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이화경 지음 / 뿔(웅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어렸을 적 엄마가... 혹은 할머니가 들려주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무섭게 다가와 아주 깊은 인상을 남기곤 했었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들은 내 감성에 영향을 주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주어 조금 커서는 친구들에게,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를 즐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 이야기들을 들은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일은 아주 자연스럽다. 우리는 왜 그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꾼>>은 조선 후기 정조 시대에 이야기꾼(전기수)으로 활동한 김흑을 통해 그의 욕망과 그만의 "이야기", 그리고 정조와 그 시대의 아픔 등을 그리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미천한 신분을 이해했던 검은 놈, 김흑.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그 자신은 과거를 볼 수도, 사랑하는 사람과 연분을 맺을 수도 없음을 한탄했던 그. 그로서는 그의 마음 속 응어리와 화를 풀어낼 방법이 "이야기" 밖에 없었다. 

"조선 땅을 벌레로, 짐승으로, 천한 놈으로 떠돌면서 김흑은 잠시 이 땅에 머물다 사라질 자신의 쓸모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자신의 꿈, 자신의 열망, 자신의 목숨은 이슬 젖은 풀입 대에 매달린 유충에 불과했다."...29p
"김흑은 모험과 사랑과 울분과 고통과 꿈을 맛나게 비벼 이 아득한 세계의 비의를 밝히는 재담꾼이 되고 싶었다. 이야기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게도 하고 아프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웃기게도 하고 싶었다. 조선의 그 누구보다 이야기를 잘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56p

하지만 김흑이라는 인물은 약간 다중성을 띤다. 순수한가 싶으면 뛰어난 융통성을 보이며 눈치 빠른 행동을 보여주고 일편단심 님 향한 마음을 애타게 그리는가 싶으면 금새 이야기꾼으로서 다른 마음을 팔기도 한다. 어쩌면 김흑이라는 인물은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정조가 임금으로서 가져야했던 두 가지 마음을 대표하는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천주교도가 은밀히 퍼져나가고 정조는 "문체"로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니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꼿꼿한 임금으로서만 존재하려는 자신의 의지와 본성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꾼>>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는 김흑이 전기수이므로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김흑이 들었던 이야기로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그들이 꿈꾸며 이루지 못했던 것들을 대신 이루고, 유토피아를 꿈꾸게 해주기도 한다. 어디 글이라는 것이, 말이라는 것이 억누른다고 제지되는 것이던가! 억누를수록, 제지할수록 더욱더 하고 싶고 점점 더 퍼지는 것이 글이요, 말이 아니던가. 크리스트교를 억압하고 소설체를 쓰지 못하게해도 결국은 그 밑으로 더 은밀히, 더 조용히 퍼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자네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사람들은 모두 '이루어야 할'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앞으로 내가 들려줄 이야기는 진정 '이루어야 할'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려 줄 걸세. 이루어야 할 세상은 아무도 막을 수 없네. 심지어 임금이라 해도 말일세."...103p

우리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대신 이루어주기도 하고 나 대신 화를 내어주기도 하며 어느새 나를 침착하게,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을 함으로서 나와 너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친구와, 아이와,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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