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들 북 컬처ㅣ매직 온 페이퍼

그라운드시소 서촌   I   서울

2024-09-14 ~ 2025-02-23







1. 그라운드 시소 지점 중에는 빛의 벙커 같은 몰입형 체험 공간도 있고, 이런 특별한 책 전시를 하는 공간도 있다. 

이외에도

리얼 뱅크시

Move Sound Image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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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사이드: 러브, 빈센트

이경준 사진전: 원 스텝 어웨이

우연히 웨스 앤더슨 2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등을 가봤는데, 기존 미술관 전시에서 약간 비켜간, 상업적이면서도 힙한 전시들이다. 유능한 마케터와 디자이너가 개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가는 서울국제도서전 작년 코엑스에서 그라운드 시소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막상 방문해보니 미리 알지 못해서 아쉬웠다. 좋은 전시장이다.



2. 하나의 책을 만드는데 이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3. 이런 빨간 책이 굉장히 독일적이다. 일본에 이와나미 쇼텐의 문고가 있다면 독일에도 인문학, 철학류로 문고집이 있는데 대략 검은색이거나 노란색이거나 빨간색이다.




4. 4층까지 올라간다.






5. 2010년경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논의가 활발했다. 한 행사에서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소장과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가 나누던 열띤 토론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현재 다시 돌이켜보면 기우였던 것 같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의 쇠퇴와 온라인 서점의 급성장은 분명한 변화였다. 하지만 동시에 소규모 독서모임과 문화행사를 주축으로 마을만들기 운동에 일부 가담하고 있는 독립서점과 1인출판사 등 소규모 출판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며 기존의 독서 문화는 또 다른 형태로 존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품질을 의심받았전 전자책 리더기도 얼리 어답터의 피드백을 받아 시간이 가면서 점점 퀄리티가 좋아졌고, 집에 종이책을 많이 들여다 놓을 수 없는 도시의 1인가구와 무거운 종이책을 들고 여행과 출장을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의 서포트를 얻었다. 밀리의 서재는 책을 읽어야한다는 죄책감으로 마케팅을 하는 것이고, 실제 책의 완독률은 많지 않다고 한다. 종이책이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진화하고 적응한 것이다.


한 기술의 등장으로 다른 기술이 소멸할 것이라는 비슷한 우려는 과거에도 반복되었다. 영화가 등장했을 때, 연극과 오페라는 곧 사양길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극 무대에서 명성을 쌓은 배우들, 예컨대 김윤식이나 황정민 등이 영화로 진출하기도 하고, 최근 <바닷마을 다이어리>나 <햄릿>에서 보듯, 다시 연극으로 복귀하는 사례도 있다. 연극 시장의 규모는 축소되었을지언정, 연극이라는 예술 형식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순한 대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적인 형식과 새로운 매체가 공존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모하는 진화의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매 시대마다 특정 기술이나 산업이 등장할 때 기존 질서가 붕괴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반복된다. 호들갑이다. 중국 시장 개방, 반도체 산업, 바이오 신약, 인공지능 챗봇, 뉴럴링크, AI 로봇 등 다양한 혁신 기술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것들이 무용해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마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광적 버블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한 자, 새로운 기회를 포착한 자,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한 자가 갈리게 된다.


유튜브가 레거시 미디어를 상당 부분 대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기존 방송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6시 내고향을 보는 이들과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시청자층이 존재한다. 또한 공중파 프로그램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변화하고 있으며, 기존 공중파에서는 얻지 못하던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시청층을 획득했다. kbs kpop채널은 구독자가 944만명인데 내국인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하느냐의 문제이지, 단순한 소멸과 대체의 구도로만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책을 향유하는 계층에서 허수가 사라졌다고 본다. 책을 단순한 정보 습득의 도구로만 여기던 이들, 겉표지만 훑어보던 이들, 혹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핀잔이 두려워 마지못해 사들이던 이들, 심지어 사두고 펼쳐보지도 않던 이들이 줄어들고, 진정으로 독서를 즐기는 이들만 남았다.


