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의 시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해적의 시대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8월
절판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책 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등의 영상매체들로 더욱 익숙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쥬라기공원과 ER이라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소재를 다루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고, 동시에 최고의 드라마를 만들어내었던 작가. 2008년 마이클 클라이튼이 타계하면서 사람들은 이 위대한 이야기꾼이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고, 더 이상 그만의 상상력과 뛰어난 스토리텔링 실력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영상물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 했다. 마이클 클라이튼. 그는 그렇게 글을 쓰는 작가로서, 또 많은 대중들에게 새로움이 가득한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마이클 클라이튼이 세상을 떠난 후 사람들이 더 이상 마이클 클라이튼의 세상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이클 클라이튼은 이런 사람들의 기대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그렸던 또 하나의 세상을 준비해두었던 것 같다. 그것도 그 동안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이름이 늘 가지고 있었던 과학이라는 이름이 아닌 또 하나의 전혀 다른 세상을 말이다. 바로 바다위를 호령하며 한 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꿈꾸었던 그 이름 <해적의 시대>를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이름으로 내어놓은 것이다.

그 동안 수 없이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해적이라는 소재가,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이름을 거치며 어떻게 바뀌었을까? 마이클 클라이튼이 그린 <해적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해적의 시대>는 그렇게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였다

<해적의 시대>는 매력적인 영국의 선장 찰스헌터나 보물을 얻기 위해 마탄세로트와 몽키 베이를 거쳐 다시 포트 로열로 돌아오는 바다위의 원정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해적의 시대>라는 작품의 이름에 반드시 따라붙는 엄청난 보물이라는 또 하나의 소재를 더해 해적과 해적들이 원했던 부와 시대의 명예대 대한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내고 있기도 하다.

<해적의 시대>를 읽어내려가며 가장 흥미진진했던 점은 바로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섬세한 묘사력이다. 사실 해적이라는 과거의 무리들에 대해, 그리고 실제로 항해를 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한 영상을 제공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 하지만 <해적의 시대>는 한줄 한줄 글을 따라 내려가며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영화의 한장면이 펼쳐지듯 그 모습들이 자연스레 그려지는 뛰어난 영상효과까지도 제공한다. 책을 읽으며 영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다니... 어쩌면 이것이 마이클 클라이튼의 그 수 많은 작품들이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라는 영상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 또, 어떤 캐릭터는 선인이고, 어떤 캐릭터는 악인이라는 이분적인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시시각가 변모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면들을 모두 여과없이 보여줌으로써 조금 더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구현해내기도 하는 것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해적의 시대>는 마이클 클라이튼의 유작이다. 그가 그의 이름으로 내어놓은 마지막 작품이자, 그가 그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세상과는 또 다른 그가 창조한 세상이라는 면에서, 또 단순하게는 아주 재미있는 또 하나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해적의 시대>가 그의 유작인만큼 이제 우리는 마이클 클라이튼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세상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그 동안 보여주었던 새로운 세상. 그리고 그 세상들과는 또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을 <해적의 시대>를 통해 이제 보게 되었는데, 이 세상들을 조금 더 화려하고 자세하게 그려내줄 수 있었을 그가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마이클 클라이튼이 들려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그가 그려낸 마지막 세상. 또 그가 새롭게 상상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해적의 시대>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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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구판절판


보통의 삶을 차근히 밟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꿈을 꾸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꿈에 근접하고, 가끔은 꿈을 이루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아니, 그렇게 채워지진 않을지라도, 혹은 그렇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시간을 눈 앞에 놓았을때에는 그런 시간들을 상상하고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표현을 해야한다면, 그런 사실에 대해 의문조차 품어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었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맞는 표현일테다. 하지만.. 그것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단지 보통의 것들을 갖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가 보통의 것들이라 생각했기에 누구나 갖추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미쳐 가지지 못한 삶들이라면, 그들에게도 인생은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의미를 가질까? 인생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들이 보통의 사람들이 가지는 것들과 같은 것일까?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바로 그 보통의 것들을 애당초 갖추지 못했던 어느 소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도 잔혹하고, 거칠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안도감과 불안함을 동시에 던져주며 말이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당신 옆을 스쳐갔을지도 모르는 그 소녀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지나간 인생을 따라 누군가가 불렀던 단어가 그녀의 이름이 되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름이란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일 뿐이니, 나를 부르는 단어가 있다면 이름이 없다한들 또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하지만 이름이 없었던 그 소녀는, 그녀를 부르는 단어가 달라질때마다 누군가에게서 누군가에게로 옮겨가며 달라져갔다. 처음에는 자신이 진짜 엄마 아빠가 아니라 믿었던 부모였고, 그 다음에는 단돈 2000원으로 산 황금다방이었으며, 그 후에는 콧등치기 국수를 파는 태백 할머니였고, 그 후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폐가가 되어버린 집 속에 책으로 동굴을 만들어 놓고 사는 남자였다. 그 후에는 전국을 떠돌며 다른 사람들의 잔치를 벌여주는 각설이패였고, 마지막엔 자신처럼 이름을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유미와 나리였다.

