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아트센터 제주갤러리에서 제주시 전경을 그린 수묵 병풍을 전시하고 있다.
인사동과 제주가 무슨 관련? 의문이 들겠지만 제주뿐아니라 경남 광주+전남 부산 등도 지역정부의 보조금을 받아(5천만/년정도) 서울 도심부 인사동에 전시장을 전진배치해 지역작가를 위한 전시회장을 제공하고 있다. 충남(CN갤러리)이나 전북(분관)처럼 북촌에 별도의 빌딩에 전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곳도 있다.
이번 제주갤러리 전시에선 제주도청의 커미션을 받아 제작된 호암 양창보의 북군십경(2003)이 관객의 시선을 흡입한다. 폭4.9mx높이1.9m에 달하는 거대 10폭 병풍으로 북군, 즉 북제주의 풍경을 양껏 담았다. 감상할 때는 1폭씩 위아래를 흝으며 전경 중경 원경을 감상한 다음 다시 좌우로 고개를 도리도리 돌리면 수직과 수평을 모두 만끽할 수 있다.
시선의 위치를 보면 한라산이나 중산간일텐데, 어떻게 해도 제주 북쪽 지역 전체를 한 시야각에 다 담을 수 없다. 그리하여 병풍에 그린 풍경은 기계적 축척도나 미니어쳐가 아니라, 작가가 재현한 심상을 그린 상상의 세계다. 따라서 거리를 줄이고 일부는 확대하고 어떤 것은 없애거나 부각시키는 등의 조정을 거쳤다
영역왼쪽부터 1폭 우도영일은 동쪽 끝단 세화 종달리 인근이다. 위에는 일출의 해가 그려져 있는데 오른쪽 끝 10폭의 우측상단 일몰의 해와 더불어 일월오봉도의 구도를 닮았다. 해와 달 대신 일출해와 일몰해를 각각 병풍 좌우측 최상단에 배치한 것. 다만 원래 해 뜨는 위치는 다소 아래쪽 성산일출봉이고 우도 부근이 아니지만 회화적 허용이라고 보자.
2폭 비림완교는 미점준으로 비자림숲을 그리고 후미에 지미봉을 배치했다. 제주 오름 중 가장 경사가 가파르고 100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거짓말 같은 봉우리다. 근경 중경 원경 삼단 구도에 따라 감상할 수 있는 조경이 달라진다. 근경에는 빽빽한 숲이 시선을 훔치고 중경에는 복수의 오름이 위치하며 원경은 바다이며 바다 멀리 지평선으로 시선이 소실된다.

3폭 동원기봉은 발묵법 선염법으로 다양한 농담과 음영을 표현한 오름들을 표현했고 4폭 교래석원에 이르러 돌문화공원과 토템적 느낌이 드는 액운방지 목적의 방사탑(사악함 방지 탑)이 등장해 드디어 인위적인 사람의 흔적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문명의 이기에 반하고자 의도적으로 지금은 없는 원시적 자연 그 자체를 부각시키거나 콘크리트 건물이나 시가지는 의도적으로 없앴다. 문명의 자취는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했다
5폭 엄장해암은 신엄 구엄을 따라 줄지어 있는 기암괴석을 부벽준으로 찍듯 끊어 그려 붓질의 스트로크감이 느껴진다. 갈필로 마른 느낌을 주어 주상절리를 표현했고 먹의 농담을 차분히 살피며 순차적으로 쌓아 나지막한 오름의 갭직한 능선을 나타냈다.

6폭 효봉야화는 새별오름의 들불축제를 표현한 것이다. 조선도 현대도 아닌 시대가 불명확한, 허나 확실히 옛날 인물이 모여서 축제를 하고 있다. 이는 작가가 생각하는 개발주도 산업화와 소비자본주의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제주 본연의 사람들이다. 무진기행에서처럼 이미 상실되고 없어진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리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제주 앞바다를 떠다니는 바지선과 통통배는 그린 것을 보아 배는 위협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 두척도 아니고 십 여척이 바다위를 통통 떠다닌다. 아마 돛을 두 개단 당도리배나 조운선을 그렸다면 조선느낌이 물씬 나서 이를 우회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7폭 추자조어는 원경의 추자도에 눈길이 간다. 낚시 그리는 인물이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듯 현대적 패션을 하고 있다. 인물은 축척을 무시하고 바지선과 크기가 비슷하다. 추자도는 실제로 훨씬 떨어져있어 보이지 않는데 당겨와서 표현했다. 원경의 현대느낌과 대척점에 근경에는 산업화되지 않은 선사시대 감성의 원초적 제주를 위해 초가집을 그려 대조시켰다.

8폭 팽림월대는 터치를 쌓아가는 적묵법으로 명월리의 팽나무 군락과 명월대와 명월교를 그렸는데 이런 조형이 있어야 겸재정선같은 전통 걸개그림 같아보인다

9폭 비양탐경은 한림읍 비양도, 10폭 차귀낙조는 수월봉이며 하단은 여백으로 남겼다
이제는 다시 만나지 못할 옛 마음으로 그린 제주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