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일본 문화를 접한 것은... "만화(그들에겐 망가라고 불리는)"를 통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춘기여서 그랬는지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조건적으로 싫어했었는데 그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에 기가 눌리고 새로운 신세계를 만난 양 눈이 번쩍 뜨인 경험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다양성과 자신의 것"에 대한 자긍심은 인정해줄 수밖에 없겠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였을까. 일본의 것 중에서도 나는 특히 더 일본스러운 것에 끌렸다. 그들만의 느낌이 강한 것. 그래서 순정 만화에서 점점 <백귀야행>이나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 같은 괴담이나 그들의 옛 이야기 같은 분야로 내 관심은 옮겨갔다. <<한시치 체포록>> 표지가 내 마음에 꼭 들었음은 물론이다.ㅋ 무언가 으스스한 분위기에 에도 시대의 그림인 듯 그시대의 여인 모습이 참으로 으스스하다. 도대체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유령? 생령? 혹은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 하고 온갖 상상을 하였으나.... 분명 표지에 소제목으로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만한 글귀가 잘 나타나 있다.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그렇다. 이 책은 "괴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한시치라는 오캇피키(그시대의 형사)가 다룬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조금 실망이야...라고 생각했다간 또 오산이다. <<한시치 체포록>> 자체가 100년도 전에 출판된 책이고 그 책 속 내용은 50~6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므로 150년 전의 사건답게 그 속에는 괴담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모두 12편의 단편이 모여있는 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한시치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은 형식으로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이 편하고 재미있는 구성을 취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의 그때도 문명 발달이 얼마나 빠른지 한시치 노인은 "나"에게 이야기하며 그 옛날에는 모두들 괴담을 자연스레 믿었다는 이야기나 그당시의 풍습이나 생활 등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일일이 설명해주고 있다. 무사들의 지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그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 같은 것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해야했기 때문에 더욱 커진 사건이라든지 유행했던 옷이나 전염병 등... 에도 말기를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이 소설이 그저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건들은 괴담의 형태를 빌어 일어나지만 사실이 밝혀지고나면 그 배후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다. 원래부터 악당이었던 이들이 벌인 일이나 너무나 궁핍하여 벌어진 일들, 다른 이와 정분이 나서 그것을 무마하고자 일어난 일 등 사건들은 그때로부터 150여년이 흐른 지금의 사건들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그다지 진화되지 않은 것일까? 진짜로 무서운 것은, 귀신도 악마도 아닌 바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끔찍한 범죄는 계속되고 있으니. <<한시치 체포록>>은 오카모토 기도가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읽고 크게 감화 받아 작정하고 쓴 탐정 소설이라고 한다. 그 옛날 남의 것을 빌어 쓰면서도 자신의 것만으로 독창적으로 재탄생 시킨 작가가 무척 대단해 보인다. <<한시치 체포록>>은 <셜록 홈즈>의 아류작이 절대 아니다. 에도 시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듯 하면서도 미스테리한 괴담을 함께 엮어낸 그만의 독특한 소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