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아트센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2025. 2. 20.—2025. 6. 29.
이제 2층으로 올라가보자. 백남준 작품의 모티브나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진 다양한 작품이 있다.
전기, 통신에 대한 재료적 모티브뿐 아니라, 환경 기후 등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그리는 작품도 있다.

1. 김호남 작가의 작품


디스플레이 9개의 화면과 소리가 전송시간에 따른 지연으로 인해 각기 다르게 시작되어 동굴의 울림 같은 메아리를 만든다. 백남준도 위성 전파속도의 지연에 대해 주목했었기 때문에 백남준의 모티프를 잘 이해하고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설명 중에 "윤슬"이라는 매우 좋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고유 표현이다. shimmering water로 번역했다. 문장이 깔끔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TV 노이즈 화면과 같은 윤슬은 집합적이고 매개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텔레비전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백남준을 떠올리게 한다. The shimmering water found there, resembling television static, reminds us of Nam June Paik, who focused on the potential of telelvision to enable collective and mediated experiences."
이렇게 전시의 핵심 주제를 정확하게 포착해서 작품을 커미션하는 작가들이 있다. 저격수와 같다. 작품의 모티브와 전체 테마가 일치하여 정확히 타켓팅된 의도에 관람객도 원 샷 원 킬의 후련함을 느낀다.
이전에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했던 아시아네트워크 길 위의 도자라는 전시가 있었는데, 그 참여 작가 중 예상 외로 단 한 명마 전시의 전체 모티브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기어간다.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광주에 와서 도자를 만들고 출품을 했는데, 인터뷰를 들어보면 교포의 정체성에 방황하느라 자기가 무엇을 만드는 것인지 모르는 이도, 아이디어와 작품이 매치가 안되는 이도 있었다.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캄보디아계 미국 현대 미술 작가 에이미 리 샌포드가 일견 한국과는 거리감이 있는 낯선 국가 출신임에도 광주 전시 기획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y6RgQ1n87s
이 유투브 12:40즈음에서 그 인터뷰를 볼 수 있다.
복수의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에서는 이런 저격수 같은 작가가 있어야 한다. 큐레이터가 하고 싶은 말을 작가 시점에서 재서술해주기도 하고, 전시 전체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김호남 작가의 이 작품이 백남준의 의도와 기획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었다.
2. 정혜민 육성민의 영상 작품 두 점이다. 벽면에 있는 약 8분 짜리 영상.


동물에 GPS 시스템을 탑재하고 데이터화해서 그 신호와 시각화된 모습을 화면에 보여준다. 실제로 새가 날고 있기도 하고 그것을 3D로 구동해서 영상에 보여주기도 한다. 디스플레이 2개에 각각 연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새가 날아가면서 자연경관을 보여주고 그 자연에서 잡히는 동물들의 신호를 포착해서 화면에 보여준다. 이주를 요청한다랄지, 조금 시원하다랄지, 하는, 우리가 모르는 동물들의 의지를 이해해볼 수 있다. 내레이션에서 동물은 더 이상 피를 공유하는게 아니라 오픈소스를 공유한다고 했다고 한 점이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의도도 명확하다.

디스플레이가 두 개라서 기왕에 가운데 초점을 잡았는데 중간선때문에 약간 방해가 생겨서 아쉬움이 있다.
남서울미술관 건축의 전경에서도 비슷하 작품이 있었다. 보비스투 스튜디오, 룬트마할 어라운드, 2022. 디스플레이 두 개의 가운데 접점의 선이 몰입을 방해했다.
2.


가운데 있는 커다란 영상이다. 약 22분.

보험회사에서 메기나 두꺼비나 새 같은 동물이 지진 전조 증상을 잘 감지하는 것을 알고 GPS를 부착해 그들의 이동을 탐지하고 지진 전에 사람들을 대피시킨다. 아래 보면 로키라는 새가 자연 재해 23개를 미리 예측해서, 당신으 523만 4천달러를 아꼈다고 나와있다. 뒷 배경 왼쪽은 일본의 메기 (글씨는 일본초서인데 느낌만 비슷하게 표현만 해둔거라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없다.)이고 오른쪽은 서양 고대의 뱀이다. 다 지혜를 상징하고 미리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동물들이다.
주인공은 메기나 뱀이 아니라, 로키라는 검은 새를 고르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냥 마음에 들어서라고 했다.
그런데 다른 새는 다 움직이고 보험회사가 이를 통해 지진 예측을 해서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와중에
주인공은 자기 새가 신호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는 자기 뒤의 배낭에서 움직이라는 신호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지 않는다.
새 둘의 대화에서 수컷 새는 뭔가 움직여야할 것 같다면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고
암컷 새는 신호가 오지 않았으니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신호수신에 문제가 있는 장비를 제때 체크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회사의 직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미필적 고의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듯 하다.



다만 새의 양안 시야각은 측면을 다 감각할 수 있기 때문에 측면에 있는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 머리를 돌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앞만 보고 얼굴을 보지 않는 듯 대화하면 연출의 자연스러움이 깨지니까 새도 고개를 돌려 상대의 눈을 마주치는 것 같이 연출한 것 같다. 새의 의인화를 했기 때문이다.

영화 <소울>, <매트릭스> <스타트렉> 등에서 많이 보이는데 미래적 SF를 다루는 영화에서 중앙관제센터를 흰색으로 깔끔하게 그린다.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은, 유백색의 공간이다. 그러나 나는 중앙센터일수록 책상이 지저분하고 어지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정보와 요청이 몰려드는 가운데 주변 상황을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에 집중하다보면 빨래나 청소기 돌리는 타이밍을 깜빡한다거나 냉장고의 자잘한 고장을 잊고 넘어간다든가 하는 것과 같다. 시험에 집중하다보면 계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하는 것과 같다.

추적 데이터의 상업화는 보험회사로
동물의 본능 대신 인공장치에 의존하게 된 역설적인 모습은 정비되지 않은 장비배낭에서 신호가 송출되지 않는데 지진 신호 앞에서도 떠나지 않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이것도 역시 의도가 명확하고 서사가 잘 짜여지고 시각화도 잘 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