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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동물농장>과 <1984>로 알려진 조지 오웰은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놀라운 예견력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작가가 그러한 작품을 썼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급변하는 사회 정세 속에서 나름의 경험을 쌓고 시각을 키우며 조금씩 자신의 내공을 쌓아가다 그런 훌륭한 작품이 나왔으리라. 앞의 두 작품을 쓰기 전 교두보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숨 쉬러 나가다>>는 그러한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보이는 작품이다.
때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약 3년 전인 1938년... 언제나 돈 걱정만 하는 아내와 깨어있을 때에는 귀찮기만 한 존재인 아이들, 15년이 넘게 발목을 붙잡혀 더는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수도 없는 직장에 권태감을 느낀 주인공 조지 보울은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픈 심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중에 들어온 공돈 17파운드를 어떻게 사용할까 궁리하던 중 문득 나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는 일주일 간의 일탈을 계획한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1부는 조지의 현 상태에 대해, 2부는 그리우며 아련한, 그나마 행복했던 시절의 옛 추억 속의 정경과 그당시의 그의 단순하지만 충실했던 하루하루를 묘사하고 있다. 추억은 자신이 기억하는 일부를 극대화한 꿈이라고 하던가. 조지에게 옛 추억은 "낚시"이다. 특히 우연히 발견하게 된 숲 안쪽의 못에서 발견했던 거대한 잉어들. 좋은 낚시줄을 구해 꼭 한 번 더 가보리라 다짐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잊혀져버린 그 꿈의 연못은... 이제 그에겐 파라다이스 그 자체이다.
"낚시는 그런 문명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낚시 생각을 하자마자 지금의 현대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 것들이 떠오르니 말이다. 한적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온종일 앉아 있는다는 생각 자체가, 그리고 앉아 있을 만한 한적한 연못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전쟁 이전, 라디오 이전, 비행기 이전, 히틀러 이전의 시대에 속하는 것이다."...110p
주인공이 추억하는 1893년부터의 시기는 20세기에 들어서며 한 세기가 시작했고 산업적 발명이 극대화되었으며 1차 세계 대전을 겪었던 시기이다. 때문에 주인공 혹은 작가가 느끼는 그 시기는 아름다운 예전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무참히 짓밟혀진 지금으로 나눌 수 있다. 3부에서는 조지의 여행을 통해 그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골 풍경과 풋풋했던 모든 것들이 어떻게 바뀌었고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일상을 벗어나 "숨 쉬러 나가"고 싶었으나 막상 그곳의 모습은 자신의 일상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닫는 조지의 모습이 참으로 처량하다.
"그 시절 우리에겐 지금은 없는 무언가가, 라디오를 막 틀어놓은 유선형의 밀크 바에는 있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런 것을 찾으러 온 것이었고, 찾지를 못했다."...302p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311p
아직 2차 세계 대전이 남았다. 때문인지 소설 속 조지는 이제 모든 끝나고 전진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대신, 그 무엇도 예전을 대신할 수 없고 자신이 설 곳은 조금도 없다고 말한다. 숨 쉬러 나가고 싶었으나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헛된 망상에 맞장구를 쳐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조지 오웰의 힘인가 싶었다. 전혀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고 너무나 생생하게 눈 앞에 지금의 현실을 그려내는 힘!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고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지가 살았던 20세기와 지금이 무엇이 다를까. 아직도 자연은 훼손되고 자꾸만 공기는 더러워져 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