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MBTI로 말하며 EOFO가 아니면 거의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업이다. 하버드의 교육학자이자 심리학자이 하워드 가드너는 그의 저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에서 IQ말고 여러 형태의 지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수리지능을 주로 측정하는 IQ의 획일적 폭력성을 거부하며, 다양한 지능 카테고리를 제시했다. 그 8가지는 언어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공간 지능, 신체-운동적 지능, 음악 지능, 개인 내 지능, 자연주의적 지능과 대인관계 지능 같은 것이다.
아마 작가는 대인관계 지능이 아주 발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인관계 지능이 높다는 것이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한 지능의 고저가 다른 한 지능의 고저와 같은 차원에서 동등하게 평가받아야한다면, 대인관계 지능이 높다는 것은 곧 수능 수리영역 100점받는 것과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것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같게 여겨져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대인관계 지능이 높게 평가받고 그런 이들이 할 수 있는 전문 직업군이 따로 있다. 예를 들어 로비스트, 커뮤니티 빌더, 파티 메이커와 같은 사람들. 스탠포드 경제학 교수 매튜 잭슨은 인간관계를 정량적 분석방법과 네트워크망 이론으로 분석한 책을 냈는데 여기 어딘가에서 백인들의 인적 관계망이 흑인보다 더 촘촘하다고 엘리트로 갈 수록 더 촘촘한 것을 보여준 시각화 자료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도 꽌씨가 중요하다는 것. 미국인들은 엘리트로 갈수록 정말 한 다리 건너 다 알고 지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인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파티인 것이다. 하루에 천만원에서 1억씩하는 파티들. 그 파티에 초대받고 와서 서로 안면을 트고 하는 것인데, 이게 다 관계지향적인 사람들이 기획자이고 주최자이고 한 것이다. 자기는 대단한 수리지능, 공간지능같은 것이 없더라도 서로 서로 연결해주고 필요한 게 있다면 잘 하는 사람 알아봐주고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싸 중 인싸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신수와 작가의 비디오 기록에서 인상깊었던 것은 거절당해도 얼굴표정이 변하지 않는 점이었다.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까? 그랬을 수 있고, 또 몇 개월의 거절 속에 무뎌졌을 수도, 혹은 일일이 기록할만큼의 꼼꼼함이 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다 기억하고 상처받았을 수 있다. 그것은 알 수 없다. 심지어 그 과정의 일부를 되새김절하고 취사선택을 거쳐 그 거절의 내용을 전시해두었다. 내가 이렇게 힘들었어요! 하고 징징거리지 않는 방식으로, 이렇게 못되게 말하는 나쁜 놈이 있어요! 하고 고자질하지 않는 방식으로. 덤덤하게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showing, not telling)하고 있었다.
작가에게 경이로운 점은, 모두가 예술하면 회화 같은 것을 상상하는 나라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자신만의 신념을 세우고(立志) 자신을 관계지향적 작가라고 정의하고(define) 6개월 이상의 장기간에 거친 후회와 회복(resilience)를 거쳐 500여 거절의 인내해(perseverence) 무언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그것을 한 기관에 투고해 심사를 거쳐 받아내 어느 장소에 자기 이름을 걸고 결과물을 올렸다는 것이다.
공동체와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관계지향적 사람이 가장 핵심적이지만 그 사람의 역할과 그 재능의 가치는 종종 평가절하당하기 일쑤다. 당장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멋진 조각을 만든 것도, 추위를 막을 집을 세운 것도, 우물물을 정수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역할이 이제 먹고 살만해진 선진국으로서 한국에는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다. 인프라는 좋은데 시스템 정비가 안된 이 나라의 시스템 운용문제는 예를 들어 세계 최고의 공항 시설을 몇 조원을 들여 지어놓고 사람 운용이 안되어서 불편함을 끼치는 인천공항에서 드러난다. 또한 전력발전소는 다 지어놓고 송전선이 부족하고 호환이 안되서 전력수급에 난항을 겪는 어이없는 문제에서 드러난다. 인프라를 놀리고 시스템 운용이 안되는 어이없는 문제는 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다. 부처간 협력과 원활한 소통이 안되니 서로 따로 놀다가 발생하는 것이 소프트웨어의 미정비 문제다. 그런 문제는 관계지향인들이 풀어야하는데 이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는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담사정도하고 있을 것이다. 소중하지만 인정받지못하는 일들을.