진짜 엄마라면 당연이 자신에게 주었을 사랑을 주지 않았기에 그녀 스스로가 가짜라고 이름을 달아버린 엄마부터, 자신처럼 진짜 이름이 아닌 가짜 이름을 수시로 바꾸어 달며 살아가고 있는 10대 소녀들까지, 당신 옆을 혹시나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그 소녀의 삶을 이어준 기억들은 단 한번도 행복과 가까이에 한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 옆을 스쳐갔을지도 모를 그 소녀는 실제로는 자신을 낳아준것이 분명한 친엄마에게서 느끼지 못한 한줄기의 안정을, 그녀의 인생을 지나간 그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 곁에서 얻곤 한다. 그 누가 보아도 절대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사랑하는 연인에게도 존중받지 못하는 다방레지 장미에게서, 콧등치기 국수 한그릇을 팔아 풍족하지 못한 생계를 이어가고, 그나마도 뒤늦게 나타난 아들에게 모두 빼앗기게 생긴 태백 할머니에게서, 폐가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를 잃어버린 남자에게서, 머리를 눕힐 집 한칸없이 전국을 떠돌며 오로지 희망으로 삼았던 딸에게 선물할 돈마저 도둑맞고 좌절한 각설이패에게서, 그리고 불행한 가족과 어른들의 무시속에 내몰린 비행청소년들에게서 말이다.

물론 그들은 결국 그녀를 버리거나 떠났지만, 그녀를 버리지 않았던, 오히려 그녀가 그들을 버렸던 친부모에게서 얻지 못했던 위로를 그들에게서는 찾을 수 있었던 소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그렇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하게 보장해줄 수 없는 가장 평범한 것이자, 가장 보통의 것들을 얻지 못한 아이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가장 평범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들을 받지 못한 아이가 어떤 좌절을 경험하는지, 혹은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스산하고 잔혹하게 천천히 그려내며 이야기 한다. 여기에 사회에서 소외된 또 다른 의미의 보통의 것들과 평범함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보통, 평범, 혹은 당연한 것이라는 기준을 너무도 쉽게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상대적인 박탈감은 너무도 쉽게 잊어버린채 말이다. 또, 너무도 간단하게 그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불행이라는 이름을 달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사람은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가슴속만 보고 산다.

라는 책의 어느 한 구절처럼 불행이라는 인생의 이름표가 존재한다면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속에 등장하는 그 많은 보통의 것들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보통의 것들을 갖추지 못했지만 당신의 옆도 스쳐갔을지 모를 그 소녀를 눈여겨 보고 무엇인가를 나누어 준 그들이 불행한 것일까 아니면, 보통의 것들은 모두 갖추었지만 그럼에도 빠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갈길만을 보고 사는 우리가 불행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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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퍼케이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이퍼케이션 1 - 하이드라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0년 8월
절판


퇴마록은 딱 내 시대의 소설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에 한창 인기를 끌었었고, 영화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했으며, 퇴마록이라는 소설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않고 살았던 퇴마사라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만큼 많은 사람들의 지식 혹은 인식에 영향을 미쳤던 이야기였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퇴마록 자체가 엄청난 깊이의 학문적 지식을 품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겠지만 어쨋든 사람들은 퇴마록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조금 넓혔고, 상상했으며, 이해나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던 것만큼 사실이었다.

퇴마록은 소재만이 신선한 소설도 아니었다. 그 당시 막 시작되었던 PC통신이라는 매체를 통해, 일명 나우누리, 하이텔등의 통신에서 연재가 시작된 이야기였으니, 새로운 매체를 통해 글을 알리고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지금의 인터넷 소설의 시작이였기도 하다. 그래서 그 시대에 퇴마록을 좋아하고 즐겼던 사람들은 이우혁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잊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PC통신을 하진 않았기 때문에 직접 그 글들을 그 안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퇴마록의 이야기들이 서점에 진열되기를 학수고대하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바이퍼케이션은 바로 그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이 15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준비를 해서 만들어내었다는 이야기이다. 퇴마록이라는 이야기만으로도 그 소재의 참신성을 인정받았던 그 작가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준비했길래 1~2년도 아닌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준비해야만 했을 것일까? 바이퍼케이션은 그렇게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었다.

