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초김응현미술관에 다녀왔다
산이 아주 똿! 하니 거대하여 병풍 같기도 한 것이 마치 넷플 인트로마냥 두둥 하고 산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듯한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해있다. 여초는 처음初과 같다如라는 말이다. 여자 많다 아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80세까지 서법예술에 매진한 김응현의 얼과 작품을 기리는 미술관이다. 근처에는 만해마을, 만해박물관과 시집박물관 등이 있다. 오늘은 서예만 본다.


차량이 80킬로로 씽씽 내달리는 6차선에 46번 국도가 굽이굽이 뱀처럼 흘러가다 만나게 되는 용대초등학교와 만해마을 사이에 여초김응현미술관이 있다. 용대초 앞에는 깨끗한 산의 물이 졸졸 흐르는 구만동계곡이 있어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우르르 몰려나와 너도 나도 멱을 감으러 뛰어들지도 모르겠다.
-어이! 선생, 요즘 아~들이 무슨 쌍팔년도인줄 알아요? 집에서 샤워합니다 집에서요
-아, 아, 마이크테스트중, 네 잠깐 아무말 대잔치였습니다. 자 그럼 다음 사람!


서울버스와 다를 바 없는 인제군 시내버스는 시트에 새삥 가죽냄새가 난다. 전기차라 승차감이 좋다. 용대초등학교에 내려서 시골길을 만끽 하며 미술관까지 걸어간다. 음, 시골의 스멜.. 똥냄새와 재활용 페트병 썩는 냄새가 섞여난다. 코로나로 인한 관광객 급감으로 타격을 받았는지 야영장은 버려진채 방치되어있다.


모를 때는 시골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여 도시탈출을 꿈꾼다. 풀밭 위 조그마한 오두막 내 집 지어서 다닥다닥 도시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삶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벌레도 많고 상하수도 노후화되고 수압도 낮고 전기수도가 끊길 수도 있으며 밤낮에 벌레에 가끔 산짐승이 출몰하고, 집과 마당을 끊임없이 관리해야하며 쓰레기 수거차가 매일 오지도 않는다. 할마씨들은 쓰레기를 소각해서 버려 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자차 없으면 생필품 구매가 어렵다. 마을 이장, 온갖 협회 청년회, 모임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괜히 귀농했다가 얼마 못 버티고 돌아오는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력과 삶의 의지는 도시의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높은 생활력과 삶의 의지 없이는 자연과 맞서서 살아남을 수 없다. 옥수수와 감자와 황태만 먹으며 꾸준히 열량을 제공하는 단백질에 의지해 강원의 산악을 평생 오르락 내리락한 이들의 후손에게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연약한 도시인이 여생을 맡기고자 안일하게 생각해서 내려갔다가 데이는 셈.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 <늑대아이>에서 시골 농민들이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당신들의 근성이 대단한 것이오!
이런 생각에 침잠해 15분 정도 찻길을 걸어가니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미술관은 2012년에 건축우수상을 받은 멋진 공간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내려다보는 노출콘크리트 2층 건물 앞에 검은 대리석으로 짜여진 수공간이 인상적이다. 내부는 비스듬하니 느슨하게 올라가는 계단에 1층 일부와 2층이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배치가 비효율적이어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것 같지 않고 서예라는 주제를 공간에 온전히 살리고 있지는 않다는 다소 아쉬운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좋아, 먼 거리를 옴직하다고 평하겠다.


여초 김응현 서예관의 서예의 퀄리티는 대단하다. 깜짝 놀랐다.

위는 우측은 한자 좌측은 한글
아래는 독립선언서의 국한문 혼용

일단 한자와 한글 서예 둘 다 잘한다. 배움의 순서가 있다면 한자가 먼저이긴하다. 표음문자 기반인 한글은 기호의 갯수가 정해져있지만 표의문자인 한자는 글자갯수가 몇 천 몇 만자가 있다. 너무 많기에 먼저 익히는 게 효율적이다. 물론 획수의 패턴이 있고, 상형, 회의 등 나름의 글자형성방법이 있지만 그런 조립방법이 만능은 아니다.
수학의 세계에서는 원리를 배우면 개별요소는 치환할 수 있으나 언어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다양한 예시에서 경험적으로 원리를 추론해낼 수는 있어도 원리를 적용해 새 요소를 만들 수는 없다. A+(B+C)=(A+B)+C가 되지 않는다. 마음 심 부수를 배웠다고 모든 감정 어휘에 마음 심을 넣어 새로 만들 수 없고, 이미 존재하는 예시에서 마음 심이 보이면 마음과 관련된 말이겠거니 이해해볼 수만 있다는 말이다.
한자와 한글 서예를 둘 다 잘 하는 여초 김응현은 67년에 오탈자를 보완해서 탑골공원의 독립선언서도 새로 새겼다. 이외에도 수많은 현판과 서예교육자료 등을 남겼다.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잘하는 아리랑 앵커 제니퍼 클라이드가 생각난다. 지하철 안내방송을 녹음한 인물이다. 덕분에 우리는 명동을 미영도옹으로 듣지 않아도 되고 반대로 고속버스터미널을 익스프뤠스 버스 털미널로 듣게 되었다. 한국어, 영어 발음 둘 다 네이티브에 준하는 한국계 미국인이 녹음했기 때문이다. GTX-A가 일산과 거리를 많이 좁혀줘 편리하지만 안내방송은 심각하게 곤란하다. 한국어를 못하는 영어 네이티브가 녹음해서 연신내를 여시눼라고 말한다.

