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하게 나는 어제 브뤼셀 프라이를 갔었다. 청주 길가에 있는 랜덤한 가게였다. 러시아어를 하는 다문화 가족이 키오스크 ㅅ용에 애를 먹고 있었고 무슨 메뉴를 시킬지 토론하고 있었다. 줄이 너무 길어지자 매니저가 앞쪽에서 도와준다고 해서 앞서 가서 주문했다. 한국사람의 시스템 활용에서 융통성이 엿보인다. 외국 어느 공항에서 연착된 비행기의 짐들이 섞였는데 직원들이 우왕자왕하자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이 적극 나서서 이름표보고 김사장님 최사모님 하면서 대신 나서서 짐 분배하고 시간 세이브해서 일처리를 했다는 어느 소감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일본인은 이런 상황에서 매뉴얼이 없고 아마 무작정 기다릴 것이다. 외국인들은 음식 앞에서 오랫동안 무엇을 먹을지 토론하는 과정 자체도 하나의 문화다.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까 이것을 먹고 나는 이것을 좋아하니까 이것을 먹고, 그럼 이렇게 시킬까? 이런 조합은 어때? 너 저번에 이거 먹었잖아. 이게 뭐야? 이 메뉴는 무슨 음식이야? 이건 이거야 아 그럼 이거 먹을래 아냐 저게 나아 잠깐 여기 사이드가 있다는데? 이건 뭐지? 그런데 키오스크를 설치한 매장의 의도는 회전율에 있었을테니 뒷 주문을 먼저 받기 위해 인터셉트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왔을 법한 가족의 이해할 수 없는 러시아어를 다 들어줄 여유가 당장 오늘 매출을 걱정해야하는 한국의 자영업자에게는 없다. 내가 주문을 받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어의 어려움과 키오스크 구동의 어려움이라는 이중 문제에 고초를 겪고 있던 가족이 어렵사리 주문을 마치었는데 직원이 소스를 선택하셔야한다고 하니 어눌한 한국어로 "꼭 해야 돼요?"라고 답했다. 직원이 "안 하셔도 돼요"라고 하자. "오 네 좋아요 감사해요"하고 답했다. 십 종 이상의 소스의 다양함이 아니면 브뤼셀 프라이라는 브랜드의 매력이 없다. 그냥 프랜차이즈 버거집의 감자튀김을 시키는 것이 더 싸다. 감자튀김 하나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브뤼셀 프라이 가게에 가는 이유는 튀긴 감자 자체의 퀄리티도 있지만 다양한 소스를 고르고 맛보는 미각적 경험에 있다. 그런데 그러한 브랜드가 의도한 온전한 소비자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한국인 전체가 코로나 이후 몇 년간에 거쳐 자연스럽게 학습한 키오스크 주문이라는 프로세스에 대한 몰이해 및 미숙함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유럽의 어느 파인다이닝이나 일본의 어느 료칸에서 얻는 경험의 불완전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인이면 당연히 알고 있는 레스토랑에서의 당연히 요구하고 즐길 수 있는 서비스 같은 것들을 현지언어와 현지문화에 대한 경험족으로 인해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스타에 유럽 어느 레스토랑 사진을 올릴 뿐인데, 냉동 레토로트 음식을 댑혀놓은 음식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며 행복해하는 외국인에게 누구도 아무 말 안하는 것은 굳이 현지인이 일일이 다 알려주고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싶은 것일뿐이다. 


브뤼셀 프라이라고 하니 6년 전 교수님 따라 국제 학회 참석차 갔던 암스테르담에서 이 가게에서 프라이를 먹어본적 있다. 2000년부터 유럽을 가고 싶었는데 거의 20년만에 갔다. 특이한 소스를 골랐는데 소스보다는 그걸 먹고 있는 더치들의 키가 채 썬 감자처럼 길었다는 인상이었다. 튀긴 감자는 상타치는 맛이다. 갈릭 디핑 소스를 골랐는데 피자집에서 먹을 것 같은 대량생산된 소스였다. 이 역시 어느정도 균질한 맛을 보장한다. 


오늘 오감자 신메뉴 나왔는데 이름이 브뤼셀 프라이라고 해서 GS25에서 구매했다. 약간의 매콤한 맛이 있다. 먹방에서는 이야 맛있다 이야 매콤하다 정도로 탄성만 지르고 끝나는데, 그 이상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해서 한국어 글쓰기의 외연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 목표다. 


오감자의 감자는 프링글스처럼 감자를 반죽해서 만든 과자류와는 달리 감자 자체의 탄성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여러 개를 동시에 먹고 씹으면 입안에서 새로 감자를 반죽하는 것 같다. 찍먹하는 소스로 차별화를 둔 오감자의 이번 신메뉴는 시즈닝의 풍성함과 칼칼함이다. 두툼한 감자와 두터운 시즈닝이 중무장한 보병과도 닮았다.


칠리는 한국적으로 맵다. 칼칼하고 찌르는 듯한 화끈함이다. 중미가 원산지인 칠리를 한국적으로 맵게 만들었다. 한국의 매운맛의 특징은 무엇이냐? ‘확 치솟았다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미각세포에 닿는 순간 칼칼한 불길과 같은 통증이 확 올라왔다가, 깔끔하게 사그라드는 기묘한 리듬이 있다. 어리석은 스테레오타입이지만 소위 말하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처럼, 순간 욱하지만 뒤끝 없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어느 외항사 승무원이 한국인 승객에게 물을 실수로 쏟으면 욱하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주고 잘 마무리된다고 했다. 그런 느낌의 욱한 매운 맛이다. 고추장처럼 매우면서도 달달한, 매운데도 묘하게 끌리는 중독성이 있다. 얼큰하다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뜨끈하고 보드라운 사골국물 속에서도 매운맛이 퍼지며, 속을 확 풀어주면서도 한방 맞은 듯한 개운함을 남긴다. 그 매운 맛은 식사 종료 후에는 지속되지 않는다. 스파링 대전 이후에 신사답게 인사하고 헤어지는 선수처럼 한국의 매운 맛은 음식 이후까지 뒤끝을 남기지 않는다.


