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2주

사랑은 언제나 수 없이 많은 문학과 영화, 음악의 소재가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테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사랑을 말하기 때문에 이제는 사랑이라는 소재가 진부하게 느껴져 버릴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하며,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영원히 풀리지 않은 숙제이자, 행복의 시작이기도 하겠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꿈꾸는 사랑, 이제는 조금은 흔해진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왜 모든 글과 영화와 음악들은 아름다운 남녀의 사랑만을 말할까?" 현실 속의 사랑이란 그것보다는 더욱 다양하고, 더욱 현실적이며, 때로는 잔일할텐데 말이죠.. 우리가 늘 말하는 사랑,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고 살았던 사랑의 잘 보이지 않았던 조각들도 분명 존재하긴 할 것 같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바로 그런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젊고 아름다운, 존재만으로도 그 빛을 발하는 싱그러운 청춘들의 꿈처럼 달콤하거나 극적인 사랑이야기가 아닌, 이제 황혼마저 지나 노년기에 접어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한쌍의 노 부부와 또 한쌍의 노 연인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젊음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깊고 진실된 사랑의 이야기 말입니다.

말 한마디 곱게 하는 적이 없는 까칠한 할아버니 만석은 새벽마다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유를 배달합니다. 그리고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송씨 할머니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죠. 할머니는 가족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는 외로운 처지이지만 언제나 조심스럽고 만석 할아버지 눈에는 그야말로 이뻐 보이기만 합니다. 또 같은 동네에는 치매에 걸려 매일 그들의 추억을 잊어가고 있는 순이 할머니를 아내로 둔 군봉 할아버지도 살고 있습니다.  삶이 윤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보일것도 없는 가난한 삶의 노인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우리가 가끔은 잊고 살고 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사랑이란 어떤 모습일지 가끔 고민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를 이 두커플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강풀작가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웹툰으로도 이미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눈을 붉게 물들게 했고, 이어 연극으로도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죠. 강풀작가는 이미 많은 작품들이 그 특유의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영화화 되었는데요. 사실, 영화화된 작품들이 그닥 극장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대를 사랑합니다>만큼은 그럼에도 기대를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만큼 웹툰의 여운이 강렬했고, 그 감동이 스크린을 통해 가득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작품이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정식개봉하기 전, 유료 시사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듣자 마자 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웹툰을 통해 보았던 그 여운과 감동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 궁금했고, 그 감동 역시 다시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을 짧게 말하자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젊고 산뜻한 배우가 많이 나오지 않아도(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젊은 배우는 만석의 손녀로 출연하는 송지효 정도입니다.) 아름다울 수 있음을, 젊고 생동감 넘치지 않기에, 그 자리에 진실함과 담백함, 그리고 더욱 수줍고 깊이 있는 사랑을 채워넣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으니까요. 언젠가는 늙어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인생에서, 노년이 되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바로 그 점을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었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감동적인 영화가 되어 줄 듯 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우리가 잊고 지내는 노년기의 사랑에 대한 영화라면, 이 영화 <필립 모리스>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혹은 의식적으로 외면하려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게이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죠.

가정을 이루고 정상적인 남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스티븐은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자신이 그 동안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는 것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아빠로, 남편으로 잘 살아온 스티븐이지만, 사실 그는 게이였던 것이죠. 게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그는 돈을 필요로 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머리가 좋았던 스티븐은 점점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사기를 치고 그 돈으로 호화로운 게이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데요. 그러던 차에 필립 모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돈은 내가 벌테니 너는 사랑하는 나의 연인으로만 남아다오!식으로 필립 모리스에게 애타는 구애를 하고, 결국 그를 연인으로 얻게 된 스티븐,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 스티븐의 사기행각은 덜미를 잡히는데요. 사랑하는 필립 모리스를 떠나 살 수 없었던 스티븐은, 필립을 따라 감옥을 옮기고, 필립이 출소하자 끝없는 탈옥을 시도하기에 이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비교하자면 <필립 모리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꽤 다른 작품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끝없이 소박하고 진지한, 그리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전한다면, <필립 모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일념을 가진 한 남자가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기 위해 얼마나 무모해질 수 있는가를 때로는 어이없게,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웃기게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정신없이 웃고 실소를 터트리면서 이들이 우리가 조금은 껄끄럽게 생각하는 게이커플임을 잊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되고, 그 어떤 무모함이라고 기꺼이 보여주는 것. 게이들의 사랑 역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음을, 그들의 사랑도 남녀간의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게다가 이 영화, 실화라고 하니, 더욱 설득력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추천할 영화는 바로 <오아시스>입니다. 사실 <오아시스>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영화이죠. 그만큼 우리가 가끔은 잊고 있던 그들의 사랑이야기의 대표격으로 거론될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종두와 공주라는 이름의 두 남녀입니다. 종두는 이제 막 교도소를 출소한 후 가족들에게 돌아가지만, 가족들은 그를 사랑하는 품이 아닌 냉대로 맞이하죠. 그는 그야말로 가족에게 부담만 되는, 있으나 마나한, 때로는 없는 것이 더 나은 존재입니다. 공주는 중증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고, 때문에 언제나 홀로 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버려지다시피 남겨져 있는 것이죠. 어느날 종두는 우연히 공주와 맞딱드리게 됩니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이긴 하지만,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혹은 사회에서 소외받는 이들, 종두와 공주는 그렇게 우리가 잊어버린, 혹은 잊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을 시작하죠. 뭔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정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이들, 하지만 분명 그것은 사랑이고, 그들은 사랑을 합니다.

