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스, 앤불린의 몰락
힐러리 멘텔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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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지쳐 완전히 잊고 있던 <울프 홀>의 후속작이 드디어 출간됐다. 이름하여 <튜더스, 앤불린의 몰락>.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헷갈릴리 없는 매우 친절한 단어 선택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을 발휘될 가능성이 없는 고지식한 제목이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 원제를 가져가 쓰기가 망서려진 출판사가 이해가 안 되는건 아니다. <죄인들을 불러오라>내진 < 참수형으로의 초대> 는 좀 어색하게 들리니 말이다. 이런게 영어랑 한국어 어감의 차이겠지. 어감상으로는 물론 원제가 한층 의미심장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받을만 하지만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이 무엇인지 쉽사리 캐치가 되는 것은 앤 불린의 일화를 들어면서 자라난 영국인들이고,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선 앤불린이 누군인지, 그녀가 어떻게 몰락을 했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테니, 그만하면 됐지 싶다. 책의 내용이 들어가보면...

<울프 홀>에서 천신만고끝에 앤 불린을 왕비로 올린 토마스 크롬웰은 권력의 핵으로 떠오르게 된다. 부와 지위와 명성까지 얻게 된 그에게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나온 거지꼬마를 떠올리기는 힘들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고생을 해가며 오늘날의 자리에 오른 그가 여지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운도 좋았긴 하지만  그가 철저히 현실주의자였기 때문도 있다. 현실주의자라서 살아남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았기에 현실주의자가 된 것인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물음만큼이나 답하기 애매한 질문이지만서도, 어쨌거나 세습귀족이자 당대의 이상주의자였던 토마스 모어와 붙어서 처형된 것이 모어라는걸 감안하면 현실주의의 생존력을 무시하면 안 되지 싶다. 물론 이상주의자가 훨씬 더 멋있어 보일 수 있겠지만서도, 현실을 굴러가게 하는건 다분히 현실주의자의 피묻은 손이니 말이다. 앤을 왕비에 오르게 함으로써 그동안의 모든 소란이 대충 진압이 되고, 왕비가 임신을 함으로써 새로운 왕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왕국이 들썩일때 과연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그 기대감은 공주 엘리자베스가 태어남으로써 한차례 가라앉더니 어느날 슬금슬금 앤의 시녀 제인 시모어를 바라보는  헨리 8세의 강렬한 눈길로 인해 완전히 꺼지게 된다. 이제 헨리가 바라는 것은 어떻게 저런 여자를 사랑했었는지 주문에 걸린게 틀림없다고 단언하는 앤 왕비를  "누군가 "가 신속하게 치워주는 것이고, 그 임무를 맡게 될 그 누군가가 토마스 크롬웰이라는건 묻지 않아도 뻔한 것이렸다. 앤이 왕비가 된지 3년, 왕은 그녀와의 결혼이 무효가 되길 바라고, 앤이 왕비였던 그 삼년간 누구못지 않게 앤에게 정나미가 떨어져버린 크롬웰은 서서히 그녀의 목을 옥죌 올가미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현왕의 왕비를 폐하는 역활을 맡게 된 크롬웰의 운명이라니... 참 기구하기도 하지, 앤이 캐서린때만큼 애를 먹이면 어쩌나 고민하던 크롬웰은 앤의 주변인들의 제보(?)로 어쩌면 쉽게 일이 진행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증언은 별별 일을 다 겪었다고 자부하던 크롬웰조차 경악하게 만드는데...