바이퍼케이션, 부재 하이드라라는 제목을 가진 이 이야기는 장르를 말하자면 추리소설에 근접하다 할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하는 참혹하고 잔인한 살인의 연속. 그리고 그 모든 살인들이 모이는 하나의 점에 바로 하이드라라는 인물이 존재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사 가르시아와 프로파일러 에이들은 하이드라라는 인물에 근접해가는 동안, 뱀파이어와 헤라클레스라는 또 다른 잔인한 범죄자들과 마주치며 이들을 통해 하이드라라는 인물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


사이코패스라는 이제는 생소하지 않은 단어가 어울릴만한 연쇄살인범들을 추격하는 형사와 어린 시절 얻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죄의식을 끌어안은채 살아가야만 하는 천재프로파일러라는 등장인물들만으로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제공되는 범죄 수사물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이우혁이라는 작가가 더해놓은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헤라클레스와 하이드라가 가세하고,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가 더해지면서 바이퍼케이션은 일반적인 범죄 수사물과는 다른 더욱 풍성한 이야기의 소재들을 끌어들이는 것.

그래서 이 책에는 범죄 수사물들에서 볼 수 있을법한 다양한 실제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들 이외에도 이야기의 주요 줄기를 형성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를 곳곳에 배치한다. 헤라클레스라는 신화의 영웅과 그가 수행해야했던 과업의 목표물이었던 하이드라라는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이퍼케이션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심리학과 그리스 신화등의 누군가는 혹시 알았을지도 모를 다양한 지식들을 배치해 단순히 이야기만을 즐기는 수준이 아닌 어느 정도의 지식을 자연스레 전달하는 역할을 함은 물론, 소설이라는 글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미도 갖추고 있는 셈. 또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범인맞추기" 미션 역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나의 경우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인물을 지목함으로서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놀라움도 제공한다. 퇴마록의 이우혁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리고 이우혁의 소설이 제공하는 흥미진진함과 재미를 기대한다면 바이퍼케이션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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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6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6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iktok798 2010-09-06 17:38   좋아요 0 | URL
방명록에 남겼어요~

비로그인 2010-09-0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적해 주신 내용은,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콜로서스 - 아메리카 제국 흥망사
니알 퍼거슨 지음, 김일영.강규형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품절


하나의 대상을 단 하나의 단어로 규정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어떤 시각에서 그 대상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그 시각에서 적용되는 하나의 단어를 찾아낼 뿐, 모든 것들을 아울러 단 하나의 단어로 여러 특성을 가진 대상을 규정하는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록 하나의 단어로 대상을 규정하는 일은 어렵다할지언정 그렇다고 하여 그 단어가 무가치하다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대상을 규정하는 단어에는 때로는 단 하나의, 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존재하고, 단어에 존재하는 의미는 분명 누군가가 그 대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한 해당대상의 내포된 가치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당신을 규정하는 하나의 단어를 제시했다면, 헌데 이 단어가 이리보아도, 저리 보아도 현시대에는 긍정적이라 볼 수 없는 단어였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할까?

그런 의미에서 한 나라를 규정하는 단어에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면 그 나라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라는 궁금증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해당국가는 불쾌해 할 것이며, 그 국가의 국민은 이를 부정할 것이다. 또 자신들이 이 제국주의라는 결코 아름다워보이지 않는 단어의 국가형태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누군가는 연구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을까? 제국주의, 이 단어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았을때 결코 현시대에서는 벌어지지 않아야 할 수 없이 많은 전쟁과 피를 불러온 단어이니까 말이다. 그 누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확장하기 위해 타국을 짓밟고 소유하려 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달가워하겠는가.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민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만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이 어찌 되었던 간에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일단 미국이 제국이라는 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음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미국을 제국이라 일컬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것이 잘못된 이야기임을 요목조목 따질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101한가지 이유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임을 꼬집고 그 잘못된 행태나 그릇된 국가관을 꼬집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은 제국이다. 하지만 제국이 꼭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반론을 달고 시작되고 있으니 말이다.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지금의 미국이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주 목적으로 하여 팽창하던 바로 그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국가임을 규정하고, 그들이 자신들의 이러한 거대한 힘을 어떻게 이어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방향을 묻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 당신은 미국이 제국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어온다면 나는 단 10초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이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총칼을 들고 식민지를 개척하며 자신들의 지배권아래 전 세계를 두기 위해 피흘리는 전쟁을 전면전으로 앞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에서도 언급했듯, 막강한 경제력과 거대한 정치적 힘을 앞세워 엄청난 힘을 세계적으로 발휘하고 있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 아래서 자유롭지는 못하니, 국경은 나누어져 있고, 정치적으로는 독립되어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 의미에서의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제국이라는 단어에 규정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들이 현재 그들 자신에게 부여된 초국가적 힘을 어덯게 활용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뇌가 아닐까?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고 말이다. 제국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좁디좁은 의미에 갇혀 자신들을 부정하려 하지 말고, 제국이라 불리워도 틀리지 않은 그 힘을 그들이 어떻게 펼쳐나갈지, <콜로서스-아메리카 제국의 흥망사>는 바로 그 의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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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카미노 On The Camino (특별부록 : '카미노 여행 준비 끝' 포켓 가이드) - 리얼 빈티지 여행! 산티아고 길에서 다시 태어나다
이신화 지음 / 에코포인트 / 2010년 7월
품절