오아시스가 영화 작품성이라는 측면에서 극찬을 받고, 아직까지도 훌륭한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감정이 존재함을, 그리고 그들 역시 매일 숨을 쉬고,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임을, 종두와 공주의 모습을 통해 절절히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연기력이라면 두말할 나위없는 두 배우의 열연도 한 몫 단단히 한 것이겠죠. 누군가에게 자의든 타의든 사회적 계층으로 구분을 지어내고, 그들을 소외시켜 버리더라도, 그들에게도 또한 사랑은 소중하고도 아름다운 것임을 오아시스는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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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끝없이 궁금해하고 꿈꾸는 바로 그 감정에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붙여놓고는 있지만,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인만큼, 그 사랑의 모습도, 그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모습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들도 세상에 살고 있음을, 그리고 그들에게도 사랑이 소중함을,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바라고 있음을 이 영화들이 조금씩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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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월 4주

다른 때보다 조금 넉넉한 설 명절 연휴를 맞아 올 설 극장가는 다른 해 보다 몇배는 풍성한 영화들이 상영관을 채우고 있습니다. 특히 꽤 기대를 모으고 있는 국내 영화 기대작들도 속속들이 개봉을 하고 있는데요. 한 주 먼저 개봉을 한 글러브가 꽤 좋은 성적을 보이는 가운데, 한 주 늦게, 연기력이라면 두말 할 나위 없는 명배우 김명민 주연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황산벌 그 이후의 이야기 성격을 가지는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이 개봉을 했습니다. 두 작품 다 오랜 시간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개봉만을 기다리게 하는 작품이었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 김명민 주연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먼저 극장에서 만났답니다.
  

 

 

정조시대, 조정은 공납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공신들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거대한 도둑들은, 비록 도둑이라 할지라도 그만큼의 무시하지 못할 힘과 지위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죠. 개혁을 추구하던 개혁군주 정조는 이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명탐정을 은밀히 파견합니다. 이 과정에서 명탐정에게는 서필이라는 개장수를 동행으로 삼게 되고, 왕이 은밀하게 보낸 그곳, 적성으로 표면상은 열녀 사찰을 위해 떠나게 됩니다. 물론 본 목적은 공납비리의 진실이지만 말이죠. 적성에서 명탐정은 거대 상단의 아름다운 객주인 한객주라 불리우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한객주와 상단, 공납비리와, 열녀의 자결사건 사이에 묘한 관련이 있음을 눈치챈 명탐정, 위험하지만 그만큼 스릴 넘치는 추리와 모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 바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죠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그 동안 조금은 무겁거나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배우 김명민이 유쾌하고 즐거운 뭔가 만화스러운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점만으로도 꽤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었죠. 언제나 출중한 연기력으로 캐릭터만의 재미와 독특한 이미지를 입체화하는 데에 성공했던, 그래서 연기력만큼은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던 배우. 그런 배우가 연기하는 위트넘치고 웃기는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지 사뭇 궁금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명민은 언제나 그랬듯, 캐릭터 자체가 가지는 즐거움과 유쾌함들을 무척이나 잘 살려냅니다. 여기에 오달수라는 걸출한 조연의 양념들이 더해져,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죠.

