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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그레이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2
앤 브론테 지음, 문희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0월
평점 :
중학교 때 읽었던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이후, 브론테 자매는 줄곧 흥미의 대상이었다. 그녀들의 소설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궁금했다. 어떤 삶을 살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이지만 이런 상상을 하고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 이유가 그녀들의 삶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고. 그런 의미에서 에밀리 브론테와 샬럿 브론테 외 앤 브론테의 작품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검색해 보니 딱 한 권, 그것도 한 출판사에서 출판되어서 언제 품절될까 노심초사 하다가 구입(심지어 구입해 놓은 것을 잊고 또 구입...ㅋㅋㅋ)해 둔 후, 이제야 꺼내 읽었다.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과 함께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그네스 그레이>는 오랫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두 작품에 비해 극적인 사건이나 위기,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1924년에 와서야 조지 무어에 의해 "문체와 등장인물과 주제 면에서 완벽하게 쓰인 영문학 유일한 소설"이자 "모슬린 드레스처럼 아름답고 수수한 소설"(...302p 역자 후기 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 공감과 신뢰를 받았다고.
책 첫 페이지를 펼치기 전에 역자 후기부터 읽은지라 다소 긴장하며(생각보다 재미없을까봐...) 읽기 시작했는데 나로선 오랫만에 정말로 재미있게 읽은, 잊지못할 소설이 되었다
우선, 난 다소 지루한 소설도 좋아한다. 오히려 너무나 갈등이 심하고 극적인 작품은 심장이 쫄려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조곤조곤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그레이 아가씨의 말투가 편안했다.
둘째, <아그네스 그레이>가 19세기 가정교사 소설로 분류되는 만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어 무척 공감이 갔다. 아이들은 19세기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나 보다. 왜 21세기 사교육 선생인 내가 19세기 중류층 가정교사에게 공감하는 건지...ㅋㅋ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며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읽었다는~
셋째, 읽다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이 생각났는데, <도련님> 속 "나"가 동료 선생들이 보이는 위선, 허영 등 성격에 맞게 별명을 붙여 부르는 것처럼 <아그네스 그레이> 속 인물들을 다양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제인 에어> 속 독립적 여성의 면모도 있다. 아마도 비슷한 삶 속에 놓였던 이들 자매의 환경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면모는 소설 속 "나"보다는 나의 어머니를 통해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람 마음은 인도산 고무 같아서 조금만 더해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만 아무리 더해도 터지지는 않아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생겨도 상심하지만 '있는 문제에서 조금만 덜어져도' 살 만하지요."...167p
그레이 아가씨는 독실한 신자이고 꾸준한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갈고 닦을 줄 아는 인물로 '나'와 등장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앤 브론테의 성격도 유추해볼 수 있다. "온화하고 경건한 성품"으로 평가받는 그대로 소설 속에 드러난다. 그녀의 짧은 생이 더욱 안타까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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