<앤 블린의 몰락>이라고 해서 그녀가 주인공이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으실텐데, 이 책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토마스 크롬웰이다. 그의 시점에서 바라본 앤 불린 사태, 역시나 주인공이 바뀌고 보니 내용이 확 달라진다. 어떻게 같은 역사를 가지고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라고 감탄스러울 정도로 전혀 다른 내용을 우리 앞에 내밀어 놓는데, 작가의 시야와 통찰력에 두손 두발 들게 된 작품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토마스 크롬웰이라는 당대의 권력자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 있다. 그저 헨리8세의 수하에 있다보니 악역을 맡게 된 하수인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권력의 중앙에 서서 현실 정치를 다이나믹하게 펼쳐 나갔는가 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그걸 보면 우리는 다들 각자의 무대에 서서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던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지 싶다. 헨리 8세라는 그물하에서는이상주의자는 누구라도 살아남기가 불가능했으며, 그나마 권력의 중심에서 헨리 8세가 벌려놓은 사건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크롬웰이 그만큼 눈치가 빠르고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가 산전 수전을 다 겪어본 백전 노장이고, 왠만한 일에는 눈썹하나 까딱 안하는  배포가 있었기에 말이다. 당대 영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라고 불리웠다는 크롬웰이 권력의 조력자로써 정치를 조율 해나가는 모습은 경이롭더라. 악역을 맡아야 할때와 연민을 가져야 할때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구분해내던 그의 모습은 현실 정치가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매력적이었다. 인간미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유연할 수 있는 사고를 가진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이겠는가. 최상의 위치에 올라서도 결코 자신의 출발점을 잊지 않고 살았던 사내로써, 헨리8세라는 카리스마와 변덕이 넘치는 왕 아래에서 그가 어떻게 책사로, 아버지로, 정치인으로 살아갔는가를 마치 드라마를 시청하는듯 생생하게 눈앞에서 보여주던데,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특히나 대화들이 찰지다. 이 작가가 16세기로 시간 여행을 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도청해서 소설을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어떻게 이런 대화를 상상해내고, 토마스 크롬웰의 시선에서 바라봐지는 현실을 그의 성격에 투영해 모순없이 설명해 내는지, 가히 작가가 토마스 크롬웰에 빙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힐러리 맨틀이 쓴 소설이 아니라 토마스 크롬웰이 쓴 자서전이라고 해도 믿겠다. 물론 그가 이만한 필력이 있었겠는가 그게 문제지만서도... 아마도 다음 편은 앤이 처형된 뒤 4년후, 토마스 크롬웰의 몰락을 그려내지 않을까 싶은데, 것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이 매력적인 사내가 자신의 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그 똑똑하던 사내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잊고 살다보면 언젠가 또 후속편이 나와 주어서 나를 흥분하게 하겠지. 그날을 기다리면서...


추신1--이 책을 보니 어쩌면 앤 블린은 소시오패스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물론 앤 블린에 대한 관점은 역사가들 마다 다 달라서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알길이 없지만서도....하여간 최소한 철저한 내진 일방적인 피해자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이해했다. 물론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녀가 청초하고 가냘픈 여인으로, 왕의 변심에 의해 목이 잘린 여인으로 기록되는 것이 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서도. 그게 약간은 현실성이 없단 말이지. 역사에 이런 소란을 일으킨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앤블린이 그저 일방적인 피해자였다는게 안 믿어지긴 하다.

추신2-앤 블린과 그의 오빠 조지의 근친상간이야기가 여기에 나온다. 맨처음 들었을때는 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나온 모함인 줄 알았는데, 당시에도 그런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그런데 그게 이상한 것도 아닌 것이, 당시는 귀족 자제들은 어린시절 다른 집에 보내져 양육되다가 커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현대의 의학이 밝혀낸 바로는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다고, 그럼에도 우리가 근친상간을 벌이지 않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어렸을 적 함께 자라면서 무의식속에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커서 만난 이복 남매나 이종 사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때문이라고, 그걸 보면 커서 만난 앤과 조지의 근친상간이 당시 귀족들에게는 불경한 일이지만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현실적일 수 있는 것일까.