또, 한국에서는 그 동안 만나기 힘들었던 탐정물의 이야기라는 점, 또, 의례히 그래왔듯,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무게감 넘쳐야 한다든가 혹은 살인사건이 연루되면 잔인하고 심각해야 한다든가 하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넘어 헐리우드의 탐정물들이 변화하듯 유쾌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요소요소에 잘 배치되어 있는 명탐정의 허당스러운 몸개그나 서필과 명탐정 사이의 말장난식의 유머등도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포인트이자 양념. 이번 설에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계획하신다면, 충분히 즐겁게 보실 수 있을 법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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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비교하여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많은 분들이 예상하셨겠지만 09년 12월에 개봉했던 셜록홈즈입니다. 아이언마스크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잘생긴 미남 배우의 대명사인 주드로, 그리고 국내에서는 시간여행자의 아내라는 작품에서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레이첼 맥아담스가 출연했던 작품이죠.

알 수 없는 주술과 불길한 의식을 행하며 5명의 여인들을 죽이는 등, 런던을 공포속에 몰아넣은 악마, 블랙우드 경. 그를 잡아넣기 위한 수사를 돕던 홈즈는 드디어 그 주술의 의식이 행해지던 곳에서 그를 잡아 체포합니다. 블랙우드 경에게는 교수형이 처해지고, 그는 교수형이 처해지기 직전까지 감옥에서도 일대의 소란을 일으키며 홈즈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죠. 감옥에서 대면하게 된 블랙우드와 홈즈, 블랙우드는 이제 더 많은 공포가 런던을 뒤덮을 것이며 홈즈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경고합니다. 교수형에 처해진 블랙우드 경. 그러나 블랙우드 경은 석판으로 뒤덮인 무덤을 깨고 걸어나와 부활한 악마라는 명성을 얻고, 런던을 다시 공포로 몰아넣는데..
 

 

 

 

 

 

 

 

 

셜록홈즈는 그간의 셜록홈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고운 모자와 망토를 입고, 의자에 앉아 머리만 굴리는 두되형 수사탐정의 홈즈를 그렸던 것에 반해 이번 셜록홈즈는 뛰고 달리고, 맞고, 때리는 움직이는 격투가능 셜록홈즈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언제나 총명한 머리로 사건을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 입 딱 벌어지게 만드는 상상불가의 추리력을 제공하는것에만 집중되어, 인간적인 빈틈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볼 경황이 없었던 이 역할이, 이번에는 기르던 개에게 약물실험하고, 한밤중에 바이올린 켜대며 사람을 괴롭히고, 파트너가 약혼하며 자신을 떠난다는 사실에 불안해하고 질투를 거듭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다시 말해 너무 잘나기만 해서 인간미가 없던 셜록홈즈의 자리에, 허점많고 너무도 인간적이라 애정과 애틋함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바로 그런 인간 셜록홈즈가 대신 서 있는 것이죠.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김명민이 연기한 명탐정과 비교한다면, 탐정이라고 맨날 머리만 굴리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치고 때리는 액션도 가능한 역동성을 겸비했다는 점, 또 완벽한 지능형 인간이기보다는 허점많고 은근 허당인 인간적인 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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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과 비교하여 보면 재미있을 작품은 바로 멘탈리스트입니다. 멘탈리스트는 영화로 개봉한 작품은 아니지만, 현재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최고의 미드 중 하나이죠. 지금은 시즌3가 방송중에 있는데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섬세하게 관찰하여, 일반적인 수사방법으로는 도출할 수 없는 직관적인 추론들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극중 CBI라는 기관 소속의 컨설턴트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멘탈리스트의 멘탈리스트인 CBI 소속 컨설턴트 패트릭 제인은 한 때 영매 흉내를 내며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쇼를 하며 인기를 누렸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그 방면에 소질이 있었던 패트릭 제인은, 이런 영매행세를 하던 도중, 유명한 연쇄 살인범 레드존에 대한 수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죠. 모든 것들을 쉽게 생각하고 있던 패트릭 제인은 자신이 쇼를 진행하던 방송에서 레드존을 언급하며 레드존에 대해 비난에 가까운 멘트를 합니다. 불행히도 제인은, 이 몇 마디로 인해, 분노한 레드존의 손에 딸과 아내를 모두 한꺼번에 잃게 되죠. 제인은 이 사건으로 그간 해왔던 영매 행세를 모두 그만두고 CBI 소속의 컨설턴트로 레드존의 수사에 직접 개입하게 됩니다.
 