작가는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 뿐, 그걸 세련된 학술 용어로 바꾸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러나 예술활동을 하려면 비단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업계의 전문 어법으로 자기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야한다. 거의 대부분 영어로. 외국에 미술유학을 간다면 자신의 작품을 외국어로 얼마나 풀어낼 수 있는지가 사실상 관건이다. 이건 시험문제의 정답을 맞추고 일반적인 회화를 하는 차원을 넘어 더 깊은 고민이 들어간다. 작가에게 참 많은 것을 원한다. 그런데 원래 창조적인 직업에는 많은 것이 요구되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한다. 기타치며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는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 스트로크를 하고 입으로 노래를 부르고 귀로 드럼 베이스를 듣고 머리로는 멜로디와 가사를 기억해내고 발로는 타이밍 맞춰서 이펙터를 밟아야하고, 연주를 하지 않을 때는 중소기업 사장이나 팀장이 되어서 재무 마케팅 섭외 페이 팬과의 소통 스케쥴 다음 작곡 등등 모든 것을 고민해야한다. 예술가는 인류사회 최고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각자 도생, 시스템을 파격해서라도 자신의 이득 추구, 기복신앙, 서바이벌이 시대정신이 된 한국사회에 관계지향적이라고 자기를 정의하고 예술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드로잉, 채색, 영상, 조각, 공예 등 다른 예술군은 얼마든지 있다. 퍼포먼스 아티스트는 정말 독고다이다. 비빌 언덕이 없다. 앞으로 그 길은 험할 것이다. 매우 고귀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관계지향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무척이나 필요하다.
9. 전시회장 마지막의 영어로 된 작가 프로필 및 작업설명은 이렇게 되어있다.

이런 설명은 전문 큐레이터나 미술 비평가 혹은 미술관 애호가가 읽기에는 다소 보완점이 있다. 한국어 자체를 영어로 바꾼 것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영어권 사람들이 원하는 표현방식은 아니다. 한국어 원문의도에 맞게 조금 더 다듬어보면 이렇다.
예를 들어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
1) 작가의 배경
원래: SHIN Suwa’s work is a heartfelt tribute to the village that shaped her over the 25 years she lived there, and to the neighbors who offered her a sense of safety and familiarity.
수정: SHIN Suwa’s practice is deeply rooted in the social fabric of her community, engaging with themes of intimacy, trust, and the negotiation of personal and public space.
-물성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 퍼포먼스이므로 work보다는 practice가 조금 더 적절하다.
- heartfelt tribute라고 한 이유는 한국어 원문이 '신수와의 작업은 ~ 작별인사다.'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적인 표현은 구조적이고 명확성을 요구하는 전시 서문에는 지양한다. deeply rooted가 좋다. 기왕에 rooted를 썼으면 사회구조라는 의미에서 village대신 social fabric이 좋다. 실제로 작업도 그런 커뮤니티의 날실과 같은 곳을 다루고 있다. 사회적 직물social fabric이 좋다.
-작업이 무엇을 다룬다고 할 때 engage with이 좋다. 어떤 테마를? intimacy를. familiarity보다 더 나은 표현이다. 원문에서도 a sense of safety and familiarity라고 주제를 간접적으로 전달했으나 보다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좋다.
한국어: 신수와 작가의 예술 실천은 그녀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 구조(결속)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친밀함, 신뢰, 그리고 사적·공적 공간의 교섭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2) 여기에 추가로 이런 문장을 넣으면 금상첨화다. 이런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작업 설명 구절이 있어야 국제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있다.
추가: Her work challenges conventional notions of relationality by transposing private acts into public spheres, transforming everyday interactions into critical inquiries on human connection.
한국어: 그녀의 작업은 사적인 행위를 공적 영역으로 전이시키며 관계성에 대한 기존의 개념에 도전하고, 일상의 상호작용을 인간적 연결성에 대한 비판적 탐구로 전환시킨다.
3) 첫 번째 작품 소개
원래 : Her project Be Nu (累) takes the form of an unconventional exploration of trust and boundaries. In this piece, SHIN randomly rang the doorbells of her neighbors, asking if she could take a shower in their homes.
수정: In Be Nu (累), SHIN undertook an extended durational performance, knocking on the doors of 500 neighbors to ask for permission to shower in their homes.
- project ... takes the form 은 어색하다. undertake가 적절하다.
