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화랑에 다녀왔다. 강철작가의 인연을 쌓다: 연적을 하고 있다


소형 사각 금박은박지를 캔버스에 다닥다닥 붙이는 그림노동 후 울트라마린계열의 아크릴을 부어 말리는 웻온웻 작업을 반복한 것처럼 보인다. 인내심을 요한다. 캔버스 위에는 그런 스밈과 말림의 반복이 남긴 흔적이 보인다


서양유화는 빛의 음영을 실험하고 원근법으로 깊이를 주며 점토운용을 빌어 마티에르를 통해 입체감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한국단청화는 빛과 시간을 물의 농담으로, 돋운 마티에르의 돌출감 대신 한지 등 재질 자체의 표면감으로 주는 것 같다

평면의 금은박은 빛의 방향에 따라 변하는 서양화와는 달리 빛의 초점을 산란시키며 캔버스 전체에 걸쳐 균일하게 빛나며 시간의 농도를 형상화한 아크릴-먹의 번짐과 스밈의 경계를 지운다


성스러운 광물의 찬란함에 양기의 금, 음기의 은이 녹청을 외연으로 인도하여 상선약수의 리듬와 기운생동의 확산을 시각화한다


주목할 점은 안료의 번짐의 금박의 구조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금속박의 반사되는 빛의 윤슬 위에 올린 아크릴은 일견 서양의 도구지만 한국의 기법으로 만들어져 동서문화의 교차성과 기법의 혼종성을 표방한다.


인위적인 동심원이 아니면서도 중심으로 집중되는 안료의 흐름은 마치 기를 수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적 중심이 고정된 상태로 너무 깊지 않은 연못과 같다. 뿜어져나가는 발산이 아니라 색이 유동하며 응축된 에너지처럼 보인다. 장자의 허정, 비움과 고요함 속의 진실됨이다


선조들이 그토록 바랬던 동도서기의 지향이 시간의 세례를 입어 현대에 정착된 증거다. 서양의 기법과 동양의 유기적 세계관이 하나의 장에서 상호교차되어 지금-이-시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의 리듬을 감각하게 한다


재질 사이에 스며든 자연물감인 먹과는 달리 표면 위에 머무른 화학물감인 아크릴은 의미를 깊이에서 솟아나게 하기보다 표면에서 생성되게끔 한다. 고정된 단청문양이 아니라 발생하는 무늬로서, 물질적 실체로서 반사가 아니라 경험과 과정의 은유로서 새로운 물성의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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