 

 

멘탈리스트는 수사추리극이긴 하지만, 기존의 수사 추리극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수사관이 주인공이고, 이 수사관이 예리한 추리력이나 과학적인 수사방법들을 기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가 아니라, 예측불가능할만큼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아주 작은 사물이나 등장인물둘의 행동을 통해 단서를 얻고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또, 언제나 철두철미하고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형사나 요원이 아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선 때로는 함정수사에 용의자나 증인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최면거는 일까지도 불사하는 좌충우돌, 사고뭉치 컨설턴트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주인공인 김명민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상대가 보여주는 아주 작은 행동하나, 사물하나를 가지고 사건의 단서를 추론해내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함정을 파기도 하는 가끔은 무모한 방법을 동원하는 캐릭터거든요. 아무래도 시리즈물로 진행되고 있는 멘탈리스트에 비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는 그 에피소드들이 숫자적으로 빈약하긴 하지만, 만약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가 TV시리즈로 제작된다면, 멘탈리스트와 비슷한 사건해결모습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분명, 우리나라 최초의 탐정물이라는 점 만으로도 많은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줄만한 작품입니다. 또,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보이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모습들을 유쾌하게 재창조하고 있기도 하죠. 셜록홈즈의 액션, 허당 캐릭터와 멘탈리스트의 디테일에 강한 색다른 매력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조금 더 재미나고 즐거운 모습으로 보여진다고 생각한다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를 즐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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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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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가려놓은 장막을 들추고 한 여자 아이가 서 있다. 순수함을 상징하는 흰색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다소곳이 갈라내려놓은 아이. 장막의 바깥에는 밝은 빛이 내리쬐는 세상이요, 장막 안은 어두움이 스며들어 회색만이 남아있는 공간이다. 내리쬐는 태양은 장막의 안이 아닌 장막의 바깥만을 비추고, 그래서 빛을 받지 못한 장막안에는 그 어떤색도 물들지 못한다. 오로지 남은 색이라고는 검고, 흐린 회색과 들춘 장막의 사이로 들어온 한 줄기 빛을 받아 빛나는 여자 아이의 눈부시게 하얀 원피스 자락의 투명함 뿐이다. 빛을 받아 화려한, 총 천연색의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하는 아이는 어두움을 벗어나 이제 빛으로 나가야 하건만 그 전에 신을 먼저 찾아 신는다. 화려한 세상아래 깔린 거칠은 자갈밭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장막의 안에는 백발의 노인이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고, 장막의 바깥에는 그보다는 훨씬 젊은 남자가 그녀의 바로 앞에 다가와있다. 그녀는 노인보다는 젊은 남자에게 더욱 가까이 있지만 그녀는 장막의 바깥이 아니라 장막의 안에 있다. 그녀는 노인보다는 젊은 남자에게 더욱 가깝지만 노인의 공간에서는 맨발이어도 안전할 수 있고, 젊은 남자에게 가기 위해선 자신의 발을 보호해줄 신을 찾아 신어야 한다.

그 아이.. 은교는 알았던 것이다.
젊음으로 빛나는 화려한 색만을 인정하는 세상은 사실 그 빛깔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젊음을 가진 남자보다는 젊음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곁에서 자신이 더욱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은교가 신을 완전히 신고 세상밖으로 나가지 못해 망설이고 있음은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보니 그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젊은 남자는 그녀를 향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인에게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인은 그녀의 뒷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젊은 남자도 그녀처럼 노인의 장막안에 들어서 화려한 색을 내느라 고분분투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회색빛으로 물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신을 벗고 노인의 곁에서 말이다. 노인도 그녀처럼 젊은 남자에게로 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자신이 잃어버린 한때의 색을 나누어 가지고 뜨거운 태양빛을 받기 위해서 말이다. 두 남자는 그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저 그들 중간의 문턱에 우연히 서 있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이.. 은교는 알았던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것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었음을.
자신은 그저 우연히 그들 사이의 작은 틈바구니에 존재했던 것일 뿐임을..
그들과 함께 존재하길 원한다면 그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틈을 파고 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 아이.. 은교는 몰랐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작은 틈바구니에 그녀가 존재한 순간, 그 틈은 세 사람이 아무도 예측 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갈라져 벌어진 다는 것을.. 한번 갈라지기 시작한 그 날카로운 틈은 결코 다시 모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오로지 더 큰 간격으로 서로를 잔인하게 찢어버릴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두 사람의 세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디좁은 문턱에 그녀가 위태로이 서 있을 수록, 그 두 사람의 갈망도 날카롭게 서로를 겨냥할 뿐이라는 바로 그 사실을 그녀는 미처 몰랐다.