울산도서관이 기존의 종이책을 폐기하고 전자책으로 대체하려 했을 때, 안동섭 교수가 이를 구출하려 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자들이 있다. 마치 국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소비하는 계층과도 유사하다. 고전 음악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시대는 지나갔을지라도, 소수의 매니아들이 이를 깊이 향유하며 전통을 이어가듯, 종이책 또한 소수의 애호가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사람의 뇌는 무한한 정보를 저장할 수 없다. 혹은 그 모든 정보를 다 습득할 시간이 없다. 과거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복잡한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으며 의식의 흐름을 더듬어갈 여유가 있는 세대가 있었다. 조정래(태백산맥), 황석영(장길산), 박경리(토지)의 장대한 서사를 읽고 이를 두고 토론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한정된 인지 용량을 유튜브와 같은 시청각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가 대체하고 있다. 물론 과거의 독서 경험이 심층적인 사고와 기억의 축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오늘날의 정보 소비는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인상을 남기는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가 반드시 좋고 오늘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에는 최신 지식이 없어서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읽을 만한 책이 그런 책들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알아야할 정보, 알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정보의 쓰나미에 쫓기느라 바쁜 세상이다.




6. 다야니타 싱. 독일어를 잘한다.




7. Q 폰트의 애착이 보인다. Q라는 알파벳 하나에 대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미세한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예술가로서 성공할 예비조건이다.



8. 올라가면 이렇게 북한산과 서촌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보인다. 아트선재에서 보이는 북촌만큼 좋은 옥상 전경이다.





고즈넉한 독일 괴팅겐의 슈타이들 출판사. 이른 아침의 안개가 자욱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서늘한 공기가 콧등을 스치고, 묵직한 나무 서가에 빼곡히 들어찬 양장본 책들은 제각기 오래된 종이의 향을 품고 있다. 창틀에 내려앉은 햇살은 희뿌연 먼지를 가만히 비추고, 두꺼운 나무 서가 사이로 잔잔한 침묵이 흐른다. 습기는 적당하고 공기는 청량하다. 책장은 바스락거리지도, 눅눅하지도 않다. 조용한 실내,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한 시곗바늘의 똑딱이는 소리가 흐르는 시간을 짚는다. 멀찍이 교회 종소리가 퍼지고, 창문 너머로 느릿한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사각거린다. 햇살이 창가에 앉아 책을 펼친다. 둔탁한 양장본 표지를 손끝으로 쓰다듬자 잔잔한 활자의 감촉이 전해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각, 사각, 종이가 속삭인다. 고요 속에서 활자들이 조용히 속삭인다. 깊숙한 가죽 소파에 몸을 묻고, 활자가 뿜어내는 사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슈타이들의 이름이 붙은 같은 제목의 책이 손에서 손으로 건너가 한국 서촌의 어느 전시장에 자리한다. 전시장 4층의 도서관은 슈타이들 아트북으로 가득차 있다. 나무 내음과 특유의 잉크 향이 뒤섞여 아늑한 온기를 풍긴다. 창 너머 골목길엔 늦가을 훈훈한 바람이 바스락거리며 지나가고, 길모퉁이 은행잎이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원두 분쇄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결여된 카페다. 책등을 눈끝으로 훑다가 어쩐지 마음이 끌리는 묵직한 한 권을 뽑아 든다. 아는 알파벳, 모르는 언어. 그러나 그 안의 사진과 그림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골동품 찻잔을 열듯 조심스레 펼친 책, 손끝에 닿는 두꺼운 종이는 살짝 거칠고,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슴슴한 종이 내음새가 장미향처럼 은근히 피어오른다. 테이블에 앉아 책에 코끝을 대고 한숨 들이마신다. 저 머나먼 유럽 오래된 도서관의 나무 서가 냄새가 흡착된 묵은 종이의 흔적이 스며든다. 가보지 못한 괴팅겐의 빛, 향, 꿈을 책등에서 느껴본다. 문득 바깥에서 자전거 벨 소리,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의 나직한 대화가 들려온다. 한 장, 또 한 장,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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