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비룡소 클래식 40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아서 래컴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걸리버 여행기>를 어린 시절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선가 간단한 편집본을 읽었는지, 그저 남들이 잠깐씩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내용을 알고 있는지. 어쨌든 제대로 된 책은 읽은 적이 없다. 2010년인가 잭 블랙이 주연으로 나왔던 "걸리버 여행기"를 그래서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내용보다 더 많은 이야기여서(아마도 거인국 이야기 부분), 아마도 제대로 이 이야기를 본다는 느낌이었나 보다.

 

비룡소 클래식 <걸리버 여행기>의 두께를 보고 이제야 제대로 된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본을 읽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에 들떴다. 오랫만에 보는 내용이라 몇 년 전 보았던 그 영화를 찾아보니 평점이 5.71점이라 깜짝 놀랐다. 나는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왜 이렇게 평점이 낮은 건지. 그 이유는 이 책을 모두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500여쪽에 달하는 책이라 청소년을 포함한 아이들은 조금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삭제본을 읽는 이유는, 단지 줄거리만 알았다고 해서 그 책을 모두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의 생각,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 무엇을 보여주려는지를 이해하려면 절대로 편집본을 읽어서는 안 된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하려고 했던 이야기 그 어느 것도 영화엔 드러나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가 알던 <걸리버 여행기>는 거인국과 소인국에 대한 이야기 뿐이다. 그래서 사실 목차를 보고 소인국의 이야기인 "릴리펏 여행기"와 거인국의 이야기인 "브롭딩낵 여행기" 외에 "라퓨타, 발니바비, 러그내그, 글럽덥드립, 일본 여행기"와 "휘늠 나라 여행기"까지 있어도 주된 이야기는 앞의 두 이야기일 거라고, 아마도 그래서 편집본이나 영화에서도 그 두 이야기만 소개되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고 1부와 2부를 넘어 3부, 4부까지 진행되면서야 이 한 권 속 어느 이야기도 소홀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로 이 책은 이야기를 덜어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부분에 소개글을 통해, "걸리버 선장이 사촌 심슨에게 보내는 편지" 부분을 통해 조너선 스위프트가 불만을 토로할 만한 것이다.

 

"자신을 뜻을 굽히고 달걀을 갸름한 쪽으로 깨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어림잡아 1만 1천 명에 이른다네."...80p

"잉글랜드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때의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었다. 출신, 인품, 재치, 상식, 어느 것 하나 별 볼 일 없는 주제에 잘난 체하며 왕국의 가장 훌륭한 위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드는 조무래기 깡패들 말이다."...200p

 

<걸리버 여행기>는 명백한 풍자소설이다. 걸리버가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겪게 되는 기상천외한 여행은 그저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나라에 대한 모든 면을 일일이 기술하고 있고 그 나라들의 독특한 특성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변하는 것을 보며 걸리버는 과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나라가 좋은, 훌륭한 나라인지 탐색하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아니, 즐겁게 읽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책에 몰입하고 깊이 있게 읽어야 한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어째서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는지 그 시대를 알아보며 함께 읽는다면 더욱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의 책읽기 - 독서, 일상다반사
가쿠타 미쓰요 지음, 조소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에 대한 책은, 언제나 좋다. 처음 책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건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몇 권을 거친 지금은, 남들(유명한 작가이거나 평론가이거나 전문가들 그 누구거나)은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내가 읽었던 책은 어떻게 다르게 읽었는지를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따마다 찾아 읽게 된다. 때로는 엄청난 감동을 하며 즐거운 책읽기가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거의 공감하지 못한 채 한 권이 끝나버릴 때도 있지만 새로운, 내가 전혀 관심을 가져보지 못할 만한 책을 한 권이라도 발견한다면, 그 책은 성공이다.

 

<보통의 책읽기>는 가쿠타 미쓰요가 쓴 책에 대한 에세이와 감상문을 엮은 책이다. 사실 가쿠타 미쓰요...라는 이름은 잘 모른다. 약력을 보다가 깜작 놀랐다. 몇 년 전 읽었던 <8일째 매미>의 작가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단 한 권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책이다. 추리 스릴러였지만 무언가 묵직함을 남겨주던, 그런 책이었다. 그런 작가가 읽은 책은, 책에 대한 감상은 어떨까.