일본적 매운 맛이라고 한다면 첫 인상에 알 수 없으나, 스며들듯 은근하게 찌르는 얼얼한 향기와 그 후속타라고 하겠다. 와사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공포영화와도 닮았다. 당장 스크린을 볼 때는 안 무서운데 일상생활에서 자꾸 기억이 나서 이불 아래나 침대 밑을 살펴보게 만드는 후속형 음산한 공포다. 그러한 일본식 공포처럼 일본의 매운맛은 겉으로 티를 안 낸다. 향에서부터도 알싸하지 않다. 처음엔 별거 아닌 듯하다가, 코에서 P파로 처럼 훅 올라오며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기습 공격을 가하고, 혀에서는 서서히 S파로 올라오는 얼얼한 파동이 있다. 지진과 후속 쓰나미와도 같다. 마치 일본인 특유의 예의 바른 미소 뒤에서 뒤늦게 느껴지는 차가운 거리감처럼. 외항사 승무원 왈 일본인에게 물을 쏟으면 앞에서는 웃고 일주일 후 본사에 컴플레인 레터를 보낸다고 한다. 쓰나미와 같은 후속공격이 있다. 그러나 그 레터도 정식 접수하고 사과하면 없던 일이 된다. 일본식 매운맛은 설령 후속타가 있을 지언정 끈적이지 않고, 바람처럼 스쳐간다.


반면 중국적 매운 맛은 시각적 선명성, 진동하는 마비감과 지속되는 뜨거움이 특징이다. 강렬한 채도의 빨간색이 시각적으로 일단 맵다고 화려하게 광고, 아니 통보한다. 일본의 푸르른 벌판을 닮은 와사비는 매운지 아닌지 색채 상징으로는 알 수 없다. 한국의 다대기는 돼지국밥 국물에 섞어 파스텔톤이 되고, 일단 단맛이 함께 있는 맵단이다. 중국적 매운 맛은 아주 선명하고 확실하다. 중국의 선이 굵은 매운맛은 혀에 꽂히는 순간, 진동수가 느껴진다. 마라(麻辣)라는 단어 그대로, 혀를 찌릿찌릿 울리면서 미각을 무디게만든다. 단순히 혀가 불타는 게 아니라, 입 안 전체가 알싸한 전류에 감전된 듯한 마비감에 휩싸인다. 향이나 열이 아니라 전기와 같은 찌릿한 매운 맛이다. 불덩이가 입 안을 떠돌며 계속 재점화하는 느낌을 준다. 한 번 매운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몰려오는 매움의 고문이다. 그 맵기 고문의 끝에 한국적 매운 맛은 단맛으로 혀를 다독여준다면, 중국적 매운 맛은 기름기로 혀를 다독여준다. 그러나 그 기름은 또한 매운맛을 입천장에 찰싹 달라붙게 만들며 오래도록 남게 하는 역할도 하여, 제국적 주권의 힘을 보여준다. 중국음식 특유의 강렬하고 묵직하고 선명한 느낌은 몽골의 사막에서 직선으로 세차게 달려오는 유목민 보병과도 같다. 질주하는 보병을 성에서 육안으로 관찰했다면 일단 퇴로는 없다. 그 기병대는 달려온다고 모래바람으로 광고하고, 자신의 존재목적에 따라 단일한 방향성으로 쉬지 않고 달려오고, 방어군은 이미 대피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30분간의 시간 동안 공격대도 방어군도 임박한 종말과 파괴에 대해 알고 있다. 바울의 종말론적 수행성처럼, 다가오는 멸망의 날을 알고 있음에도 남은 날을 살고 있는 그런 감각과도 같다. 시뻘건 중국 음식점에서 새빨간 메뉴를 골라 기다리는 순간이 바로 그렇다. 미각세포에 고통이 임박하였다. 음식을 기다리는 30분은 그 고통의 도래를 알고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불닭볶음면은 주목할 만하다. 나에게는 너무 매워서 수 년 전 한 번만 먹어보았다. 그 안에는 어떤 직선적인 강렬함이 있었다. 남한산성에서 근왕군을 기다리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9회말 2아웃의 역전을 기다리는, 짧고 강한 한 방의 구원 같은 것이다. 돌직구처럼 직선적인 불닭 소스는 강렬한 타격이 먼저 오고, 끝은 심플하다. 중국의 매운 맛처럼 계속 빙빙 돌며 타격하지 않는다. 펑하고 터지는 매운 맛은 포탄과도 같아 원하던 소원이 해결된 이후에는 여운이 길게 남거나 리듬감이 있지는 않는다. 씹을 때마다 베스킨라빈스 슈팅스타처럼 톡톡하고 터지지만 자체로 깊게 스며들지는 않는 할라피뇨와는 달리, 불닭 바베큐 소스 속의 달달한 맛과 함께 어울려서, 지금 이 순간 현세에는 맵지만 내세는 금방 잊히는 스타일이다. 강한 임팩트는 있지만 오래 곱씹게 되지는 않는, 냄비근성의 장점, 뒤끝없는 여운을 제거한 매운맛이다.


오감자의 두터운 시즈닝과 함께 있는 소스의 매운 맛은 한국적 매운 맛을 잘 살렸다. 강한 임팩트, 여운없는 뒷맛은 깔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