- piece아니고 act다. 활동이었으므로 작품이 아니다.
-randomly rang하면 초인종 누르고 도망치는 어린아이 장난prank같은 느낌을 준다.
-두 문장을 연결해야 경제적이고 압축적이다. rang이하의 내용을 knocking 동명사로 연결한다. 앞문장은 의도, 뒷문장은 어떻게 했느냐는 것이다.
-한국어 문장은 <비누>(사실 여기도 비누의 향과 향에 묻힌 사람의 친밀함과 사적영역 같은 알레고리가 있는데 작품 설명에서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에세이에 있었다.)는 ~~~ 거절과 승낙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였다. 영어는 다르게 썼다. "그녀의 프로젝트 비누는 신뢰와 경계의 비관습적 탐험의 형태를 취한다. 이 작품에서 신수와는 그녀의 이웃 초인종을 랜덤하게 눌렀고, 자신들의 집에서 샤워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이다.
-그러나 영어권 사람들은 그녀의 프로젝트는~ 무엇이다. 하고 수식어로 압축된 정의를 원한다. take.. 이런 일반 동사가 들어올 타이밍이 아니다. 그러니 적절한 표현은 "비누에서 신수와는 장기간(extended)에 걸친(durational) performance(퍼포먼스)를 진행해(undertook)이다. 그럼 영어권 사람들은 아! 비누라는 프로젝트는 extended durational performace구나 하고 개념이 딱 정박된다. 그 다음에 그에 대한 부가 설명은 ving 이하의 내용이다. 노크했다는 것이다.
한국어: (그녀의 프로젝트) Be Nu (累)에서 신수와는 장기간에 걸친 퍼포먼스를 수행하며 500명의 이웃을 찾아가 그들의 집에서 샤워를 할 수 있는지 허락을 구했다.
4) 첫 번째 작품 과정 설명
원래: The resulting interactions ranged from hesitation to outright rejection, to acts of generosity—nine neighbors eventually opened their bathrooms to her, transforming these private spaces into the settings for her performances.
-9명의 이웃이 결국 응답을 해줬다에서 느껴지는 승리감보다는 조금 더 깊은 함의를 나타내는 문장을 넣는 게 낫다. arm은 무장하다인데 disarm은 비무장이므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듯한 솔직함, 간단함 같은 것이다.
-open the bathrooms to her은 번역투다. 이런 식으로 잘 쓰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샤워할 수 있는지 허락을 구한다라고하는 것이 더 좋다. to ask for permission to shower in their homes.
수정: This act, at once disarmingly simple and profoundly transgressive, tested the limits of social hospitality, exposing the subtle tensions between generosity, vulnerability, and personal boundaries.
한국어: 이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솔직히(극히) 단순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환대의 한계를 시험하는 급진적인 개입이었으며, 관대함과 취약함, 그리고 개인적 경계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긴장을 드러냈다.
5) 두 번째 작품 소개
원래: In The Woman Who Bothers Others, SHIN documents her months-long journey of knocking on 500 doors.
6) 두 번째 작품 설명
This act of persistence and connection became the foundation for a photographic series that inspired others to write novelistic essays, weaving fiction and memory into a collective narrative.
-이 두 작품은 첫 번째 작품과 연결된 것인데, knocking on이나 persistence and connection같은 부분은 반복적이어서 앞 문장과 붙여서 쓰는 게 낫다.
수정 : The responses—ranging from hesitation and rejection to moments of unexpected warmth—became the foundation for a photographic series that later inspired literary reflections on memory and communal life.
한국어: 망설임과 거절에서부터 예상치 못한 따뜻한 환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응들은 이후 사진 연작의 기초가 되었으며, 이는 기억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7) 세 번째 작품 소개
원래: Another piece, Contentious Perilla Leaf, draws on a well-known social question about personal boundaries to probe the limits of intimacy and permission.
수정: Similarly, her project Contentious Perilla Leaf engages with an everyday domestic gesture—the act of removing perilla leaves for another person—reframing it as an exploration of interpersonal closeness and unspoken social expectations. By inviting strangers to perform this intimate task, SHIN disrupts the implicit codes of familial and romantic relationships, situating private rituals within a public space to interrogate the mechanics of care and dependency.
-흔들고 disrupt 이 부분 이 작품에 대한 임팩트를 준다. 깻잎 떼어주기 같은 것은 사적, 연인간의 행위인데 그 암묵적 규범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돌봄과 의존의 구조라는 표현은 작가가 누군가에게 해달라고 호소하므로 의존적인 행위에 대한 추상적 부연설명이다.