추신3.  새 아내를 들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 하나는 유폐 시켜 치욕속에 죽게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목을 잘라 버린 헨리 8세.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 아니 덧붙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어느 방에 들어서건 간에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하던데, 정신과 의사들이나 심리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케이스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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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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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을 좋아하고픈 마음에 그간 출간된 책들을몇 번 보기는 했는데, 도무지 알길이 없었더랬다. 그림이 아름답다는 것 외에 이야기가 특별히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왜 유명하고 인기가 있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혹시 그 당시에는 그림책을 잘 그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토록이나 유명해지신걸까? 내내 의아했었는데, 드디어 결정적으로 그 의문을 풀만한 책을 만났으니 바로 이 책이다.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다시 말해 베아스트릭스 포터의 모든 책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그리고 난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왜 피터 래빗이 그렇게 인기 있었는가 하는 것을. 그리고 그건 결단코 거품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대를 지나 읽어도 결코 뒤지지 않은 매력을 지닌 포터의 책들. 아기자기 귀여운 동물들 그림들도 특색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 역시 참신하고 매력적이었다. 그간 간간히 나온 포터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갸우뚱한 것이 잘못도 아닌게, 하필이면 그녀의 책들 중에서 별로 재미없는 것들만 단 권으로 출간된 모양이더라. 하여 모든 책을 망라하여 읽어보니 그녀의 매력이 여실히 보인다.  삽화가로써의 예술가적인 자질은 물론이고, 이야기꾼으로써의 재능 역시 차고 넘치시는 분이었다는 것을. 다만 문제라면 23권이나 되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들의 재미가 길쭉날쭉하다는 것일뿐.  하지만 그건 비단 포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작가들 대부분은 작품의 질이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하니 독자인 우리들로써는 그 모든 작품을 합산해서 계산하기보단 그 중 어떤 것이 출중하냐 그걸로 기억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렸다. 다시 말해 한 권이라도 출중한 책이 있다면 그걸로 좋은 작가라고 칭해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한권조차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리한 계산법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가정하에 전권을 다 흝어본 내 입장에선, 베아트릭스 포터는 인기를 누려도 마땅한 그런 작가였다. 그녀만의 고유한 개성을 특색있게 담아낸 것은 물론이요, 그녀의 특별한 마음씨까지 내용속에 적절히 투영시켜 보여주는데 미소를 감출 길이 없었다. 특히나 여자라면 아기자기 인형 놀이를 좋아하고 차와 파이와 옷매무새에 관한 엄마 같은 그녀의 시선에 공감대를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동물들을 세밀히 관찰한 데서 오는 현실적인 데이타에 적절한 의인화와 일상적인 이야기까지, 탁월까지는 아니래도 개성넘치는 이야기꾼으로써 그녀만의 매력은 충분하지 않았는가 한다. 이렇다보니 그녀가 시대를 뛰어넘는 훌륭한 동화 작가로 여겨지는 것도 이해가 가더라.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과연 이 책을 요즘 시대 아이들이 좋아할까 라는 생각에는 의문이 들긴 하다. 좋은 이야기이고, 여전히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요즘같이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녀의 소박하고 다정한 이야기가 과연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그녀의 명성이 오직 우리 같은 어른 독서꾼들에게만 이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 좀 안타깝긴 하다. 어쩌면 먼 미래에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을 읽는 사람은 더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어쩜 사람들 기억속에 남는 것은 그녀가 책속에 그려낸 다양한 동물 삽화뿐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것의 생명력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이 책을 읽어서 좋았다. 그녀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좋은 작가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 책을 보고 알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포터가 베아트릭스 포터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 (실은 과거에도 알고 있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이젠 나도 내 기억을 확신하지 못한다.)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두 작품속 인물들이 연결되는 황홀한 느낌이랄까. 다른건 몰라도 영국, 탁월한 이야기꾼을 배출해낸다는 점만큼은 인정을 해줘야 할듯...포터들이여~~~영원하시길...추신--합산해서 기억하지 말자고 해놓고, 이 책에 대한 점수는 합산해서 매기게 된 점 양해 드립니다. 좋은 작품도 있지만 뒤로 갈수록 작품성이 좀 떨어지는 작품들이 늘어나더군요. 그당시 포터양의 몸이 좋지 않아서 간신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냈다고 합니다. 독자들을 위한 그녀가 애를 쓴 것이지요. 그러니 피터 래빗의 참 맛을 알고 싶다시는 분들은 주저없이 이 책을 드셔도 상관없다는 점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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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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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사람이 건조해져서 그런가 왠만한 책을 보고서도 웃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이 책을 보고는 단박에 고민 해결. 다시 말해 나를 소리 내서 웃게 만든 책 되겠다. 엔도 슈사쿠, 아마도 <침묵>이라는 책을 한번은 읽어보려 손에 들었던 것은 같은데, 끝까지 읽지는 못해서 어떤 작가인지 감은 잡지 못하겠으나,  얼핏 내 기억으로는 분명 유머 작가는 아니셨더랬다. 허술허술, 인생에 화를 내봤자 뭐하겠느뇨? 라는 식의 무념무상으로 사는 글을 쓰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이셨을 것이고. 왜 그걸 아냐면 만약 진작에 그걸 알았더라면 내 이 작가의 책 전부를 읽고도 성에 안 차 했을 터이니 말이다. 딱 내 취향의 작가. 맘에 안 들었을리 없다. 맘에 든 작가들은 전작을 읽어야 성에 차는 내 성격을 생각하면 소설은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던 것 같고. 하여간 이 책을 통해 그려본 엔도 슈사쿠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래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일필휘지다. 그래, 수필은 이렇게 써야 맛이지 감탄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그냥 쭉 써내려 간다. 어려운 말, 미사어구, 자신을 잘 보이려 지나치게 자의식 발달한 것 없이 그냥 어깨 힘 쭉 빼로 설렁설렁 써내려 가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그렇게 쓰는 것이 보기엔 쉬워보일지 모르나, 사실 거기까지  오기가 굉장한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다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자각이 들어가면 뭔가 열심히 치장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해서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고, 모르는 말들이 날아 다니고,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고...엔도라는 이 작가는 그 모든 악습에서 자유로우셨나니,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유들유들, 본인을 안주 삼아 나답게 사는 즐거움을 설파하는데, 웃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 이 양반도 보통 분은 아니신데, 그 주변의 친구들 역시 보통 분은 아니셔서, 현대 일본 문학 중흥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짐작하게 되더라.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출생하고 성장하게 된 일본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진다는 것. 그 당시에 유난히 천재들이 많이 배출하게 된 것인지 당시의 시대상이 그런 사람들이 자라나게끔 만들어낸 것인지가 못내 궁금해진다. 왜냐면 이젠 이런 기인들을 일본에서도 이제는 못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설렁설렁 호기심을 주체 못하면서도 본인의 주체성만큼은 굳건히 바탕에 깔고 사셨던 분같은 엔도 슈사쿠는 1996년도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 일임에도 괜히 서운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뒤늦게나마 그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이런 단편 수필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겠지. 이 책에 반해서 나는 이제 그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아마도 그의 소설속에서는 그의 진중한 면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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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2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아직 번역본이 덜 들어와서 많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요..기다리면 또 만나실거라는...엔도 슈사쿠 저도
참 매력있게 봤네요.^^

