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
-
이상한 소리 - 일본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별 다섯이 모자라다!
나 말고도 "세계 문학 전집"이라면 눈에 힘이 들어가고 힘이 불끈! 솟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출판사마다 100권이니 180권이니 하며 계속해서 출판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 중에서도 창비 세계 문학이 더욱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는, 장편이 아닌 단편들을 각 나라별로 묶었다는 점과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각 나라의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엄선하여 담았다는 데 있다.
그렇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소장 가치는 확실하다. 특히 일본편인 <<이상한 소리>>의 경우 10편의 소설 중 9편이 국내 첫 번역본이 된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10편 모두라고 나와있으나 시마자끼 토오손의 <클 준비>의 경우 <성장준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적이 있음이 "더 읽을거리"에 명시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 이후부터 전후 시대까지를 아우르는 이 작품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쯔메 소오세끼와 카와바따 야스나리 외에 쿠니끼다 돗뽀, 시가 나오야, 미야모또 유리꼬, 타니자끼 준이찌로오, 시마자끼 토오손과 오오오까 쇼오헤이까지 일본의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중,단편들이다. 특히 나의 경우 이 책을 통해 "미야모또 유리꼬"라는 작가를 발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 큰 기쁨이라 하겠다.
<이상한 소리>나 <망원경과 전화>, <삽화>, <산다화> 등은 채 10페이지가 넘지 않을 정도로 짧은 단편이지만 그토록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미묘한 인간 심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한 체험이었다. 이 콩트들은 나쯔메 소오세끼와 카와바따 야스나리의 작품들인데 역시 대가들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 짧아서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던 작품들이라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본편 <<이상한 소리>>는 각각의 작가들의 작품을 따로 떼어 읽어도 좋겠지만 역시 한 번에 읽어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좋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문명의 유입과 기독교의 확산에 따른 정신적 충돌과 고민이 아주 잘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가 나오야의 <오오쯔 준끼찌>의 경우 서양 문명에 따르는 것이 교양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기독교 교리에 따라 충실하고 싶지만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야모또 유리꼬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는 도저히 십대 소녀가 쓴 글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베푸는 자의 위치와 베풂 자체에 대한 의미,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닫고 고민하는 주인공이 무척이나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로는 TV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과 선덕여왕의 대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지주의 딸인 "나"가 가난한 자들의 무리에게 동정을 느끼고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려는 시도와 좌절 그 이후의 성찰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이상과 다른 현실을 보며 수치심과 교만했던 점을 반성하면서도 끝까지 그 교만함을 놓지 않는 소녀의 이상주의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의 경험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인 듯한데 이 일본편 전체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자연주의이다.
작품이 끝나면 "더 읽을거리"를 통해 작가의 다른 국내 번역서를 소개하고 있다. 독서가들에게는 마음에 드는 작가의 경우 작가를 따라 작품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척 반가운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미야모또 유리꼬의 경우 국내 번역서가 하나도 없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단편이라고 보기엔 꽤 긴 작품부터 극히 짧은 작품까지 엮였지만 길면 길수록, 짧으면 짧을수록 한 작품 한 작품마다 개성이 돋보인다. 짧지만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인간의 미묘한 심리를 잘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 한 권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다른 나라 작품들도 읽고싶어졌음은 당연하다.
별 넷이 될뻔했던 이유!
극히 짧은 단편으로 시작했던 책 읽기가 무르익어 점점 흥분되고 깊이 빠져들어갈 무렵... 낯선 문장을 만났다. 아니, 어색하다. 이해하려면 이해못 할 문장은 아니지만 뭔가 입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 듯한 느낌! 거슬린다. 왠지 이 문장을 그대로 일본어로 작문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이다. 맥이 쫙~ 풀렸다. 그렇게 한 문장을 만나고 예민해진 나는 적어도 <오오쯔 준끼찌> 만큼은 깊이 몰입하지 못했다. 또 그런 문장을 찾고 있는 내가 있었고, 그런 문장이 나올까봐 긴장하는 내가 있었다. 왜 유독 그 단편만 그랬는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옥의 티다.
창비 세계 문학의 일본편은 발음 표기가 다른 일본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된소리가 그대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일본어 표기법에 익숙해져 있던 독자들은 아무래도 좀 거슬릴 수도 있겠다. 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출판사 자체 소개에서 알 수 있었는데 ...
"창비는 현행 외래어 표기법이 표방하고 있는 영어 중심의 일방적인 표기법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각 언어의 독자성에 대한 존중을 취지로 수년 전부터 모든 외래어에 대해 원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한글표기방식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란다. 물론 좋은 취지임에는 확실하나 다다미라고 알고 있던 것을 느닷없이 타따미라고 만났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은 어찌할까. 지금이 과도기라면 얼른 정착되기만을 바랄 뿐. ...
별 넷이 될 뻔했으나 결국, 다섯이 된 이유는.... 역시 그 어디서도 읽을 수 없는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겠다. 또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심사숙고하여 골랐다는 것이 읽는 이에게 전해졌음이다. 이 작품들을 고르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아주 오랫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다. 다른 나라들의 작품들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아무래도 한 권 한 권 사서 모으게 될 것 같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