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양지에 있는 벗이미술관에 다녀왔다. 남부터미널에서 양지IC까지 고속버스로 3700원이다. 보통 양지IC는 이천, 곤지암, 충청을 거쳐가기 위해 지나가는 곳인데 중간에 내리니 똥싸다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너무 일찍 정거장에 내렸다, 이게 맞나 같은 의뭉스러움. 주변은 아파트가 많은 베드타운보다는 교통의 길목에 있는 조금 세련된 읍내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으로 치면 파발로, 역로에 있는 중간 기항지나 나루터의 감각이다. 은하철도 999의 모든 행성이 그러한 스쳐가는 우주의 주막같았다.


벗이미술관은 비제도권 작가, 소외계층, 장애인, 영세민의 아웃사이더아트 전문미술관으로 미술관 이름은 영어의 가치v 노력e 책임r 배움s 자립i의 첫 글자를 따온 베르시VERSI라고 표기하고 한국말의 친구라는 뜻의 벗이로 읽는다.

지금은 오스트리아 작가 4명과 미국 작가 1명의 전시를 하고 있다. 거친 표현주의전. 개중 미국 작가는 전문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는 독학파(self-taught)작가다.


이로써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래된 전제를 정면으로 맞서고 부순다. 미대출신만이 예술가인가? 제도 밖에서 솟구친 창작의 본능을 원초적인 언어로 드러낸다. 이러한 아웃사이더 아트는 테크닉 부족이 결핍이 아니라 독창성의 원천으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고, 배우지 않음이 되려 창의성의 촉매임을 드러내면서 예술가로서 훈련되지 않은 상태를 미학으로 삼았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관객은 어떤 이득이 있는가? 다른 전시와 어떻게 차별되는가? 예술가의 학벌, 출신이나 배경에서 손을 떼고 작품 자체의 감각적 언어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느 교수님 밑에서 어느 학파의 기법으로 배웠는가? 라는 전통적 배경보다 작품 자체의 감정적 언어, 반복, 색채 등을 중심으로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이 아닌 감각적 결과물로서의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전시설명에선 아웃사이더 아트(비제도권 미술)와 아트 브뤼(거친 미술)의 관계가 명료하지 않은데 추측해보자면 아웃사이더 아트는 작가의 배경에 집중한 것이고, 아트 브뤼는 작품의 표현에 집중한 것이다. 그럼 대각선으로 꼬아보자면 아웃사이더 아티스트가 만든 정교한 그림이나 제도권 작가가 만든 브루탈한 작품은 다루지 않게되는 문제가 생긴다. 아웃사이더의 모든 작품, 혹은 아무나 만든 아트 브뤼가 아니라 아웃사이더의 아트 브뤼로 다루는 작품범위의 교집합이 한층 더 좁혀지게 된다는 뜻

허나 아트 브뤼를 따로 뗀 것은 아마 재단이 병원이기에 자폐나 정신질환을 미술치료로 접근하고 싶은 목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병리적 상태를 미적 경험으로 전환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을 해체해 비정상을 비범함으로 해석하고자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러한 아트 브뤼 작품은 거칠지만 섬세하고 반복적이지만 충동적이며 설명보다 감각으로 존재한다. 사회적 고립, 정신적 균열, 자폐 스펙트럼, 제도와의 거리감 속에서 태어난 시각언어는 통념적 조형어휘를 넘어선다. 색은 감정의 코드이고, 충동의 기록이며, 치료의 자료다. 형상은 질문이며 리듬은 감각의 고백이도다


슈미트는 폴록적 표현으로 원형을, 사이어는 무의식을, 스트로블은 이중섭처럼 작은면에 독일건물을, 레너는 목가적이고 여백의 미가 있는 풍경을, 그리블러는 윌리를 찾아서처럼 화면에 강박적으로 얼굴을 반복해서 그린다.


미술 시스템의 외부에 있는 아웃사이더와 정상의 외부에 있는 거친 마음 모두의 내부를 거울처럼 비추는 작품이다.


하여, 우리가 진짜 예술이라 믿어온 설명 가능성, 고도의 테크닉기술, 학술 담론이 기우뚱 흔들린다. 친구미술관에서 가장 낯선 친구들을 만나며 우리는 예술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깊게 해볼 수 있다. 이것도 미술인가? 이들도 미술가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믿어왔던 편견을 해체하고 꽉 쥐고 있던 고집스러운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논다. 그래 이들도 미술가야 그래 이것도 미술일 수 있어. 와이 낫? 바룸 니히트? 왜 안돼겠어? 미술은 모두의 것인데. 어쩌면 순수한 예술은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감정선 위에서 아른아른거리다가 캔버스 위로 우르르 쏟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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