여초 김응현이 한글+한자 둘 다 잘했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어+영어 둘 다 잘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일이다. 두 세계를 통섭해줄 수 있는 인물이 두 문화의 중개인이자 가교로서 큰 역할을 하다. 여초 김응현은 7-80년에 중화민국(대만)과 일본에 한국의 높은 문화수준을 알리는 공공외교사절이었고, 중국과 수교이전에 산동에 가서 한국의 서예를 알리기도 했다.

일본 애니의 작화퀄이 아무리 좋아도 고등학교 2시에 수업 끝나고 부활동하는 그들의 문화를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 국산 애니의 명맥이 유지되어야하는 이유다. 예컨대 <퇴마록>의 버스기사장면이나 편의점 앞 파란색 테이블에서 맥주 마시는 장면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어떤 문화영역은 완전히 아웃소싱줄 수는 없고 내부인으로 꾸려서 우리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해야만한다. 한자가 그렇다.
한자를 포기하면 20세기 중반 이전 모든 유구한 문화를 잃어버린다. 아무리 중국이 자기문자로 서예를 잘해도, 아무리 일본의 서예가 아름다워도 고려, 삼국사기, 이규보의 글을 대신 써주지 않는다. 여초 김응현 서예관에서는 삼국사기 을지문덕전이나 이규보의 한문시와 한글 해석을 볼 수 있었다. 훌륭한 우리 고유의 것, 누군가는 지켜야한다.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의 바둑이 그렇듯, 김연아나 손흥민이 그렇듯 가끔 한국에는 척박한 환경을 딛고 스스로 강해진 자강의 영웅이 나타나 세계에 한국을 알린다. 여초 김응현이 서법예술 분야에서는 동아시아에 한국의 위상을 알렸다. 심지어 70다되어 교통사고를 당해 손을 다쳐 평생 오른쪽으로만 써오다가 다시 왼쪽으로 익혀야하는 시련을 극복해내기까지 했다. 장애물을 넘는 회복탄성력은 젊은 이에게만 속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냈다. 힘이 덜 들어가는 우수로 유려한 붓놀림을 해내며 또 다른 글자의 맛을 느끼게해주었다. 노익장의 기백은 함성이 아니라 끈기로, 에너지의 방출이 아니라 응축으로, 세 치 혀가 아니라 엉덩이로 증명되는 것이다. 그가 엉덩이로 앉아 수십 만 시간 서예를 연마하고 기법을 조탁한 서재 전경이다.

서재에는 최신 테크놀로지에 발맞추고자 AR로 뭔가를 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다.
향후 홀로그램, 3D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면 미술관에서 쓸만할 것 같다. 메타버스와 NFT는 팬데믹때 잠깐 떴다가 완전히 시장이 죽었다. 이용자도 없고 대기업도 철수한다고 한다.
AI 생성기술로 얼굴을 입히고 음성을 복원한 영상도 있다. 생전 모습과 음성으로 미술관 소개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철학적 화두는 김태용의 <원더랜드>에서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다. 유명 조연배우 최무성이 분한 이용식이 사후 장례식 때 디스플레이 속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김사장! 자네 왔군, 내 돈 갚아야지?"라고 하는 장면이 있었다. (기억이라 정확한 대사는 아님) 사후 디지털 복원을 할까 말까, 한다면 젊은 시절일까 죽기 전일까 어떤 시점일까, 관리는 누가할까, 자아의식을 갖게되면 어떻게 대해야할까 등에 대해대해 기술-윤리적 질문이 촘촘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STS 분야다.

구체적으로 서예의 어떤 부분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는지 대충 캡쳐 필기해서 첨부한다.



아래 춘(봄), 거(갈 거), 화(꽃), 견(두견새) 모두 훌륭하다. 보면서, 와, 와, 와, 와! 거렸다. 마지막 와에 방점.

92년 중국 수교 이전 산동성에 문화교류로 가서 보여준 글씨라고 한다.
와! 와! 와! 와! x 100
단단하고 강렬하다. 전각에 충실해 옛스러운 본질이 드러나면서 나름의 재해석이 들어갔다.
와 미쳤다.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하다! 이 획이 여기서 이렇게? 그러면서도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다. 재창조 수준이다.
감동의 마음을 물씬 안고 시간을 보니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버스가 20분 일찍 온다. 시골은 정해진 시간표랑 다를 때가 있어 늘 주의해야한다. 20분 먼저 떠나 아쉽지만 정말 좋은 작품 잘 보았다!
호사유피라 하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훌륭한 사람이시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보니 눈에 풍경이 잡힌다. 이것은 작품일까 석재를 깎아낸 흔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