<은교>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한참동안, <은교>라는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삽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은교>를 읽기 전에는 그저 삽화에 지나지 않았던 표지의 그림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은교>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를 단 한창의 그림에 담아,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갈망들을 그들 사이에 존재했던 엇갈림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야기의 제목은 <은교>였지만, <은교>는 은교가 아닌 두 남자의 이야기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은교>라는 책을 처음으로 열고 마지막으로 덮은 그 순간까지 책장의 글자들을 따라 읽어내려갔던 이야기에 은교는 없었다. 그저 서로를 한 없이 원했고, 서로를 끝없이 갈망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은교는 그저 그들이 원했던 서로의 모습이 부딪혀 만들어낸 그들의 욕망이 뭉쳐진 단 하나의 존재이자, 서로에게 너무도 다른 의미의 바로 그들 자신이었을 뿐이었다.


평생을 시만 써오며 자신의 일가를 이루었던 시인 이적요. 그리고 그런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그런 그를 한없이 존경해 그를 닮고 싶었던, 작가가 되지 못한 작가 서지우가 등장하는 <은교>라는 이야기는 언뜻 보면 은교라는 이름의 한 여자아이를 사이에 둔 사제간의 질투와 분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야기 이전에 짙게 깔린 그 두 남자간의 신뢰와 동경, 그리고 사랑과 갈망에 대한 이야기가 솟아 오른 이야기였다. 단 한번의 사랑도 가슴에 남기지 못할만큼 철저하게 자신의 젊음을 유예시키며 살아온 노령의 시인 이적요가 처음으로 자신이 세상을 향해 쌓아올린 벽을 허물게 만든 제자 서지우에 대해 느끼는 질투와 분노는, 그가 서지우를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자신의 사람으로 인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고, 시인의 재능과 그의 세상을 한없이 사랑해 그 세상으로 들어가고 싶었던 서지우의 무모한 도전과 오기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것만 같은 스승에 대한 서러움과 그만큼 그를 원했던 서지우의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은교라는 이름을 가진 열일곱 여자 아이는, 그저 그들의 이중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는 뭉쳐 얽히고 설킨채 방향을 잃고 하염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만드는 기폭제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었으리라.. 은교는 그래서 그들에게 은교자체가 아닌 다만 스승인 노시인과 스승의 세상에 속할수도 없고 그 그늘을 벗어날 수도 없는 멍청한 제자가 가진 서로를 향한 갈망의 결정체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은교가 아니었더라도 상관없었을지 모른다. 단지 바로 그 자리에 은교가 있었을 뿐. 은교는 그들에게 은교가 아닌 그저 그들의 갈망이 부딪혀 만들어낸 날카로운 칼과 같은 틈의 시작이었을 뿐.


은교를 읽어내려가며 문득 노 시인의 은교를 향한 사랑에 나는 면죄부를 붙여주고 싶었다. 정말이지 누군가는 시인의 사랑을 변태적이라 할지도 모르지만, 시인의 사랑은 열살 소년의 그것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어린시절 그가 어렴풋이 느끼는 것으로 끝내야 했던.. 그래서 열살 이후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올렸던 자신을 감싸준 D라는 이름의 누이를 향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열살의 소년의 사랑이 시간이 흘러 그가 청년이 되고 노인이 될때까지 그리움과 복사꽃 향기를 머금은 치즈처럼 숙성되고 굳어져 자극적인 향으로 남은 것이었다고. 그래서 비로소 은교를 만났을때 열살의 소년처럼 D라는 이름의 순결한 처녀를 향해 쏟아내어야 했던 사랑을 내보인 것일 뿐이라고...그래서 그 순결한 처녀를 더럽히고 자신의 순결한 처녀인 작품들을 더럽힌 단 하나의 존재가 자신의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단 한명의 사람인 서지우임을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를일이고 말이다.


