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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 부쩍 사람이 건조해져서 그런가 왠만한 책을 보고서도 웃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이 책을 보고는 단박에 고민 해결. 다시 말해 나를 소리 내서 웃게 만든 책 되겠다. 엔도 슈사쿠, 아마도 <침묵>이라는 책을 한번은 읽어보려 손에 들었던 것은 같은데, 끝까지 읽지는 못해서 어떤 작가인지 감은 잡지 못하겠으나, 얼핏 내 기억으로는 분명 유머 작가는 아니셨더랬다. 허술허술, 인생에 화를 내봤자 뭐하겠느뇨? 라는 식의 무념무상으로 사는 글을 쓰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분이셨을 것이고. 왜 그걸 아냐면 만약 진작에 그걸 알았더라면 내 이 작가의 책 전부를 읽고도 성에 안 차 했을 터이니 말이다. 딱 내 취향의 작가. 맘에 안 들었을리 없다. 맘에 든 작가들은 전작을 읽어야 성에 차는 내 성격을 생각하면 소설은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다는 뜻이었던 것 같고. 하여간 이 책을 통해 그려본 엔도 슈사쿠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래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일필휘지다. 그래, 수필은 이렇게 써야 맛이지 감탄할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그냥 쭉 써내려 간다. 어려운 말, 미사어구, 자신을 잘 보이려 지나치게 자의식 발달한 것 없이 그냥 어깨 힘 쭉 빼로 설렁설렁 써내려 가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다. 그렇게 쓰는 것이 보기엔 쉬워보일지 모르나, 사실 거기까지 오기가 굉장한 내공이 필요한 것이다. 다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자각이 들어가면 뭔가 열심히 치장을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해서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고, 모르는 말들이 날아 다니고, 주절주절 말이 길어지고...엔도라는 이 작가는 그 모든 악습에서 자유로우셨나니, 어찌나 천연덕스럽게 유들유들, 본인을 안주 삼아 나답게 사는 즐거움을 설파하는데, 웃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다. 이 양반도 보통 분은 아니신데, 그 주변의 친구들 역시 보통 분은 아니셔서, 현대 일본 문학 중흥이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지 짐작하게 되더라.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 출생하고 성장하게 된 일본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진다는 것. 그 당시에 유난히 천재들이 많이 배출하게 된 것인지 당시의 시대상이 그런 사람들이 자라나게끔 만들어낸 것인지가 못내 궁금해진다. 왜냐면 이젠 이런 기인들을 일본에서도 이제는 못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설렁설렁 호기심을 주체 못하면서도 본인의 주체성만큼은 굳건히 바탕에 깔고 사셨던 분같은 엔도 슈사쿠는 1996년도에 별세하셨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 일임에도 괜히 서운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뒤늦게나마 그의 개성을 읽을 수 있는 이런 단편 수필을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겠지. 이 책에 반해서 나는 이제 그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볼 생각이다. 아마도 그의 소설속에서는 그의 진중한 면모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