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sedaily.com/NewsView/2GRD59010Q
요즘 챗GPT로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꾸는 게 유행이다.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지만 개인의 호기심은 탓할 수 없다. 지브리가 대중의 인식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를 반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스타일이라는 것을 너무 가볍게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의문이 든다.
지브리 사진 필터유행 이전에는 AI 미드저니로 한 영화를 다른 감독스타일로 바꾸는 유행이 있었다. 예컨대 가이 리치나 팀 버튼 스타일로 해리포터를 재해석하거나 해리를 인도인이나 독일인으로 변형해보는 식이다

이런 유행의 바탕에는 감독이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고유한 미장센과 연출 방식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웨스앤더슨의 스토리는 매번 조금씩 달라도 대칭적 구도와 파스텔 톤을 보면 감독의 서명과도 같다고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전시장에 걸린 그림들을 가만히 보면 많은 예술가들은 단순한 기표(시니피앙)를 넘어서 자기만의 기의(시니피에) 즉 고유의 해석방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화가란 자신을 던져 하나의 스타일과 세계관을 구축하는 존재다. 단지 무언가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그리는 사람이다.
뉴진스 엄마 민희진이 아일릿에 분노했던 이유는 스타일의 무단 도용이었다. 스타일은 단순한 겉모양이 아니라 정체성과 철학이 담긴 구조물이기 때문
그런데 우리사회는 유독 스타일의 지적재산권에 둔감하다
문제를 만드는 법보다는 출제자의 의도에 따라 정답을 맞추는 법에 길들여진 교육시스템 탓이다
출제자에 빙의해서 정답을 고르다보니 시스템 너머에서 질문하지 않는다 문제형식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맞추는 게 중요하다
학교졸업 후에도 성공한 포맷이 등장하면 일단 복제한다. 그래서 프랜차이즈가 돈을 번다. 시판소스만 바꿔서 제품라인업을 만드는데도
물론 장점도 있다. 좋은 포맷이 빠르게 확산된다
하지만 단점도 크다.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전체 시장이 동시에 무너지는 일도 생긴다. 산불과 같은 재난의 위협에 취약해진다.
우리사회가 예술가의 스타일에 무심한 것에 더해 이제 AI의 위협까지 생겼다. 첩첩산중이다.
화가들이 생애를 바쳐 자신만의 감각과 해석 방식을 고심 끝에 구축하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AI에게 줄 영양가 있는 사료로 소비된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수준급 학술 영어를 구사하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의 수많은 문장이 AI의 학습 재료로 쓰여 챗 지피티의 결과물의 퀄리티를 높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브리와 같은 업계 최고봉의 저작물도 다 학습해서 자연스럽게 변형하게 되었는데 개인화가들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 고유한 스타일은 알고리즘의 재료가 된다.
이제는 작가와 화가는 AI가 학습할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피더가 된다.
AI와 함께 자라나지 않은 작가들은 초반에는 저항할 것이다. 인간을 위해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에 나올 어린 세대는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알고리즘에 종속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중세에 답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오늘날이 중세와 같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름하여 디지털테크 기반 신중세 시대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 러시아의 부상과 신냉전, 지역 블록화, 아랍갈등, 미중 관세전쟁 등 우리가 알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는 끝났다.
0.0001%의 플랫폼 소유한 기업인은 중세의 왕이다. 영토 기반 근대국가는 끝났다. 디지털 영향권을 두고 다투고 인프라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0.0002%의 엔지니어는 중세의 기사다. AI 알고리즘은 마치 궁정의 점성술사처럼 배후에서 누굴 노출시키고 누가 수익을 얻고 무엇이 진실인지 결정한다.
0.0003%의 인플루언서는 고위성직자다. 트렌드를 신의 언어처럼 설파하고 브랜드에 대한 믿음을 전파한다.
나머지 99.9%는 토큰과 콘텐츠 영향력과 플랫폼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농노다
현대시대에도 0.0001%만 국가의 리더인 대통령, 총리와 같은 최고 권력자였고, 0.1%만 정치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차이는 단지 봉건적 권위가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 그 구조는 같다.
이제 그 자리를 플랫폼이 통제하는 알고리즘과 콘텐츠 영향력이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구조는 아직 고정되지 않았다.
중세에도 군벌과 독립수도승도 있었다.
자신만의 세계관과 공동체를 만들고 플랫폼 밖에서 작게나마 독립경제를 구축하는 아트앤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믿는 자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