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2024 타이틀 매치: 홍이현숙 vs. 염지혜 《돌과 밤》

20241205-20250330


1. 중계역과 하계역 사이에 있다. 방문해보면서 어떤 역에서 나가는 것이 빠를까 궁금했는데 하계역이 더 좋은 것 같다. 





2, 우선 타이틀 앞에 등장하는 홍이현숙 작가만 먼저 다룬다.


돌과 밤. 


한국어에 있는 한 글자 어휘의 감각이 좋다. 돌, 불, 밤, 꿈, 봄, 물 등.


홍이현숙작가는 돌을 담당한다.


참고로 돌 석石은 한중일 다 쓰고 다 rock의 의미를 공유하지만, 이름 돌 乭이라는 한자는 한국이 개발한 한자다.


돌 석을 위에 올리고 아래 새 을 乙을 달아 ㄹ의 발음을 넣었다. 발음은 돌이지만 rock의 의미가 아니라 사람 이름이라는 뜻이다.


안국역 MMCA서울의 <순간이동> 전시 참여 작가 유태경의 VR작품 <시네마틱 스크리닝: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에서 보이는 무성영화의 주인공이 복돌인데 福乭이라고 썼다. 뒤로 가면서 한자가 복돌이라고 한글로도 보이고 섞어서 福돌이라고도 했던 것이 기억난다.


한글로 돌이라고 하면 사람이름 돌도 되고 광물 돌도 된다는 뜻이고, 사람 이름 돌은 을乙을 돌 석石 아래 붙여 새로운 한자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만약 이 전시 제목인 돌과 밤을 한자로 번역했다가 다시 한글발음으로 옮기면 석과 야 (石과 夜)가 될테다.



3. 작가는 무슨 돌을 말할까?


작가는 '돌을 만지고 본다는 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시장 전체를 양껏 써서 작품을 전시했다. 일본어에는 풍성하고 풍부하게 양껏 사치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贅沢な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런 제이타쿠한 느낌이 느껴진다. 이 전시장 아니면 이정도의 느낌을 구현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넓은 공간을 양껏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돌이라는 매체의 적막하고 지배적인 느낌을 전달하는데 적합했다.






북한산 인수봉에 올라 프로타쥬한 작품이다. 32분 가량의 작품 메이킹 영상도 있다. 사운드 녹음에서 인수봉에서 자주 들리는, 까마귀의 목구멍 안쪽 깊은 곳에서 소리가 나오는 까악까악 울음과 바람 소리가 들린다.



인수봉 자체의 일부만 땄음에도 전시장에서 보이는 작품은 매우 거대하다. 자연의 웅대함이 느껴진다.



전시장 안에 옮겨오면 이렇게 거대해보이는 작품이 자연 안에서는 얼마나 작은가.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공적 물품의 하찮음이여



4. 전시장 중간에 있는 아미동 비석 마을이라는 거대 영상 작품은 뒷 부분에 숨겨져있는 작가 둘의 녹음을 스크립트와 함께 읽으면 풍부하게 읽혀진다. 작품 앞부분에 있는 일부 대사는 뒷편의 스크립트와 연관성이 있다. 대부분 관객은 그렇게까지 다 보고 들을 여유가 없고, 그냥 휙 둘러보고 나갈 뿐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영상이든 녹음이든 러닝타임 동안 다 지켜보면 훨씬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시간을 갖고 다 들어보면,  파라스파라 삼받드하, 수 해파리 사바하, 말미잘 말미잘 말미잘이여!를 녹음하는 작가 둘의 음성이 드라이한 사무직의 음성톤과 전문 성우가 아닌 일반인이 스크립트를 기계적이면서 어색하게 읽는 듯한 음성톤의 어떤 중간의 매력이 느껴진다.


솟구친다!! 빠방!!에 기왕 느낌표를 두 개나 넣었는데.. 수슉, 푸와와앙!!이라고 했는데 이런 톤으로.. 꽈르릉 꼬르릉도...






다른 형태의 돌을 아주 꼼꼼하게 관찰하고 영상에 담았다.


퍼포머 히로무 사토의 무브먼트가 참 좋다. 지하 바닥의 거미, 전갈, 쥐의 움직임을 아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스크립트도 잘 썼다. 존재의 목적이라는 한글 자막이 보였는데 들리는 음성에서 아카시(存在の証)라고 들렸다.


보통 存在の目的 손자이노 모쿠테키라고 해도 의미는 통하지만


목적 대신 証(아카시, 증거)라는 보다 일본스럽게 자연스러운 표현을 썼다.




5. 다음 전시장에서 여러 단채널 비디오 영상을 상영하고 있는데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의도로 만든 두 작품씩 병치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것들이 있다. 


그중 두 작품 한 세트로 두 세트가 인상적이다. 


한 세트는 수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돌에 대한 것이다.


먼저 전시 주제인 돌부터.