한국어: 비슷한 맥락에서 작가의 프로젝트 논쟁적인 깻잎(Contentious Perilla Leaf)은 일상적인 가사 행위를 재구성한다. 이는 타인의 깻잎을 떼어주는 단순한 몸짓을 통해 인간관계의 친밀함과 암묵적인 사회적 기대를 탐색하는 작업이다. 신수와 작가는 낯선 이들에게 이 친밀한 행위를 요청함으로써 가족적·연인 관계에서의 암묵적 규범을 흔들고, 사적 의례를 공적 공간으로 옮겨 돌봄과 의존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8) 세 번째 작품 설명
원래: Through these works, SHIN investigates the structures of human relationships, turning ordinary interactions into experimental spaces for connection and dialogue.
-함의가 약하다. 일상 상호작용을 관계형성의 장으로 바꿨다정도는 임팩트가 약하다. 더 큰 학술적 논의의 장으로 진입시켜야한다.
수정: Through these works, SHIN extends the lineage of relational aesthetics, positioning her artistic interventions within broader conversations on participatory art and social practice.
한국어: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계보를 확장하며, 그녀의 예술적 개입을 참여적 예술과 사회적 실천에 대한 더 넓은 담론 속에 위치시킨다. 그래야 그 담론을 운용하는 여러 비평가, 교수, 작가들이 개입해 자기 작품을 예시로 쓰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바이럴시키기 때문이다.
9) 작가 의도
원래: SHIN’s art is deeply relational, shaped by the unique dynamics of her community. The village and its inhabitants did more than nurture her—they became integral to her artistic practice. For SHIN, every project is a conversation, a reflection on shared spaces and experiences, and a testament to the bonds that give meaning to our lives.
-이 부분을 약간 줄이고 다듬을 필요가 있다.
수정: Her performances do not merely document social interactions but actively construct new relational dynamics, offering a critical lens on the ways we negotiate space, trust, and intimacy in contemporary society.
그녀의 퍼포먼스는 단순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록을 넘어, 새로운 관계적 역학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며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공간, 신뢰, 친밀함을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SHIN Suwa: Intimacy, Boundaries, and the Politics of Everyday Encounters
SHIN Suwa’s practice is deeply rooted in the social fabric of her community, engaging with themes of intimacy, trust, and the negotiation of personal and public space. Her work challenges conventional notions of relationality by transposing private acts into public spheres, transforming everyday interactions into critical inquiries on human connection.
In Be Nu (累), SHIN undertook an extended durational performance, knocking on the doors of 500 neighbors to ask for permission to shower in their homes. This act, at once disarmingly simple and profoundly transgressive, tested the limits of social hospitality, exposing the subtle tensions between generosity, vulnerability, and personal boundaries. The responses—ranging from hesitation and rejection to moments of unexpected warmth—became the foundation for a photographic series that later inspired literary reflections on memory and communal life.
Similarly, her project Contentious Perilla Leaf engages with an everyday domestic gesture—the act of removing perilla leaves for another person—reframing it as an exploration of interpersonal closeness and unspoken social expectations. By inviting strangers to perform this intimate task, SHIN disrupts the implicit codes of familial and romantic relationships, situating private rituals within a public space to interrogate the mechanics of care and dependency.
Through these works, SHIN extends the lineage of relational aesthetics, positioning her artistic interventions within broader conversations on participatory art and social practice. Her performances do not merely document social interactions but actively construct new relational dynamics, offering a critical lens on the ways we negotiate space, trust, and intimacy in contemporary society.
11. 그 다음에는?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 신수와 작가는 유투브나 틱톡에 보이는 사회적 실험을 진지하게 시도하면서 친밀감과 대중적 상호작용의 경계를 탐험해보고 싶은 것 같다. 즉물적 쾌락과 즉각적 반응을 추구하는 SNS 크리에이터와는 달리 진지한 접근법으로 인내심(6개월간 500 노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들과는 차별된다.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관찰자로서 문화인류학의 시각을 지니고 있다. 식사와 샤워라는 사적인 일상 활동을 선택한 것도 작품의 메시지를 위해 적절하다.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공적 영역으로 옮겨와서 아티스트 자신을 매개체로 관계, 경계, 신뢰에 대한 성찰을 유발하고자 했다.