 

사실 <8일째 매미>를 기억하고 이 책을 읽자니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의 작가들이 수필과 소설은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이 책의 경우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말이다. 무서워서 다음 장을 넘겨야 할지 넘기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소설과 달리 작가의 책에 대한 책은, 굉장히 편안하다. 편안하다 못해 가끔은 '이 사람 정말 작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식 없이 간단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감상문은 다소 짧게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고 2권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도 많아서 다소 깊이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 작가는 참 많은 책을 읽는구나... 좋아하는 장르나 특별한 작가 없이 정말 많은 책을 읽는구나...하는 것이었다.

 

 

작가가 읽은 이렇게나 많은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이 훨씬 많아서 다소 공감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다양한 작가의 책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일본 작가의 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 이상은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보니... 일본의 출판 시장은 엄청난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탐독>>에서 은희경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어 나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너무나 애정하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에 대한 책도 몇 권 소개하고 있어 그녀의 수필도 모조리 읽고싶어졌다.

 

책에 대한 책은, 그래서 읽는다. 가끔 내가 지금껏 읽었던 책을 정리하기도 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작가를 리스트화 하기 위해서. 더불어 이런 책을  쓴 작가의 생각 속에 들어가보고 싶어져서. 오늘도, 성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연을 올린 제철밥상 - 구황작물로 만드는 윤혜신의 101 건강 레시피 행복한 삶을 위한 건강한 레시피북 시리즈 3
윤혜신 지음 / 영진미디어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연을 올린 제철밥상>이라는 책을 선택했던 건, 요즘 일 한다고, 늦둥이 육아에 지쳤다고 변명해가며 자꾸만 인스턴트나 간편식을 밥상에 올리기 시작한 나를 반성하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어린 아이가 있는데도 양심이 어디 간 건지 아무렇지도 않게 외식이며 배달음식이 잦아지기도 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가족에게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부지런"은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자연을 올렸다는 제철밥상 레시피를 들춰보면 무언가 해답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다.

 

 

 

책의 부제목은 "구황작물로 만드는 101 건강 레시피"이다. 구황작물...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막연하게 고구마, 감자... 같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 밖에는. 책에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비교적 생육 기간이 짧고, 산과 들, 논밭, 호숫가 등 땅이 거칠어도 자랄 수 있는 작물" 그래서 흉년이 들거나 먹을 것이 없을 때 바로 이 구황작물로 날 수 있었다고 한다.

 

왜 구황작물이어야 할까? 그냥 제철에 나는 과일, 채소, 잡곡 등으로 먹으면 되지 않을까? 작가는 "다소 거칠면서 단단하고 거무스레한 구황 음식들"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오래 묵히지 않고 조리해 먹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손질과 보관법에 대한 설명이 있어 좋았다. 주부이지만 주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라 장을 봐 오면 그저 냉장고에 때려 넣기만 하는 나로서는 더욱 부지런해져야 하는 이유를 준다. 감자, 고구마 같은 경우 금방 먹을 것 같으면서도 잠깐만 잊어도 싹이 나고 줄기를 뻗어가니 말이다. 고구마는 맛이 없어지고  감자는 독이 생기니 가족의 건강이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한 장 복사해 냉장고에라도 붙여놔야겠다.

 

책은 크게 계절별로 나뉘어 있다. 제철 나물이라고 해도 요즘엔 비닐하우스나 생육 조건이 좋아 다양한 계절에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목차가 나뉘었다고 해도 한 계절에 한 재료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좋았다. 한 가지 재료로 다양한 조리법을 볼 수 있어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름엔 시원하게 얼갈이를 가지고 무침을 할 수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정갈하게 만들어진 사진이 차지하고 오른쪽 페이지엔 레시피와 만드는 시간, 재료와 양념 뿐 아니라 재료의 좋은 점이나 주의할 점 등이 소개된다. Tip을 통해선 손질법이나 보관법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얼갈이를 사본 적이 있던가. 한 번도 없다. 결혼 이후 항상 이용해 온 재료만 사서 만들던 음식만 만들었다. 김치 종류나 뭔가 시간이 걸리는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봄동 무침이나 얼갈이 무침, 겉절이는 재료만 다를 뿐 만드는 법도, 양념도 어렵지 않다. 그동안 내가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귀찮아서다. 여름 얼갈이 무침이 참 싱그러워 보인다. 이번 여름에는 얼갈이를 사다가 꼭 얼갈이 무침을 만들어봐야겠다.