두 영상 속에서 작가는 돌 부처상을 꼼꼼하게 만지고 본다. "꼼꼼하다"는 표현을 최대한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꽤나 전문적인 락 클라이머로 보이는 작가는 큰 돌부처상을 맨 손으로 만지면서 오른다. 이것이 정말 제대로 돌을 만지는 것!


옆의 작품에서는 돌부처상의 모든 명칭을 기술적으로 분석하고 묘사하면서 아주 꼼꼼하게 훑는다. 빌 브라이슨 같이 발칙하면서 집요한 느낌이다.


야릇하면서 동시에 매우 테크니컬한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정말 돌부처를 사랑하는구나.


작품의 감각과는 상관없는 예시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뒷 부분 어디에서 사람 가죽을 벗기고 가죽 해체 기술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부처 가사 명칭부터 시작해서 두툼한 손에 대한 애정어린 표현까지, 정말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작품을 관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다. 






작가에 의해 꼼꼼히 만져지는 우리 돌부처님.


6. 수어 영상은 따로 만들어졌으나 두 개를 병치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겼다.


좌측은 수어를 9명이 배우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고,


우측은 여호와의 증인 야외 예배에서 수어를 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의 노트에 동생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고 어머니와 간다고 함께 참여를 권유해서 참석했다고 했다.


일반적인 도슨트 설명에서는 이런 작가의 사적 배경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로 관람객의 흥미를 유도할 것이다.


도슨트를 경유하지 않는 일반적인 관객들은 이게 뭐야? 예배랑 수어네 주제만 하고 넘어갈 것이다. 


둘 다 한계가 있다.


우선, 작가의 사적 배경이 작품 감상에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고 아닐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여호와의 증인 신도니까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별 관련 없다. 남 이야기를 좋아하는 호사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것이다. 


작가의 퍼스널한 부분은 아무럼 어떤가. 남의 뒷담화일 뿐이다.


진지한 관람객은 그러나 굳이 왜 그 기회를 영상으로 작품으로 만드는 수고를 했고, 전체를 롱테이크하는 게 아니라 어떤 부분을 촬영했으며, 왜 이 두 작품을 병치해서 한 작품으로 구성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동생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말보다 더 흥미로운 작가의 말은 다음에 있다. 이런 부분을 포착하면 작품을 읽을 때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언니는 예술을 믿고 나는 종교를 믿는거야.


그럼 여기서 우리는 저 영상에 보이는 종교적 특성과 예술의 특성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


열광적인, 메시아에 의지하는, 추상적인 것을 말하는, 거대 퍼포먼스를 하는, 권위에 저항하는 듯 하면서 어떤 권위에는 저항하지 않는 등등..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이 작품이 병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비교분석하는 시각적 훈련을 할 수 있다.


작품 안에서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오래 생각해보는 이런 심도 깊은 생각이 우리를 한 걸음 더 지적으로 나은 시민으로 만든다.




작가의 말에서 아티스트로서 어떤 가벼움이 느껴진다. 그들에게도 멋진 부분이 있다. 




좌측과 우측을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별해내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의미와 맥락을 이끌어내는 작문 훈련을 해볼 수 있다. 미국 AP 미술사의 핵심 작문 문제이다. 다음 두 작품을 시각적으로 분석하고 맥락을 말해보세요.


대상의 공통점

좌측 수어: 닐리리맘보라는 노래와 춤

우측 예배: 기독교 노래와 춤


대상의 차이점

좌측은 지금 막 배운 자유로운 메시지의 가사와 어색하지만 흥겨운 리듬 

우측은 단선적 방식의 춤과 이미 공유되고 학습된 단일한 메시지의 가사


장소의 공통점

전투기 엔진소리가 들리는 공군기지 근처의 수원

상암 월드컵 경기장. 경기와 공연으로 인해 주변 아파트 단지의 민원이 많다

둘 다 소음이 있는 공간이지만


장소의 차이점

좌측은 밖에서 안으로 외부소음이, 원하지 않는 시간, 훈련 일정이 사전 공지되지 않은 알 수 없는 시간대에 불규칙적으로 굉음이 들린다

우측으 안에서 밖으로 소음이 나가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생활에 불편함을 가한다.


연출의 공통점

청각장애의 시선을 담아 경험을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좌측은 닐리리 맘보 노래와 춤을 수어로 배우면서 청각 장애자의 환경에 공감한다.

우측 예배 촬영 카메라는 수어 쓰는 사람들을 촬영할 때는 음소거를 하고 다른 부분을 카메라에 담을 때는 음성을 넣어서

마치 수인들의 시선처럼 연출했다.


그외 생각해볼 점

둘 다 무언가를 배운다. 수어를, 기독교 구원의 메시지를

등장인물 좌측은 나이대가 다른 한국 여성 9명이고 우측은 동남아 등 전세계 각국의 사람 일부를 포함해 대부분 한국인 5만명이다. 이들을 묶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한 장소에 모이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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