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혜란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담은 화면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깊고도 묵직하여, 보는 이의 가슴을 서서히 적셔온다. 투박한 손길로 쪽빛 치마를 고쳐 매던 어머니들의 체온과 이 땅의 지난한 세월과 시련이 빚어낸 깊고도 아련한 울림이 느껴진다. 우리네 민화에 그려진 어머니상과도 닮았다. 주름 사이사이 새겨진 세월의 흔적과, 이슬 머금은 듯 촉촉한 눈망울이 화면을 가득 메워 괜히 눈시울이 매워진다. 살며시 떨리는 입술, 억눌린 듯 흐느끼는 숨결, 눈물이 차올라도 왈칵 쏟아내지 못하고 꾹 참는 그 얼굴, 과, 그 눈빛. 마치 수십 년 한을 품고도 말 한마디 쉽게 뱉지 못했던 어머니들의 얼굴이 스크린 위에 먹처럼 번진다.
이보다 더 염혜란의 얼굴을 가까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담은 샷은 <야구소녀(2020)>에서 였다. <이태원 클라쓰(2020)>로 같은해 유명세를 한층 더 증폭한 이주영배우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과 호흡을 맞춘 영화였다. 부동산 시험 문제 유출로 남편이 경찰서에 잡혀가고 딸에게 야구하지 말라고 삶이 힘들다고 절규하던 장면이다.
이런 한스런 어머니 배역을 소화해낼 수 있는 동급의 배우가 또 누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신록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화의 거치며 거칠게 살아온, 가난과 설움을 등에 지고, 배우지 못해 억울하고, 차별받아 한 많은, 궁시렁궁시렁 입으로는 투덜대면서도 따스한 정이 서려 있는 우리네 4-60년대생 어머니를 이토록 생생히 그려낼 배우는 오직 염혜란뿐없을 것 같다.
김신록의 배우로서 확실한 인상은 <지옥>에서 박정자가 고지받는 장면과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이성민배우에게 살려달라고 땅바닥을 기는 장면이다. 놀라운 연기였다. 김신록의 연기에 대한 애정은 스스로 보여주는 연기에서 뿐 아니라 배우가 쓴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폭싹 속앗수다> 1화에서 지미집으로 붐 업하면서 1초간 살짝 시대상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눈 밝은 시청자는 반공선전물, 농업고도사업, 이승만 사진 같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대상을 유추해낼 것이고, 이 시대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시청자는 바랜 포스터지를 통해 옛날 느낌 정도로만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최근에 봤던 <히어>나 <컴플리트 언노운>에서는 복식을 포함한 모든 미술소품에 각본까지 합해 총체적으로 시대상을 전달한다. 대사로 칠 경우에는 지나가는 말로 하나씩만. 집의 부채를 이야기하는 신에서 존슨 때문에 이자율이 올랐다든지 하는 식으로. 귀 밝은 사람은 존슨대통령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60년대가 떠오른다. 그는 1908년에 태어나 1973년에 죽어 20세기 기 사람이지마 대통령 임기는 63-69년뿐이니, 존슨+대통령이라는 단어 조합은 특정 시간대를 즉각 소환한다.
<폭싹 속앗수다>는 <히어>나 <포레스트검프>처럼 시대극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시대 속의 개인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데, 우리나라 드라마는 각본에서 정치나 역사는 소략했다. 대신 시각적 이미지로만 시대상을 잠깐 스쳐지나가며 보여준다.
제주도 사투리 대사를 이정도로 살리기 힘든데 각본과 배우가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