이네사 2015-12-27 18:06   좋아요 1 | URL
그렇죠? 이 작품만으로는 매력이 넘치시는 분이시던데, 소설은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일단 <침묵>부터 읽어 보려구요. 대표작이여서 그런가 그건 번역본이 들어와 있더라구요.
다행이죠?

[그장소] 2015-12-2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에 끌려서 담아놓은 책 예요..^^

이네사 2015-12-27 18:36   좋아요 1 | URL
전 어디선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호감을 갖게 된 책이여요.
때론 그런 소개가 과장일때도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더라구요.
다행이지 뭐여요. ㅋㅋㅋ

[그장소] 2015-12-27 18:38   좋아요 0 | URL
가끔 ...과장..보다 거품심한 인기를 실감할적은 있는데..가능함 그 작가만의 것을 다른이가 아닌 제 눈으로 직접 찾고싶다는 욕구가 전 더 강한 것 같아요. 그게 좀 더 강조가 되면..과장이 될 수도 있죠.!^^
누군가와 서로 잘 주파수랄까...수맥이 맞듯..그런것 아닐까요?^^

이네사 2015-12-27 18:42   좋아요 1 | URL
물론 취향이 다들 다르기 때문에 한가지를 보면서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기란 불가능한 법이죠.
다만 전혀 객관적으로도 그럴만한 책이 아닌데 그렇다고 선전을 하고 있는 책을 보면 과장을 넘어 사기가 아니지 않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눈으로 읽고 판단해야 하죠.
많이 속다보면 보는 눈도 생기고...뭐, 그런거 아니겠나요.

[그장소] 2015-12-27 18:44   좋아요 0 | URL
그럼요~^^사기와 거품 정도는 알아야죠.
이네사님 안목을 저도 믿는 편이라서요.
우린..갈란테 포에버 ~!니까..ㅎㅎㅎ

이네사 2015-12-29 10:05   좋아요 1 | URL
네, 오늘 아침도 갈란테 포레버~~~! 입니다. ㅋㅋㅋㅋㅋ

[그장소] 2015-12-29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ocalise ㅡ좋죠..!!!^^
 
