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꼭두전에서 꼭두 대표의 인터뷰가 가장 감명 깊었다. 거대한 불상 도자기 그런 것은 다른 동아시아에 얼마든지 있다. 꼭두는 독특하고 처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 박물관 미술관 대회에서 잠깐 15분 발표를 했는데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고 뉴욕 3년 전시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냥 청계천에 버리는 쓰레기 였다. 혹은 무덤에 묻어서 잊혀지고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꼭두에 세계의 관심이 있다. 


2. 그러나 전시 설명은 너무 아쉬웠다. 전시 개요를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했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되는 설명방식이다. 한국어를 그냥 다른 외국어로 옮긴다고 내용이 다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외국도서를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아무리 한국어로 읽고 있지만 뭔가 사고방식이나 설명방식이 다르다고 느낀 점이 없는가? 외국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워서 말할 때 자세히 들어보면, 원어로 생각해서 한국어로 바꾸고 있는데 네이티브 같지는 않은 이질감이 든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나 생각 전개 방향도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방식과는 다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유명한, 캐나다의 사회심리학자이자 문화 비평가인 조던 피터슨의 책을 읽어보면 분명 내용은 어디선가 읽어봤던 것 같은데 논리 전개 방식 같은 부분에서 조금 이물감이 느껴진다. 


위의 꼭두전 전시 설명이 대표적이다. 나는 이 전시의 영어설명이 아쉽고, 보완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번역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꼭두를 어떻게 외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할까에 대한 문제이다. 꼭두를, 뉴욕 Met 뮤지엄, 테이트모던, 루브르에서 전시회를 한다면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은 무엇을 알고 싶어할까?


사진 확대하면 한국어도 보인다.


3. 영어는 대략 이렇게 쓰여있다. 

Life ends, as it does for all living things. Death, a constant stranger to the living, is something we've never truly known. Death is whispered to be the beginning of a journey into the unknown. The living may feel deep sadness inthe face of death, but they cannot join the journey to the next world. All they can do is sending someone with those who must go. The only friend on the way to the other side is Kokdu. Just as the midwife welcomes us at birth and the parents care for us in life, when we exhale our last breath here and inhale the first in the afterlife, it is Kkodu who welcomes and guides us. And this exhibition invites you to meet Kkodu, a Korean carved wooden figure. Often vibrantly painted, Kokdu figures represent various roles, helping the transition peacefully to the afterlife. Korean ancestors would say "go back" instead of "die," believin that the place we go after death is where we first came from. As we journey through the world of the dead, returning to their spritual home, surrounded by the vibrant and colorful Kokdu, and with a piece of our cherished heritage, we hope you reflect on life and death through the lens of Korean tradition.


문제점은 네 가지다.

우선, 표현이 지나치게 시적이고 철학적이다. 처음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뜬금포로 시작한다. 그러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 설명문은 전시회 개괄-배경-작품-의의 같이 구조적으로 작성된다. 표현하고자하는 바도 명확해야한다. 만약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고 싶었다면, 죽음에 대한 의미를 성찰한다는 표현으로 족하지, 이렇게 "죽음을 바라보는 산 자들의 마음은 비통하지만 그 여행길을 할 수 없다. .. 길동무를 붙여줄 뿐이다... 꼭두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여기서 하나 더 지적할 부분은 "하지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역접의 표현도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비통한 마음의 반대항으로는 그나마 할 수 있는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부분이 나와야한다. 

예를 들어

떠나보내는 마음은 비통하지만,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비통하지만, 남겨진 자들은 망자의 여정을 돕는다.

떠나보내는 마음은 비통하지만, 장례 의식을 통해 그들을 떠나보낸다.

같은 문장이다.


'산 자들은 죽은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도 죽음의 길로 직접 떠날 수 없지만,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전달하고자하는 바에 가깝다.


둘째, 주제의 초점이 모호하다.