올해도 무더운 여름이 돌아오고, 장마가 지나가면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이하게 된다. 예전에는 휴가라고 해도 가까운 해변이나 계곡을 돌아보며 더위를 식히는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가까운 해외를 돌아보거나 가족들과 휴양지를 향해 떠나는 일도 드물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유독 여름을 앞두거나 혹은 여름에 들어서는 이즈음의 시즌에는 서점가에 유독 여행관련 서적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올 여름에는 어딜가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보를 주고, 그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담으로 올 여름을 조금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정보를 담아 말이다. On the Camino 역시 큰 범주에서 본다면 이런 시즌맞이 여행서적에 속한다. 지금은 여름이고, 이 책은 분명 여행에 대한 작가의 일화들을 담고 있으니까..

하지만 On the Camino는 휴가철을 맞아 잠깐 다녀올만한 여행을 소개하는 단순한 여행일지나, 소개서가 아니다. 여름휴가철을 틈 타 다녀오기엔 어딘지 잘 맞지 않는, 아니 대놓고 어울리지 않는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바로 그곳 산티아고를 소개하고 있는 글이니 말이다. 사오일의 휴가를 통해 잠시 들러 생활의 활력을 재충전하기 위한 휴가지가 아니라, 고행에 가까운 순례길, 그것도 적게는 15일 길게는 한달이 넘게 걸린다는 이 길을 한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한권의 이야기로 담아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직장인들이 모두 직장을 때려치우고 인생이라는 고행을 걷듯 이 길을 걸어 뭔가 대단한 의미를 얻을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한 것일까? 그렇게라도 이 길에 대단한 깨달음이 있음을 이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휴가철을 앞두고 순례자의 길을 소개한 이 책에 호기심을 잔뜩 품은채 나는 이 책을 펼쳤다. 물론 때마침 얼마전 읽었던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을 소개했던 또 다른 책 <노란색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떠올리며 말이다.



On the Camino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사뭇 다른 느낌을 담은 책이었다. 물론 두 이야기 모두 순례자의 길인 산티아고를 향하는 여정을 다루고 있지만 두 작가는 종교도, 여행을 시작한 동기도 모두 달랐으니까 말이다. On the Camino의 작가는 거의 무계획에 가깝게 그저 산티아고를 먼저 다녀온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이 여행을 결정한다. 이 여행에는 그저 여행작가라는 그녀의 오랜 직업과 그 직업으로 생겼을지 모를 막연한 방랑벽이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을뿐 그 어떤 숭고한 종교적 가치도, 목적도, 의미도 부여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맞을 것 이다. 걷고 또 걸으며 인생의 의미를 되짚고, 순례라는 종교적 목적을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 거니는 곳. 순례자들의 여행지인 그곳이 지금은 그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의미의 여행지로 거듭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On the Camino의 작가는 그 중간지점에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카미노를 적절히 선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바로 종교적 의미가 아닌 새로운 의미에서 그 길을 걷는 여행자이니까..

그래서 On the Camino는 산티아고를 향하는 이 길에 웅장하고 성스러운 이미지와 의미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진흙길에 발목을 잡히고, 쏟아지는 비에 좌절하며, 너무 걸어 말도 듣지 않는 발목의 고통을 그대로 이야기 한다. 또 길목마다 기다리는 좋거나 혹은 나쁜 음식들과 레스토랑, 짧은 순간이지만 추억을 만들어준 동행자나 그 반대의 동행자, 진한 여운을 남기는 에피소드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들은 모두 담아낸다. 그저 여행자의 시선으로 말이다. 또 꼭 산티아고 뿐 아니라 스페인과 포르투갈등 인접지역들을 돌며 느꼈던 +알파의 여행일지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어 순례자의 고백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여행서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On the Camino는 다른 이의 순례여행을 읽어내려가며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간접경험을 원하는, 또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깨달음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카미노라는 여정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길을 걸으며 좀 더 만족스러운 혹은 편안한 여행까지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안내 지침서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 하다. 작가 자신이 들렀던 음식점과 숙박업소, 또 약간의 편법을 이용한 카미노여행들을 모두 담은 한권의 책 On the Camino. 산티아고는 분명 순례를 목적으로 하는 많은 종교인들이 걷는 고행의 여정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길에서 종교적이고 숭고한 목적만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종교적이 아니라도 그 길고 긴 여정에 뭔가 담아갈 것들은 있을테니까 말이다. 산티아고의 여정에 관심이 있다면, 하지만 좀 더 즐겁고 요령있는, 순례보다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On the Camino가 도움이 될 것이다. 분명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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