공기를 읽는 자들. 고정된 전통대시 유동하는 액체근대를 선택한 이들. 이 힙함 뒤에는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과잉노출의 피로와 늘 리뉴얼된 감각을 요구받는 압박감이 상시대기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삶의 방식 자체가 브랜드이기에 늘 최신버전으로 업데이트되어야만 한다.

중력과 수직하중을 다루는 건축. 몇 백톤의 철근과 콘크리트가 압력을 분산하는 방식. 오랜수련의 서예. 안료의 광도와 종이의 온도를 미세하게 감각해내는 전통예술. 이들도


예술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진영에 살고 있는, 근미래에 살고 있는 패션업계 사람들. 덧없고 빠르고 가시적이며. 감정은 옷으로, 옷과 함께 찍힌 사진으로 표현되고, 날씨의 온도는 옷감의 두께로 나타나며 존재의 정체성은 한 장의 룩북으로 고백된다. 그들의 청춘만큼이나 잠깐 존재하고 사라지는 패션트렌드에 대해 질척이는 아쉬움이나 죄책감을 갖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최대로 즐긴다.


이들의 감각은 기분과 다르다. 기분은 변덕스럽고 감각은 훈련되고 날카로우며 정련되고 정제된 감성이다.

이들의 삶은 동경을 불러일으킬만큼 세련되었다. 이 세련됨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면의 근거를 겨냥한 균형감각이다. 불안과 기대, 피로와 몰입, 존재의 공허를 모두 음미하며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유없는 믿음 사이의 어떤 늘쩍한 바람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 누군가 묻는다면

그들은 약간 웃으며 대답한다.

"지금처럼 그냥. 계속 뭔가 만들어내고 적당히 흔들리면서 그렇게 그냥 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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