가끔, 무엇인가를 향한 집요한 욕망이 그것을 갖지 못한 좌절과 그리움을 넘어 그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극단의 마음으로 발전하는 이야기들을 듣곤 한다. 때로는 드라마로, 때로는 영화로 말이다. 무엇인가를 절대적으로 원하는 마음. 그것을 사랑하기에 끝없이 원했던 그 갈망의 마음이, 그것을 얻지 못한 분노와 좌절로 이어졌을때,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는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을 망치고 스스로를 상처내기도 하는 가 보다. 노 시인과 젊은 제자처럼 말이다. 자신에게 존재했던 유일무이한 순수를 망친 누구보다 사랑했던 제자, 그리고 그럼에도 자신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은 무모함에 노 시인은 분노를 넘어 좌절과 배신을 느꼈을 것이다. 또한 그토록 원했던 시인의 세상에 발을 내딛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단 한순간도 살갑게 받아주지 않는 무정한 스승에 대한 원망과 그 스승의 퇴폐적이라 말할 수 있는 욕망앞에 그의 세상을 원했던 제자는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을 빼앗긴듯한 좌절을 맛보았으리라. 자신을 따라붙는 제자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스승에 대한 분노와 보호본능이 공존하며 뒤엉킨 두 사람의 감정은 그래서 단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너무도 복잡한 것이라 언제나 휘청이며 위태로웠다.

서로를 끝없이 이해하고자 했으나 결코 자신의 세상을 벗어나지 못했던 두 남자. 자신만은 그를 모두 안다 자만하고, 그는 절대 나를 알지 못한다는 오만함이 빚어낸 비극은, 그리하여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비수를 꽂는 비극으로 치닫고야 말았다. 그토록 원했던 상대방을 얻지 못한채, 상대를 오해하고 자신을 배반하며 자신을 죽이고 서로를 죽이는 것으로 말이다.


작가는 <은교>의 키워드를 갈망이라고 했다. 무엇인가를 끝없이 원하는 바로 그 마음. 노 시인은 은교를 통해 자신이 지난날 유예시키고 돌아보지 않았던 순수의 감정과 서지우로 대표되는 인간의 마음을 갈망했다. 서지우는 자신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노 시인의 세상과 그의 시를 갈망했다. 은교는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에게는 없는 안정과 미래, 그리고 사랑과 평화로움을 갈망했다. 그들 모두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서로를 끝없이 갈망했지만 결국 그 갈망으로 인해 그 누구도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상처만을 끌어안은채 잔인한 목마름만을 남겨야 했다. 어쩌면, 그래서 갈망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원하는 소망이나 희망, 그리고 욕망이 아닌 갈망 말이다.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처절하게 원하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못했기에, 그래서 그 주변의 다른 것들을 돌아보지 못해 그들 주위를 맴돌던 오해와 갈등을 미쳐 돌아보지 못한 아둔함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미련함을 갈망이라는 단어 이외에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모든 것을 꿈꾸게 만들었으나 모든 것을 잃게 만들었던 <은교>라는 이름의 그들의 갈망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그들의 갈망은 이제 몰스킨의 한줄 끈으로 남았으니 그들도 이제 그들을 파멸로 이끈 갈망에서 벗어나 그들이 진정 원했던 순수와 시를 향해 한마리 당나귀의 등을 나누어 타고 타박타박 걸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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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품절


사춘기 시절을 표현할때, 종종 낙엽만 굴러가도 웃던 시절이라는 표현을 쓸 때가 있다.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즐거웠던 사춘기 시절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굴러가는 낙엽에서 무엇을 발견했길래 그 시절에는 그 작고 사소한 모습만을 보고도 친구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건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그 시절 굴러가는 낙엽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이야기를 더해가며 의미를 만들어 주었던 바로 그 순수하거나 진지했던 작지만 소중했던 사소함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조금은 무덤덤해진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다.
<사소한 발견>은 바로 그 굴러가는 낙엽에서도 의미를 찾고 웃음을 찾았던 그래서 박장대소하며 웃었던 소녀시절의 풍부한 감성과 섬세함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아주 작은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하는 의미들, 혹시 잊어버렸거나 찾으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바로 그 이야기들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는 지극히 사소하지만 공감이 되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어쩌면 너무나 사소해서 꾸밀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상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 속에 담긴 당신만의 사연을 담는 법을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탁상시계, 내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전화기, 그리고 누구나 책상서랍 한 쪽 구석에 하나씩은 쳐박아 두었을것만 같은 낡은 필름 한통, 사소한 발견은 그렇게 모두가 가지고 있고, 그래서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는 것들에서 자신의 추억을 꺼내고, 일상을 발견하고, 사람들 간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낸다. 무심코 스쳐지나갔다면 아무것도 아닐 사소한것들, 그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이고 추억의 사연들을 매달아놓는 작업을 통해 사소한 발견이 기억의 발견이며, 일상의 창조이자, 자신의 인생을 말하는 모든 그림임을 보여주기에 사소한 발견 그 자체가 사소하지 않는 대단한 발견으로서 탈바꿈하는 이야기. 그리고 당신 역시 그렇게 일상에서 모든 것들의 의미를 발견해보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살며시 제안하는 책. 사소한 발견은 그래서 낡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사진한장처럼 흐리고 매력적이다