 

 

우와~~~ 여름 얼갈이 무침이 가을이 되면 우거지지짐으로 해먹을 수 있단다. 우거지는 항상 무청을 말려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우거지가 아니라 시래기라고 한다. 우거지와 시래기가 같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냥 얼갈이를 가지고도 이렇게 데쳐 우거지지짐을 만들 수 있다니! 요리 혁명 같았다. 음식점에서 맛있게 먹었던 요리들을 나도 간단히 만들어 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이 조금 생겼다고 할까.  

 

<자연을 올린 제철밥상>에는 어떤 특별한 요리를 소개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항상 집에서 해먹는 반찬들,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이 해주실 것 같은 반찬이나 죽,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조금 요리에 자신있는 주부들은 이 요리책을 보고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조깍두기나 묵전 같은 특별 요리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함"을 먹으려고 노력한다면 분명 도움이 되는 요리책이라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사계절 1318 문고 104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듯한 기분이다. 잠깐 책을 덮고 여기가 어딘지, 생각했다. 현실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고 몇 시간이나 꼼짝 않고 앉아 책을 읽은 평범한 주부지만 기분은 수남과 채령을 따라 중국 상하이에서 미국 뉴욕으로, 다시 충칭에서 서울로 돌아와 몇 십 년 동안이나 그녀들을 따라다니던 운명의 장난을 함께 한 동지 같다.

 

처음엔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책 띠표지에는 "청소년문학의 아이콘, 이금이 작가의 첫 역사 장편소설"이라는 문구가 화려하게 붙어 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이 책 또한 그동안 작가님의 독자층인 초등 고학년에서 청소년 수준의 역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2권의 책이지만 난 이 책을 꼬박 2주일에 걸쳐 읽었다. 가독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번 잡으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무언가 불편함이 계속 따라다녀 단숨에 읽어내리진 못했다. 그리고 생각해냈다. 이금이 작가님 만이 가진, 심리 서술 방법. 가만히 아픈 상처를 다독여 주고 어루만져주기 보다는, 스스로 헤쳐 나가라는 듯이 인간의 양면성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유진과 유진>이나 <신기루>에서처럼.

 

소설은, 윤채령이라는 인물을 다큐멘터리로 만든 강작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자작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방송된 이 다큐멘터리는 꽤나 성공을 거두었고 작가는 조금 우쭐한다. 하지만 그런 작가에게 요양 병원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렇게 만난 한 노인은 자신이 인터뷰했던 윤채령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이 노인은 자신이 바로 "윤채령"이라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 할머니와의 만남은, 윤채령과 김수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수남은 너무나 가난한 삶을 이어가던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에 자동차가 들어왔다. 땅의 주인 윤형만 자작과 그의 딸이다. 윤형만은 자신의 여덟 번째 생일 선물로 나이가 비슷한 시중 들 아이를 데려가려 왔고 그렇게 낙점된 아이는 가기 싫다고 버티는 중이었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1권 62p

 

그렇게 시작되었다. 윤채령과 김수남의 만남은. 한 소녀는 번듯한 집안의 막내딸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한 소녀는 단지 굶지 않기 위해 선택한 시녀의 삶에 충실하게 자라났다. 시대적 상황이나 배경 같은 건, 배불리 먹고 등 따신 사람들에게나 걱정거리였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채령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고 자신이 탐내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남은 힘든 일과 속에 짬을 내 조선글을 배우고, 일본어를 배운다. 어쩌면 이런 그녀의 학습 호기심과 의욕이 그녀를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채령을 위해 또다시 자신의 위치를 버리고 "자작의 딸 윤채령"으로 살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리고 조금씩 성장한다.

