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어려움, 아니 고급 영어의 어려움
학창시절에는 문법과 단어암기가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 독해가 더 중요하고 독해는 어휘에 기반한다.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에 비해 영어문법은 그렇게 어려운 편이 아니다. 영어의 위대함은 사실 어마무시한 어휘량에 있다.
최근 10년간 수능지문은 전문가도 이해 못할정도로 어렵지만 학생들은 문제풀이 스킬로 푼다. 진정한 독해가 아니다. 대입의 고비를 지나면 토익 토플이 기다리고 있는데 뉘앙스 구분없이 일단 동의어로 암기하고 템플렛 외워서 시험보고 끝이다. 독서하며 맥락 속에 학습한 어휘가 아니어 다 휘발된다. 시험용 입시용 영어다.
대학, 유학, 취업 등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허들을 넘고나면 독해의 망망대해가 기다리고 있다. 유학가서 thesis를 쓰고 전문 용어는 해도 소설, 문학책을 읽어오지 않았으니 꼬꼬마영어가 안된다.
잡다한 독서량이 적으니 전문영역만 넘으면 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핀, 양자역학, 전기화학식은 줄줄 나와도 shiver, grin같은 어린이도서에 나오는 말은 잘 모른다. 잘못이라기보다, 현지인과 깊이 소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 꼬꼬마 영어부터 쌓인 독해량이 없으면 내 마음 속 진심을 전하는데 한계가 있다. 석박사 논문을 코퍼스로 삼아 소통하는게 아니기 때문. 말이란건 내가 보고 듣고 읽고 느낀 문장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국제학교를 다녀서 영어 회화를 잘 해도 정작 미국에 가면 대화의 주제를 따라잡기 어렵다. 미국인은 이 친구가 말은 잘 하고 발음은 좋은데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느낀다. 슈퍼볼, 셀레브리티 이슈 등등 미국인이 관심갖고 있는 이슈에 대해 숟가락을 얹지 못한다.
한국인도 휴남동이나 경애의 마음이나 김지영같은 도서를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잘 표현할지 배워나간다. 서울대 권장도서 우파니샤드가 아니라 이런 독서에서 소통을 위한 문장력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