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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철도원"...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시 하얗고 하얀 눈이 쌓인 역사와 그 앞에 서 있는 철도원의 모습이 담긴, 영화 <철도원>의 포스터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 누구보다 히로스에 료코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리라~"고 점 찍어두었던...하지만 원작 소설을 아직 읽지 못했기에(소설과 영화가 있다면 당근 소설부터...라는 고집으로) 아직도 보지 못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제야 나는 <철도원>을 읽는다. 영화 한 편으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하게 장편이려니..생각해왔던 소설이었는데, 친구에게 단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짧지만 감동의 여운이 많이 남겨지는 이야기이리라. 아무리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많은지라...솔직히 읽으면서 감동은 반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내용도 알지 못했더라면 아마...소름이 끼치도록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생각한다. 영화는 아마도 소설보다 조금 더 감동받을 것 같다고.
<<철도원>>은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이 중 2편의 단편 소설이 영화화 되었는데, <철도원>이 그렇고, 두번째 단편 <러브 레터>가 그렇다. 처음 <러브 레터>를 읽어내려가다가 어디선가 내가 아는듯한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고, 바로 찾아보니 역시... 영화 <파이란>의 원작이라고 한다. 이 소설 역시 짧지만 강한 여운....
<<철도원>>의 작품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 사회의 온갖 부조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가장 밑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런가하면 극히 우리 주위에 있을 듯한 평범한 소시민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전혀 우울하지가 않다. 슬프기는 하지만 무언가 희망이 보이는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하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얼까. 내 생각에 그것은 아사다 지로의 소설에 등장하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매개체는 어릴 적 죽은 딸의 모습이기도 하고, 러브 레터일 수도 있으며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 혹은 단순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 주인공의 마음을 달래주거나 보듬어준다.
누구나 가슴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치부가 될 수도 있고, 컴플렉스가, 절망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원망이 될 수가 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에서는 이런 것들이 너무나 여과없이 바로 느낄 수 있을만큼 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시릴 정도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무너진다. 그것은 어떤 한 계기(매개체)로 그들의 마음이 순화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죽은 영혼에 의한 것이든, 악마의 모습을 한 커다란 생쥐에 의한 것이든, 판타지한 배경 속에 희망의 불꽃이 되살아나는 것을 지켜보며 내 마음 또한 푸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아픔은 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희망을 갖고 살 가치가 있는 거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어떻게 이렇게 어두운 주제로 신비스러운 과정을 거쳐 우리 마음 속의 이야기를 그대로 할 수 있는지, 나는 이제 "아사다 지로"의 팬이 될 것 같다.
소설을 읽었으니 이제야 마음 놓고 영화를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