영감과 확장을 위해 참고할 수 있는, 비슷한 접근 방식을 가진 작가들은 예를 들어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대명사라고 말할 수 있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있다. Rhythm 0같은 작품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다양한 물건으로 작가에게 무엇이든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신체적 정서적 한계를 시험하려 했다. The Artist is Present에서는 관객과 침묵 속에 장시간 눈을 마주치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 모두 어느 정도의 인내심이 요구되며, 동시에 작품으로서 자아정체성을 별도로 확립해야한다. 물론 테칭 시에Tehching Hsieh의 1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에 갇혀 있는 퍼포먼스처럼 극단적으로 긴 것도 있다. 신수와 작가는 깻잎 작품에서 어느정도 작품-자아의 분리를 보여주었다. 장시간 상호작용을 하는 퍼포먼스나 인내 기반 퍼포먼스를 탐구할 수 있는 역량을 증명했다. 이를 기반으로 조금 더 대범하고 파격적으로 나아가 개인 공간에 대한 친밀한 '침해'를 접근할 수도 있겠다. 사회적 실험에서 나온 반응을 서사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으로 기록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도 에세이를 통해 증명했다. 그럼 이제 설치물이나 다른 매체로 확장해볼 수도 있겠다. 사람이 아니라 AI, 비인간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탐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조금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작업을 더 큰 사회적, 국제적 문제와 연결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생애주기에 맞춰 떠나가는 공간(아마 안산?)과의 분리가 중요 모티프였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안산에 있는 미술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지역적으로도 한국의 한 도시, 주제로서도 일상적 활동(식사와 샤워)와 같은 작은 범위의 일이었다.
가장 추천하는 것은 이 활동의 연작에 있어서 다른 도시(그러나 대도시가 아니라 그 나라에서 안산급의 도시)에서 같은 활동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시 생활에서 신뢰, 다른 문화권에서의 환대 같은 사회정치적 주제를 국제문화비교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시로는 2001년 김수자의 바늘이 있다. 그냥 길거리에 서있는 10분 남짓의 영상을, 멕시코, 이집트, 영국, 나이지리아에서 찍어 동양여성의 알 수 없는 행동을 관찰하는 현지인들의 시선과 반응을 담았다. MMCA과천에서 처음봤는데 얼마 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 가니 여전히 상영되고 있어, 작품의 설득력과 매력이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사회적 맥락, 국제 문화비교적 분석틀을 취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하나의 문화적 틀에 머무르지말고 친밀감과 경계가 문화권 간에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하기 위해 복수의 다른 국가에서 같은 형태의 실험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깻잎에 대해 고수처럼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온갖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나올 것이다.
또한 지금은 퍼포먼스를 사진과 에세이형태의 매체로 치환했을 뿐이지만 조금 더 서사가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의 반응 패턴을 분석하고, 보다 구조화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기록하며, 이를 설득력 있는 네러티브로 만드는 것이다. 성덕일기 같은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최근 기술에 친화력이 있다면 혹은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AI를 개발해볼 수 있다. 지금 전시중인 도쿄 모리미술관 AI전에서 Diemut는 LLM거대언어모델 기반으로 AI를 만들어 두 AI가 chatgpt를 기반으로 서로 대화하게 만들었다. 내 생각에는 작가 대신 AI가 남에게 물어보는 역할을 하게 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 예컨대 AI가 온라인의 낯선 사람에게 랜덤하게 영상 통화를 연결해 친밀한 척 특정한 질문을 던지게 하거나 개인적인 호의를 요청하는 AI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디지털 친밀감 탐구과 비인간에 대한 거절과 수용을 탐구해볼 수 있다. 이것은 근미래적인 탐구이다.
보다 전통적인 접근방식은 커뮤니티 기반 활동이다. 대부분의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도전하고 몰두하고 있는 케이스들이다. 사회적 규범을 테스트하는 사전 설정된 조건에서 방문객이 서로 교류하는 참여형 설치물을 만드는 부류이다.
조금 더 네임밸류와 커리어가 있는 작가들은 기관과 협업하여 박물관 레지던시, 사회 심리학 연구펀딩 혹은 도시 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로컬 커뮤니티에서의 사회적 교류를 탐구한다. 생각나는 것으로는 전 세계 소녀상과의 대화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다. 그냥 생각나는 것을 브레인스토밍해서 던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