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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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전작인 <사는게 뭐라고>를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읽지 않고는 버티지 못했을 그런 책, 문제는 책을 받아들고 보니 분명 수필집일텐데 시집 마냥 두께가 얇디 얇았다는 것. 내 과거만큼 심하진 않다고 해도 한때는 두꺼운 책 성애자인 사람이였던 관계로 읽기 전부터 한바탕 실망감을 감출 길 없는 책이 되겠다. 역시나 안을 들여다 보니...왜 굳이 이 책을 <사는게 뭐라고>와 따로 내었어야 했을까 의문을 가져야 할만큼 공통적인 내용이 많았다. 연장 선상이나, 내진 리바이벌? 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내용이 겹친다. 어쩌면 아마도 그래서 한 권에 묶어 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서도, 겹치는 부분만 골라 내고 <사는게 뭐라고>와 한 권으로 묶어서 냈더라면 훨씬 더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한 권 가격으로 이 내용을 읽기에는 다소 빈약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길래 하는 말이다. 물론 책을 공들여 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당치도 않다는 반응을 내놓으실테지만서도...글쎄...출판업계에 최소한의 상도를 요구한다는 것이 이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발상인건가? 뭐...하여간 내 생각엔 바가지를 썼다는 인상을 지울 길 없는 책이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전작과 겹치는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죽음 앞에서 신이 난(?) 작가의 마지막 시간들이 그려진다. 아들의 객관적인 설명에 의하면 "죽을 의욕 가득" 한 그녀가 죽음 앞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성찰하고 다짐하던 것들이 그려지고 있다. 이책은 그런 죽을 의욕이 가득하던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설파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겨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살아보니,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더라. 그러니 꼴사납게 죽기 싫다고 난리 치면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말아라 정도의 뉘앙스로. 인간의 목숨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거라는 현대의 가치관에 맞서, 언제부터 그렇게 인간의 목숨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냐고, 실제로 그러하다고 생각하냐고 반문하는 그녀의 치기 어린 질문이 재밌었다. 객관적인 지표로는 물론 인간의 생명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이지만서도,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그러니까 자신의 속마음속에서는 천차만별, 순서와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 그런 우리들의 속마음을 감추는 것 없이 까발리면서 내슝떨지 말고 살아주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듯해서 기분이 유쾌했다. 죽음을 목전에 두면서도 유쾌할 수 있는 입담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작가의 장점으로, 하지만 그녀 역시 죽음 앞에서의 쓸쓸함만은 어쩌지 못하더라는 것이 안스럽기는 했다. 아마도 그건 우리가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사노 요코 여사님. 죽을 의욕 가득해서 마지막까지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책 퀄리티를 보면 분명 화를 내야 마땅하지만서도, 사노 요코님의 의욕 앞에서만큼은 화를 내기가 힘들었다. 왜냐면 분명 배울만한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그녀보다 더 용감하게 죽음에 맞설 것 같은 느낌이 아직은 들지 않기 때문에...먼저 간 선배의 따스한 위로라고나 할까 조언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느껴져서 안도감이 들긴 했다. 하나 죽음에서 느껴지는 스산함만은 아무리 용감한 사람도 어쩌지 못하는 것인 듯...그저 그런 것이려거니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오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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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과 책사 - 천하를 얻는 용인과 지략의 인간학
렁청진 지음, 박광희 옮김 / 다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책사의 나라인 중국을 해부한 책.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제갈량을 꼽는다는 말에 의아해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나니 이해가 간다. 황제 못지 않게 중국인들의 초미의 관심을 받는 것이 그를 보위하는 책사였고, 그들에 능력치에 따라 역사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을 경험해왔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일종의 국민들의 내셔널 하비(취미)로 책사에 대한 로망을 키워온 것이 아닌가 하는...특히나 그것이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라서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고는 하나, 정부에 대한 관심이 문화적 특성이 될거라고는 생각지 못해서 말이다. 이 책 속에서 중국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이 언젠가 나라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책사가 될 수 있다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저자의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여서 서늘했다. 천안문 사태때 왜 그렇게 정부가 극단적으로 진압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었는데-그냥 좀 자유를 달라는 거잖아요? 라면서--중국의 역사를 그리고 국민성을 제대로 바라보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엔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주절 주절 서론이 길어졌는데, 본론으로 들어가보면 중국의 유명한 책사들을 한자리에 모아 분석해 놓은 책이다. 중국에는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무수히 많은 나라와 황제들이 있었고, 그에 비례해 수많은 가신들이 있었으니, 그 중에서도 유능해서, 혹은 무능해서, 혹은 끈질기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내서 역사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을 골라서 묶은 것이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 흥미롭다는 것이 장점. 실제로 옛날 이야기이고, 실제로 벌어졌던 것이라는 점이 함정이라면 함정이겠지만서도. 중국이 나라는 넓고 사람은 많다 보니 어찌나 극단적인 사람들이 넘쳐 나는지 말이다. 중국의 스캐일을 보면 우리나라는 상대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건 간에...제왕과 책사라는 제목에서 짐작 되듯이, 책사가 아무리 잘나면 뭐하나? 제왕을 잘 만나야지...그렇게 책사와 제왕 사이의 궁합이 어떤 결과를 내놓는지를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권력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는 것도.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면 태생적으로 심리학자의 소질을 타고 내어난 사람들인 듯... 이 책 하나만으로도 중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잠재력을 숨키고 있는지 짐작이 되던데, 좀 기가 죽는 기분이다. 번역이 조금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지 못한듯했던 점과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탄력을 잃어간다는 점때문에 추천작으로 넣어졌지만, 통찰력만큼은 강추천작 못지 않은 책이었지 않으니, 역사에 관심이 있다시는 분들은 한번 들여다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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