모든 것의 의미가 나의 의미가 될 것이다.
<사소한 발견>이라는 제목이 지어진 이 한권의 책은 사실, 한 사람의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관련한 사진과 함께 엮어낸 작은 사진집 겸 에세이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모든 것들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작가의 사소한 감성과 함께 내가 잊고 있었던 나의 기억을 짧은 토막이나마 떠올리게 하는 정말 사소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사소한 발견>을 통해 나만의 사소한 발견들이 나만의 특별한 색을 입고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제라도 사소한 발견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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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니? 한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
공병각 글.그림 / 북스(VOOXS) / 2009년 8월
구판절판


사랑을 시작할때, 사랑을 하고 있을 때, 그리고 사랑이 끝났을때.. 사랑을 담은 마음에는 사랑만큼이나 많은 말들이 넘쳐난다. 글을 쓰는 재주가 없어 책 한권에 장황한 연애사를 아름다운 소설 한권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순간순간 끝없이 생겨나는 그 짧은 말들. 가끔은 그 짧은 한마디의 말들이 어느 길고 긴 한권의 책보다도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아마도 그 말 안에 꾸밀필요 없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수 많은 미니홈피에 담겨 있는 짧지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바로 그 말 한마디 처럼 말이다



누구나 경험했던 그 순간의 한마디.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은 아름다운 동화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소설이 아니다. 누군가가 어느 노트 한 귀퉁이에 끄적였을 법한 작은 메모들의 모음. 바로 그것이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이라는 한권의 책이 되어 만들어졌을 뿐이다. 한 페이지를 읽는데에 10초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몇 글자 되지 않는 말들..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말들이 노트 한 귀퉁이에 버려지지 않고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누구나가 한번쯤은 끄적였을 법한 진실한 마음들이 그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화려한 치장도 섬세한 설명도 없지만, 마음에서 툭툭 떨어져 내린 것 같은 끄적임들 속에 어쩌면 당신도 어느 때인가의 나를 발견할지도 모르는 추억의 메모장. 그것이 바로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이다


일상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그리움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에 담겨있는 메모들은 많은 부분이 사랑에 관한 것들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랑의 끝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또, 일부분에는 일상에서 문득문득 들었던 짧은 단상들에 대한 끄적임들도 찾아볼 수 있다. 책으로는 쓸 수 없지만 너무나 진솔해 마음을 울리는 한줄의 메모부터, 일기처럼 나를 다독이기 위해 적어내려갔던 푸념들까지..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나만의 힘겨움이 아니라 누군가는 함께 경험하고 있는 보편적인 것들일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렇기에 나도 잘 이겨낼것이라는 응원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의 의미가 아닐까?
짧은 한마디가 전해주는 메세지.
가끔은 옛 성인의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명언보다 친구가 전해주는 짧은 응원이 더욱 큰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아니 사실은 매번 그 짧은 한마디가 나를 일어서게 하고 힘을 내게 하고 다시 살아 숨쉬게 한다. 나와 같은 세상에서 나와 같은 호흡을 하는 친구의 한마디가 오랜 시간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았을것만 같은 멀고 먼 성현의 말보다 나를 더 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에서 찾아낼 수 있는 위로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안에서 나와 같이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찾아내어 그 행복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가?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안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응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별에 힘겨워 하고 있는가?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에서 그 이별을 이겨낸 이들의 짧은 위로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잘 지내니? 한대, 나의 전부였던 사람>가 전달하고자 하는 마지막 메모는 아마도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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