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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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기와 혼란기였던 춘추전국 시대(기원전 770~기원전 221)에 중국 사상과 학문의 기초요, 동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위대한 사상이 가장 활발하게 출현했다는 것은 모순일까? 순리일까? 이 책을 펼쳐든 순간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이러한 아이러니였다. 흔히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고 하는데 이는 세상이 어지러운 때일수록 그것을 바로잡거나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려는 움직임 또한 평화로운 안정기에 비해 더욱 강렬하고 적극적인 다양성으로 나타나므로 일면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합쳐 역사상 550여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난세는 여러 영웅들을 불러냈을 것이고, 영웅의 활약상에 시대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역사관이나 세계관을 부여할 사상의 필요성까지 대두됐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지녔던 아이러니한 상황은 모순이 아닌 마땅한 순리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자백가의 출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 나라의 봉건제가 약화됨에 따라 각 지방의 제후들은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게 된다. 혈연 중심의 가족적 봉건제에 의해 세습되던 주() 왕조의 권력구조에 비해 뛰어난 지략과 능력을 겸비한 다수의 영웅들이 난무하는 춘추전국시대의 패권 다툼은 초야에 묻힌 실력 있는 인재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며, 나아가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한 차별화된 사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게 됐을 것이다. 제자백가의 출현은 이러한 사회적 혼란기에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시대적 부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상으로 이후 오늘날 중국문화의 사상적 토대요, 동양사상의 기초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칭에서도 알 수 있듯 제자백가(諸子百家)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다양한 사상의 학파와 학자들을 통칭하는 말로, 제자(諸子)는 여러 학자를, 백가(百家)는 수많은 학파를 뜻하는데, 이는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가진 학자들이 수많은 학파를 구성하여 자유롭게 학문을 닦았던 당시의 상황을 드러낸다. 제자백가 학파의 종류에는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한 유가, 엄격한 법으로서의 통치를 강조한 법가, 도덕과 법률의 인위적 잣대보다 자연 그대로를 본받아 살아가는 삶을 강조한 도가, 사랑과 평화의 삶을 강조한 묵가, 논리학파로도 불리는 명가, 군사론을 펼친 병가, 군주의 외교책을 논한 종횡가, 농업생산에 의한 자급자족의 생활을 주장한 농가, 음양5행을 조합하여 하나의 철학 체계로 만든 음양가, 제자백가의 다양한 이론과 주장을 절충한 잡가 등이 있다. 이들은 정치사상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중에서 공자는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바탕으로 유가를 창시하여 중국은 물론이요, 이후 조선의 이념적 통치사상의 축을 이루는 성리학으로 발전해 나간다. 유가 사상을 담은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 및 당대의 인물들이 서로 주고 받은 대담을 엮은 언행록으로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편찬한 책이며 이후 동양 고전의 핵심을 이룬다. 장자는 전국 시대 송나라 사람으로 공자 사후 100년 뒤 탄생했으며 노장사상을 구체화하여 도가의 중심을 이룬다. 이어 전국 시대에는 맹자가 그 체계를 확립한 유가와 묵자를 중심으로 한 묵가학파에 노자 학설을 구체화시킨 장자의 노장사상이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또한 자신들의 사상을 내세우기 위해 반대 학파(다른 사상)를 공격하기도 한다. 

 

 

히 묵자는 공자가 말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백성은 백성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에 신분 차이와 계급 의식이 숨어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공자가 말한 인이나 충, 효는 결국 상하질서를 아무런 불평 없이 순순히 따르라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지배계층이 하층민을 부려먹기 좋게 길들이려는 사상임에 틀림없다. 결국 공자는 겉으로는 어짊이란 그럴듯한 사탕발림을 하고 통치자, 지배자에게 빌붙어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백성들을 기만하고 있었다. 인의와 예악이라는 깃발을 흔들고 다녔던 위선자인 것이다.(p535)”

 

라며 공자의 상하질서를 전제로 한 사랑을 별애(別愛)로 치부해버린다.

 

 

 