글의 초반부에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길게 이어지다가 전시의 핵심 주제인 ‘꼭두’가 늦게 등장한다. 일본의 전시 설명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단어 설명이 있다. 어려운 한자라면 요미가나도 달아둔다. 왜냐? 핵심 용어에 대해 정박시키고 공유해야 탄탄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시 설명에서는 꼭두에 대한 개념이 낯선 방문객들에게 기본 개념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이런 표현 방식이 한국에는 너무 만연하다. 오랫동안 그 화두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한글의 우수성 때문인 것 같다. 너무 가독성이 좋고 외국의 표현들을 원문 그대로 흡수할 수 있어서 설명 없이 지나치는 것이다. 이 점이 확대되어서 한국의 대부분의 업계에 메뉴얼도 없고 데이터베이스도 없고 사수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문화가 너무 만연하다. 이 이야기를 하면 길어지므로 일단 여기서 중단.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이방인이다." 같은 표현은 문학적으로는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전시 설명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명확성이 부족하고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는데 핵심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변죽만 울린다. 이 문제는 다음으로 연결된다.


셋쨰, 꼭두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족


꼭두가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존재라는 점은 언급되지만, 구체적인 역사적, 예술적, 의례적 중요성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직 학술용어가 정비되지 않아서 그럴 수는 있으나, 서양미술에서 보이는 온갖 의복, 안료, 기법에 대한 용어들, 일본장식예술에서 보이는 온갖 부분에 대한 한자용어들이 없다. 이 전시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저 모호한 "꼭두"라는 말 하나 뿐이다.




4. 만약 나라면, 꼭두를 뉴욕이나 영국의 세계 최고의 전시회에서 하는 방식으로 설명하겠다면 이렇게 하겠다.

서양인들은 선진국인들은 일단 처음에 포커스를 딱 잡는다. 그래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전시회의 주제는 무엇인가? 꼭두다. 그래 그럼 꼭두는 무엇인가? 그럼 이제 꼭두를 설명해야한다. 꼭두가 뭐지? 하고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삶은 끝이 없고.. 죽음은 우리의 곁에 있고.. 이런 애매모호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밀한 용어 제시해서 닻을 내려주듯 고정시켜줘야한다. 

1. 용어 정의 및 기능 (당신이 보고 있는 바로 그 것, 꼭두란 무엇인가?)

2. 신앙, 상징 (꼭두의 기원, 배경은 무엇인가? 왜 만들었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 - 꼭두라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

3. 예술적 문학적 가치 (꼭두라는 작품을 통해 읽을 수 있는 한국 전통 사회에 대한 설명, 2단락에서 3단락으로 넘어가며 미시에서 거시로 시각이 확장된다. 마이크로에서 매크로로.)

4. 전시 의의 (그래서 이 전시의 의도는 무엇인가, 왜 꼭두를 전시했는가, 3번을 거쳐서 큰 맥락을 설명해야 확장한만큼 4번의 의의에서 전시회의 가치가 커진다.)



Kokdu: Guardians of the Afterlife

꼭두: 사후 세계의 수호자


In traditional Korean funerary rites, death was not considered the end but rather a passage—a journey requiring both guidance and protection. At the heart of this transition stands kokdu (꼭두), intricately carved and vividly painted wooden figures that accompanied the deceased on their final procession. Adorning funeral biers, these figures served a dual role: providing spiritual guardianship and offering companionship to ease the soul’s journey into the afterlife.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의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에는 길잡이와 보호자가 필요했으며, 바로 그 역할을 맡은 것이 꼭두(꼭두)입니다. 정교하게 조각되고 화려하게(생생하게) 채색된 이 나무 인형들은 상여에 부착되어 망자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며, 영혼이 사후 세계로 평온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영적인 수호와 동반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의 전통 장례 의식에서 사용되는 도구로서 역할을 밝히고, 꼭두에 대한 용어정의를 바로 동격(apposition)으로 넣음. 이렇게 용어를 정박시키는 순간 꼭두는 청계천과 시골 마을에서 버려지는 쓰레기가 아니라 "정교하게intricately 조각되고carved and 생생하게vividly 채색된painted 목각wooden 인형figures"로 재탄생됨. 


