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일본인의 SNS에 대한 한국인의 일본어 답변에 대한 나의 일본어 재답변 가운데 조금 공들여 써봐서 붙여넣기함.
아래는 한국어로 다시 번역한 것.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해 처음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했는데, 9월 어느 날 아침 7시 50분에 서울을 출발해 KTX로 광주까지 2시간 동안 이동했고, 1박 2일 동안 광주 시내 30여 곳에 이르는 비엔날레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해 9월임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35도에 달하는 폭염 속에서 소나기도 견디며 비엔날레 전관을 돌아볼 각오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파빌리온이 광주 전역에 걸쳐 있고 그 수가 매우 많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해도 결국 두 곳을 놓치고 서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힘든 노력 끝에 어떤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했지만 전시 주제로서의 판소리가 모든 작가에게 일관되게 표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물론 전통적인 의미의 판소리를 듣기 위해 간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작가가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말이 느슨하게 쓰이면서 각자의 표현이 그것에 의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 프랑스 출신 전시감독 니콜라 브리오 자신의 연구 주제인 관계, 매개, 참여, 상호작용을 판소리에서 재발견하고 그 다양성과 이동성, 겹치는 소리 등의 요소를 파고들었지만 솔직히 그것이 판소리일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기억에 남은 파빌리온은 30곳 중 3, 4개였고, 메인 공간에서도 인상에 남은 것은 2, 3개 정도였습니다. 한국도 일본도 자국에서 자란 예술가가 국제적인 시야와 지역성을 겸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서양의 권위에 기대어 우리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푸른 눈의 노란 머리의 서양인의 말에 의지해 우리의 문화를 말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마치 우리의 정체성이 그들의 해석으로만 이루어질 것 같아요. 그들의 오리엔탈리즘과 표면적인 이해를 통해 우리 문화가 정의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어쨌든, 이 한 번의 국제 전시는 그들에게 금전적인 보상과 경력의 풍요로움을 제공할 뿐, 그 프랑스인이 다시 한번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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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상, 노벨상, 오스카상, 프리츠커상에 대한 생각의 실타래
서양은 스탠다드를 제공하고, 권위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아시아인
마치 프랜차이즈 브랜드와 방식이 이미 존재하는 가운데, 일반인이 퇴직금을 넣어 자영업자로서 열심히 자기를 갈아서 노력하는 것과 같은 맥락. 어떤 매장은 잘되겠지 그러면 마케팅으로 띄우겠지. 그러나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고 근근히 살아간다.
제일 좋은 것은 주어진 프레임에서 열심히 일해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가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형 회빙환 웹툰에 보면 시스템이 자기만 특별히 애정해서 특혜를 보는게 경우가 많다. <템빨> <나혼렙> <레벨업못하는플레이어> 등등..
시스템의 특별 대우가 왜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그랬다는 자체가 중요할 뿐. 이것도 역시 시스템 외부를 잘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거지 하면서 방식이다. 시스템의 선택을 못 받은 나머지 대다수는 스토리상에서 의미없거나 죽는다. 시스템의 가호를 입은 주인공과 호의적인 사람들만 살아남을 뿐..
서양은 프레임과 시스템을 잘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플레이어를 돌려막기한다. 한국이냐 일본이냐 중국이냐 동남아냐 인도냐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