자는 전국시대 초기에 활약한 묵가학파의 시조로 맹자와는 동시대 사람이다. ‘겸애교리(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두루 사랑하고 서로 이롭게 함)’, 반전론(反戰論), 박애와 만민평등, 절용 등 민생과 직결된 사상을 펼쳤으나 봉건 시대 위정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담은 <<묵자>>는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조선 시대에는 금서로 낙인찍힐 정도였다 하니 정치이념과의 이해관계가 사상의 흐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대략 짐작할 만하다. 어쩌면 묵자가 주장한 인본주의적 평등과 나눔의 철학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더욱 필요한 사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가 직설적인 화법으로 공자를 비판했다면, 장자는 좀더 우의적인 화법으로 비현실적인 유가의 이상론을 비꼬거나 겉으로는 성인군자인 척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공자의 표리부동함을 비난하면서 반대로 도가가 추구하는 무위의 다스림을 옹호하기도 한다. 공자가 자신을 알아줄 군주를 찾아 10여 년간 유랑한 것과 달리 장자는 초나라에서 제의한 재상자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만 보더라도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사상의 가치 요소가 외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 만하다. 공자 사후에 수많은 군주들이 앞다투어 ()’을 바탕에 둔 유가의 덕치주의를 정치이념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 또한 지배층과 권력층에게 유가 사상이 얼마나 덕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적인 사상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 호접몽은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본래는 나비인데 나비가 인간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그 경계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인간은 본시 하나로 겉모습이 나비나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은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는 철학적 경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변환을 거듭하는 자연이나 우주의 시공 속에서 인간의 편협과 아집, 집착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p48)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고 저자는 해석해 준다. 고전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독자의 이해도에 명쾌한 도움을 주는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소 필자의 관심도에서 멀었던, 아니 무지했던 <열자> 편은 내가 이 책에서 만난 가장 낯설고도 반가운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정나라 출생으로 노자의 후배이며 장자보다 조금 앞선 시대, 즉 공자와 맹자의 중간쯤에 생존한 인물인 열자는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을 동일시 여기는 물아일체와 무위자연 사상을 우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열자가 바람을 타고 다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허공을 밟고 바람을 타다편에서는 내가 바람을 타는 건지 바람이 나를 타는 건지 모를 지경’(p204)이라며 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 속 시비와 이해득실을 없애야 하고 그것이 소멸된 단계를 지나면 무심, 망아,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때 드디어 물아일체와 자연합일을 이룩할 수 있다’(p205)고 전한다. 전개 방식의 흐름만 보면 노자보다 장자에 가까운 사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자>, <장자>와 더불어 도가 삼서로 널리 읽히는 <열자>는 고전에 대한 압축적 교육만을 받고 자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기도 하나 심오한 사상의 경지는 노자, 장자에 못지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미로운 인물 중에는 법가 사상의 체계를 이룬 한비자도 독서의 중심에 있다. 한비자는 전국 시대 말 한나라 귀족 출신으로 선천적인 말더듬이인지라 변론에는 서툴렀으나 저술에는 뛰어났던 인물이다. 한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임금에게 간언하는 글을 올렸으나 한왕이 이를 외면하여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지 못하자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사상을 담은 <한비자>를 짓게 되었다(p272)고 한다. 한왕과 달리 진시황은 <한비자>를 읽고 감탄한 나머지 한비자를 신하로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 마침내 그의 법치사상을 바탕으로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위대한 영웅의 자질 중 하나는 인재를 귀히 여기는 태도, 시대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아닐까 싶어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 수록된 화씨의 보석편 역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어 위정자의 경솔함과 나태함에 대해 자질론을 떠올리게 한다

 

 

책은 중국 고전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익히 들어온 수많은 고사성어들을 그 유래와 함께 발생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 하에서의 본래 의도대로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조삼모사, 우공이산, 순망치한, 대기만성, 호가호위, 어부지리, 가정맹어호, 풍수지탄, 당랑거철, 백아절현, 새옹지마 등 친숙한 고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시대적 상황에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보편적 상황에서의 의미가 남아있는 오늘날의 통용되는 뜻과는 달리 각 고사성어가 품고 있는 우의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한 뜻은 당대 사람들을 감탄케 하기도, 뜨끔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중 나무의 그루터기를 지키면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의 수주대토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요행만 바란다는 뜻과는 달리 원래는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가 옛 성현들의 치국 이념을 그대로 따르려는 고지식한 유가들을 비판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히들 소문난 맛집에 가짓수만 많을 뿐 정작 먹을 게 없다지만, 이 책은 정갈하게 잘 차려진 한식 상차림처럼 중국 고전 10편에 대한 각각의 소개가 담백한 글 읽기로 꿀떡꿀떡 넘어간다. 이야기체로 술술 읽혀지는 데다 소개된 각 편마다 작가의 해설이 뒤따르는 고로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30여 년간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쳐온 저자의 약력이 고전 해석의 깊이를 뒷받침해주듯 단편적 일화 소개에 그치지 않고 고전이 우리 삶의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변형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자가 유독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공자><맹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장자><열자>, <한비자> 편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은 저자 개인의 선호도에 따른 편중으로도 볼 수 있겠으나 독자 입장에서 짐작하기로는 그간 역사 속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 특정 사상의 중요도보다 시대 흐름 속에서 재조명해봐야 할 다양성에 초점을 둔 편집량의 선택이 아니었을까?라는 추측도 해 본다. 개인적으로도 그간 접해볼 기회가 부족했던 <열자><한비자> 편이 가장 재미있고 유용했다. 이름이나 책제목 정도로만 들어왔던 <여씨춘추>, <회남자> 역시 소제목 그대로 격동의 시대를 평정한 사상의 완결판이라는 문구가 전혀 근거없는 말이 아님을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즈음은 인문학이 대세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여전히 대부분의 독자에게 낯설고 어려운 영역이라는 이미지를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2500여 년 전에 살았던 옛사람의 사상의 흔적을 쫓아가기란 시공의 차이가 너무도 크다는 압박감이 일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옛날에 쓰여진 오래된 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공감과 교훈을 자아내는 영향력을 지닌 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비록 어렵더라도 접근해볼 가치가 있으며, 바쁘더라도 시간을 낼 필요성이 있는 책임에는 분명하다. 이 책은 동양 고전의 핵심인 10편의 고전을 한 권으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그러나 내용이 가볍지는 않은 입문서와도 같다. 10편의 고전 중 저자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추려내 구성한 만큼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중국 고전 전반에 걸친 이해를 돕기 위한 출발서로는 꽤 매력있는 책이다. 쉽고 재미있고 의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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