The origins of kokdu are deeply rooted in Korean folk beliefs, where death was seen as a return rather than an absolute departure. These wooden effigies embodied this worldview, often appearing in anthropomorphic or zoomorphic forms—jovial jesters, fierce warriors, benevolent caretakers, mythical beasts—each fulfilling a specific function. The jester alleviated sorrow through humor, the warrior warded off malevolent spirits, and the caretaker ensured the deceased did not embark on their journey alone. This fusion of solemnity and playfulness reflects the uniquely Korean approach to mortality: a reverence for the dead, tempered with a belief in the continuity of life beyond death.

꼭두의 기원은 죽음을 절대적인 이별이 아니라 ‘귀환’으로 바라보는 한국 민속 신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을 반영하듯, 꼭두는 인간 또는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며, 익살스러운 광대, 사나운 전사, 자애로운 시중꾼, 신화 속의 짐승 등 각각의 형상은 저마다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광대는 유머로 슬픔을 덜어주고, 전사는 악령을 물리치며, 시중꾼은 망자가 홀로 떠나지 않도록 보살폈습니다. 이처럼 장엄함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꼭두는 한국인 특유의 사후관을 상징합니다. 죽음을 두려운 단절이 아니라 삶의 연속으로 바라보며, 죽은 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믿음이 이 목각상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Beyond their ritualistic function, kokdu also offer insight into Korea’s artistic traditions and social values. Their dynamic compositions, exaggerated expressions, and unrestrained use of color situate them within the broader context of Korean folk art, where spontaneity and emotional immediacy take precedence over rigid formality. The craftsmanship evident in these figures suggests not only their role as sacred objects but also their connection to popular entertainment, particularly kkokdugaksi noreum, a form of puppet theater that brought both satire and spiritual reflection to funeral rites.

의례적 기능을 넘어, 꼭두는 한국의 예술 전통과 사회적 가치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생동감 넘치는 구성, 과장된 표정, 자유분방한 색채 사용은 한국 민속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이러한 자발성과 정서적 직접성은 장례 의식에서 형식적 엄숙함보다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는 것을 중시했던 한국적 미의식을 반영합니다. 나아가 꼭두의 제작 기법과 디자인은 단순한 장례 용품을 넘어, 풍자와 영적 성찰을 담은 전통 인형극 꼭두각시 놀음과도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This exhibition presents a rare opportunity to explore kokdu not merely as funerary artifacts but as cultural symbols that encapsulate Korea’s perception of life, death, and the unseen world beyond. By engaging with these vibrant figures, visitors are invited to reflect on the ways in which art, belief, and ritual converge to shape our understanding of mortality across cultures.

이번 전시는 꼭두를 단순한 장례 공예품이 아니라 삶과 죽음,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세상에 대한 한국인의 독특한 시각을 담은 문화적 상징으로서 조명합니다. 이 생동감 넘치는 목각상들을 통해, 예술과 신앙, 의례가 어떻게 결합하여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하는 문화를 형성해왔는지 깊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결국 하고 싶었던 죽음에 대한 성찰은 "인간의 유한성mortality"라는 명사 하나로 족하다. 서양은 명사중심의 언어이기 때문. 명사를 중심으로 형용사와 분사화된 동사로 압축해서 하나의 개념 세트를 만든다.


5. 책은 평점을 남길 수 있으나, 전시, 영화 같은 집단예술은 평점을 매기는 것은 복수의 창작자들의 노고를 폄하하고 의욕을 꺾는 일이다. 그리고 혹여 비판을 했다면 반드시 대안을 남겨야한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비난일 뿐이기 때문. 그래서 나라면 이렇게 쓸 것이라고 대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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