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볼레로 보고 왔다
나름 볼레로의 풀버전 지휘신을 마지막에 보여주었으나 관객의 아쉬움이 남을 거다.
왜냐? 카핑베토벤과 아마데우스의 어딘가에서 밸런스가 아쉽기 때문이다.
카핑 베토벤은 영화용으로 편집된 교향곡 9번 합창 1-4악장을 향해 모든 서사가 달려간다. 귀가 먹은 베토벤을 위해 무대 아래에서 지휘해주어 템포를 맞춰주는 여성 더블의 존재의 의미는 스토리를 다 따라오며 이해가 되고, 장애의 한계를 넘는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장엄한 음악이 더불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장식한다. 지휘자의 표정뿐 아니라 우리가 감정이입해 있는 안나 홀츠(가상의 인물)의 표정과 관객와 성악가 등의 표정을 자주 보여줘서 연주를 보는 맛이 있다. 최종 카운터 펀치로 KO를 시킨 셈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시점에서 두 인물의 드라마에 초점이 있었고 대단한 음악장면을 남기기보다 신킬러에 해당하는 재밌는 부분을 여럿 남겼다. 말하자면 유효한 잽을 많이 날린 셈
그런데 볼레로는 모리스 라벨의 다른 음악은 기억이 안 나고 기계적 관능성을 위한 볼레로 연주를 향해 가는데 풀버전으로 무대영상을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곡 이외에 다른 것이 기억이 안 남는다. 카핑 베토벤의 라스트신은 전술했다시피 여러 인물의 표정을 보여줘서 마치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의 방청객과 심사위원을 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는데 볼레로는 이다와 라벨 이외는 표정을 잡지 않아 무대 몰입감이 떨어진다. 4명의 여인(+2명의 창부)과의 관계가 있음에도 애정 전선이 밋밋한 만큼이나 음악영화의 서사가 무맛인 편. 음악영화로서는 아쉽다.
드라마로서는 나쁘진 않다. 심리적 압박을 위한 연출감각이 좋다. 화면 오른쪽으로 라벨을 밀거나, 촬영연출을 통해 좁은 문을 통과시키면서 그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을 형상화했다. 다만, 이다에게 줄 스페인풍 발레곡을 써야한다는 압박이 별로 안 느껴진다는 것이 함정. 연출은 좋은데 플롯상으로 살지 않았다. 왜냐. 권력관계로 찍어눌러진 것도 아니고, 이다가 그저 20통의 전보 10통의 편지를 보내어 재촉한다는 정도, 혹은 그녀가 조금 부담스러운 캐릭터라는 정도인데 어차피 모리스는 여러 여성편력이 있어서 딱히 이다가 무게감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에 마르그리트가 이다로 바뀌는 치매장면은 <더파더>에서 잘 따온 것 같다. 평론가에게 복수하는 부분은 글쎄 올시다. 속이 좁다라고 밖에.
자신은 기계공장의 노동자의 리듬을 생각하고(MMCA 올해의 작가상 양정욱?) 작곡한 곡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이다는 관능적인 곡을 주문했고 중간 브리핑에서도 단선4음계 스페인풍의 관능성이라고 말해놓고 나중에 바빌론의 음녀라고 곡을 망쳐놨다고 딴 소리를 했다. 그러고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박수치고 칭찬하자 태도를 바꾸어 우쭐대는데 그제서야 악평한 평론가에게 소심하게 말대꾸하니 적절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라벨은 엄청 징징댄다. 섬세한 창작자 주변인물은 참 힘들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창작자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유다. 작품으로만 만나야 관계가 깔끔하고 좋다. 개인적 친분이 생기면 사적 관계가 작품 해석을 방해한다
나 끝이야! 죽음이야! 하고 징징대는 라벨에게 마르그리트가 bien sûr 어이없어하는 대사를 "행여나"라고 잘 번역했다
이다가 라벨에게 vilain flâneur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빌런+도시산책자 즉 한량, 말썽꾸러기 철부지다. 칭찬쟁이 나쁜 남자라고 번역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