 

"그동안 수남은 그게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가난한 사람이 부자에게, 신분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한테, 무식한 사람이 많이 배운 사람한테, 조선 사람이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2권 158p

"수많은 질문에 마음 깊은 곳에서 일곱 살 수남이 '거기'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강휘가 여기까지 온 널 존경한다고 했던, 바로 '여기'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수남이 품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 덕분이었다."...2권 213p

 

한 인간이 가진 배움의 목마름이 얼마나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았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을 거쳐 6.25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서 한 인간이 얼마나 휘둘릴 수 있는지, 혹은 얼마나 무관심할 수 있는지도 보았다. 아마도 그런 불편함일 것이다. 아무리 악한 이들이 득시글댄다 해도 누군가 한 명의 영웅이 나타나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데도 책은, 소설은 그저 현실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없이 복잡하고 다면적인 존재로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없다. 누군든지 자신의 욕망이나 이익 앞에서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런 인간을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프레임에 가둬 이분법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7p 작가의 말 중에서

 

바이칼 호수에 가고 싶어졌다. 광활한 대지와 깊고 푸른 호수를 보며 깊은 심호흡을 하면 강휘와 수남이가 느꼈을 감정이 일어날까.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급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넓어지고 여유로워질 것 같다. 이 책이 조선 만을 대변하거나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않아서 좋다. 얼마나 많은 역사적 고증을 거쳤을지 상상할 수 있어 좋았다. 두 여자 주인공과 함께 그 삶이 해피엔딩이든 아니든 전세계를 여행하듯 그녀들의 청춘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레사 차, 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차학경이라는 이름도 처음이다.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이름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은 어렵다고, 관심은 있지만 깊이는 잘 모르는 평범한 나로서는 미국에서 신진 예술가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젊은 여류 예술가를 알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을 몰랐다는 데에는 조금의 죄책감이 든다. 젊은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했던, 그녀였다. 한국 땅이 아닌 미국에서 강간 살인 당한 그녀의 짦은 생을 몰랐다는 사실이, 같은 한국인으로서 죄책감이 들게 한 것이다.

 

<안녕, 테레사>는 테레사 차의 친오빠인 존 차가 20년에 걸쳐 집필한, 법정 장편 실화 소설이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아픔일 테다. 그 죽음이 자연사나 병으로 인해 혹은 사고로 인한 것일 경우에도 견디기 힘들 것인데 테레사 차의 경우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의 아픔을 주는 죽음이었다. 이후 그녀를 강간 살인한 범인이 지목되고 그에 대한 재판이 계속되면서 그 아픔은 또다시 파헤쳐지고 파헤쳐져 끊임없는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오빠 존 차는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이후 재판이 마무리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하고자 했다. 물론 직접 증인으로서 서야 했기에 법정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숱한 담배와 서성거림으로 버터야 하는 시간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른 이들의 말을 통해, 법정 기록을 통해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노력은 사랑하는 동생을 잘 보내주기 위한 그의 버팀목이 되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동생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책으로까지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설은 오빠 존 차의 의식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따라서 존 차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독자는 함께 느낄 수 있다. 함께 궁금하고 의아하고 분노하고 한탄한다. 뻔뻔한 변호사들의 말도 안되는 변명이나 주장도 함께 들어야 하고 모든 진실을 낱낱이 들여다 볼 수 없는 답답함도 함께 느껴야 한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는 도대체 이 재판이 어떻게 끝나갈지 함께 흥분하고 함께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지하실에서 발견한 네 장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난 인생이 변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몰랐다. 난 장갑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93p

 

사건이 발생한 빌딩은 테네사 차가 강간 살해당한 곳이다. 하지만 깊고 깊은 지하실 속에서 그 발생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고, 신기하게도 피해자 가족(남편, 오빠, 동생 등)이 이 장소를 발견하고 그녀의 유품 몇을 찾게 된다. 자신들이 찾아냈다는 자랑스러움 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이가 존재했던 그 마지막 장소와 남겨진 물건들의 기억이 이들에겐 평생을 쫓아다닐 것이다. 더군다나 예술가 테레사가 남긴 장갑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이해하는 오빠에게 잊을 수 없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책을 읽으며 내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럼에도 한 줄기 빛인 듯 미소짓게 만든 것은 이 피해자 가족에게 우호적이었던 경찰, 검찰측이다. 직접 사건 발생 장소를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수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 진행을 수시로 연락하며 알려주는 등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언제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치 않다. 그럼에도 이 젊은 한국 예술가가 이렇게 안타까운 죽임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어 기쁘다. 기회가 되면 그녀의 "손 전시"를 꼭 관람했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