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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 ㅣ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가라앉는다. 마치 소년이 그러하듯이. 그렇게 가만이 들여다본다. 말과 행동처럼 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다른 표현 방식을 가진 소년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난, 체스를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한 소년이 정말 그였을지 확신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과묵함이, 조용히 틀어앉아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던 그가, 마음에 든다.
병원 옥상에서 자라 너무나 커져버려 더이상 땅으로 내려올 수 없게 되어버린 코끼리 인디라를, 소년은 사랑한다. 혹은 집과 집 사이의 너무나 작은 틈에 끼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소년은 정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녀 미라와 인디라가 그의 친구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입술이 붙어있어 의술의 힘을 빌어 자신의 정강이 피부를 떼어내 입술에 새로운 피부를 이식할 수밖에 없었던 그로서는 처음부터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자연스레 자신의 것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만나게 된 회송 버스의 마스터.
"서두르지 마라, 꼬마야. 그 말과 목소리 톤은 일평생 소년의 경구가 되고 등대가 되고 지주가 될 운명이었다."...34p
"소년은 너무나도 작고 빛이 희미해, 본인도 그 빛이 자신의 어디에 존재하는지 아직 알지 못했다. 남자는 체스라는 바다에 소년을 풀어놓고, 그가 스스로 발하는 빛만을 의지해 그 어떤 깊은 해구나 차가운 해류에도 겁먹지 않고 그 무엇과도 비할 길 없는 궤적을 그릴 수 있게 인도했다."...44p
처음부터 닫혀있었던 입은, 소년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년이 체스를 만나게 되었을 때, 말의 움직임과 상대편의 반응에 따라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길이 보였을 때 느꼈을 환희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보면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어딘가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을 소중히 여긴 소년이 리틀 알레힌을 선택했을 때, 더 나은 길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면 스스로 침잠하고 스스로 성장을 멈춘 그이기에 리틀 알레힌의 자리야말로 소년의 자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였다는 듯이.
체스를 모르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소년이 창조해 낸 수많은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 누군가에게 말하고 행동하며 내가 아님을 인식했을 때 느껴지는 당황스러움을 알고있기에 나는 정말로 나 자신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