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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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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관련된 책을 보고 있자니, 내가 손편지를 써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해 보게 된다. 요즘에는 손편지의 자리를 이메일이 자리하고 있지만, 손편지와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쯤 아마 많은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손글씨가 보기 어려워진 만큼 손편지 또한 보기 어려워졌다. 예전엔 옆에 앉은 짝꿍과 함께 쪽지를 주고 받기도 하고 편지를 주고 받기도 한 것 같은데, 이제는 손편지를 주고 받을 사람도, 기회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카드에 적힌 '생일 축하한다'는 짧은 문장에도 감동 받게 되는 요즘에 이렇게나 서로를 위하는 편지를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끼리 주고 받은 편지에 이렇게나 마음이 따스해 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 권정생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서 낸 책이다.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들 가운데서 뽑아 만들었다. 책은 3가지의 시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파트 나눔에 대해서는 '왜' 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게 약간의 함정이라면 함정. 이오덕은 권정생이 쓴 동화를 참 좋아한 듯 싶다. 그가 많이 아픈 채인 것을 알고 있고, 그의 생활이 많이 곤궁한 것을 알고 있어 이오덕은 그런 권정생을 어떻게든 돕고 싶어한다. 73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많이 와 닿지는 않으나, 돈을 보내는 것도 '인편'으로 보내야 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렇게나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다.

 

선생님의 건강을 항시 염려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건필을 빌고 있습니다. (31쪽 / 권정생  이오덕)

부디 몸 조심하시고 글 너무 쓰지 마시고 쉬시도록 바랍니다. 선생님은 좀 더 오래 사셔야 합니다. (58쪽 / 이오덕 → 권정생)

 

 

하지만 이들이 서로만을 알뜰히 챙기는 것은 아니다. 현재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자꾸 통속화 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동화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신진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역시나 같은 생각 (아동문학)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말이 잘 통했는지도 모르겠다.

 

대가들도 그렇지만 신인들의 창작 자세가 거의 타락 상태에 있는 것 같아요. 이준연, 권용철, 장욱순 제씨들의 작품은 시발점에서는 좋았는데, 요즘 와서 거의 통속화되어 버렸어요. 언젠가는 이분들이 부딪힌 벽을 뚫고 자기들의 바른길을 걸어갈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40쪽)

 

동화란 것을 심심풀이 오락물로 읽는 백만 명의 독자보다 단 백 명의 가난한, 그러나 슬기로운 어린이들과 진실한 삶을 찾는 젊은이들이 읽어 주는 것이 더욱 기쁘고 보람 있는 것이지요. (58쪽)

 

일본 동요곡을 어엿이 표절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문학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 이름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본 이름으로 등장되었다 해서 어려워한다니,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72쪽)

 

요즘 저는 아동문학에서 아주 철저하고 과감한 태도로 평을 쓰고 논리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동배, 후진 할 것 없이 친소를 막론하고 쓰고 싶은 것을 써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안일 무사주의와 문단 출세주의로 흐리멍덩하게 되어 있는 우리 아동문학을 일깨워 전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중략)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는 아동문학 작가들보다 일반 문단의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 더 많이 성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84쪽)

 

시골 어린이들 중에 동화책 한 권 못 읽는 것이 90퍼센트도 넘을 것 같아요. 대체 누구를 위해 아동문학을 하고 있는지, 목적 없는 뜀박질을 하고 있는 우리가 아닌지요. (113쪽) 

 

 

하지만 역시나 편지의 대부분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만날 장소를 잡고, 어긋난 만남을 아쉬워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끊임없이 건강은 괜찮은지 묻고, 거기에 끊임없이 답을 한다. 답장이 늦어서 미안하다고,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해서 미안하다고. 만나는 날보다 편지를 주고 받은 날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속에서 서로 지내고 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구나' 확인을 받는다. 그러면서 서로 안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편지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여실히 드러난다. 감성이 짙어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때 쓴 편지에 대한 오해를 풀기도 하는 부분에서인데, 왜 새벽에 편지를 쓰고 아침에 읽어보면 이불킥을 하고 싶을만큼 화끈거린다고 하지 않나. 그런 것들이 여실히 드러나 있기도 해 꽤 흥미로웠다.

 

 

어찌보면 단조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쁘게 보내야 했던 편지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문장들이 가득하기도 했고, 어떤 편지는 하고 싶은 말을 굉장히도 많이 적어 두었으나 두서가 없기도 했으며, 간단하게 안부만 물어왔던 편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중요성은 그런 것이 아닌 듯 하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어떤 존재가 있음으로서 살아갈 힘을 얻는, 더군다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데다, 마음이 잘 맞아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을 우리에게 굳이 보여주는 것은- 이 책 속에 여실히 담겨 있는 그 마음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전화를 하거나 화상통화를 하면 서로의 상태를 금방 알 수 있고, 또한 길도 많이 편해지고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 없는데다, 서로 만나기로 하면 금방 핸드폰을 통해 연락이 가능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만 볼 수 있던 '혹시나 오셨을까 해서 정류장에 나가 기다렸습니다' 라든가, '몸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계신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라는 이야기들은 퍽 생경했다. 그리고 낯설지만 따뜻함을 느꼈다.

 

 

만나기로 약속했다가도 '아직 나오지 않았으면 오늘 보지 말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서 불편한 와중에도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면서, 현실에서의 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둘러보게 된다. 역시 생각이란 것이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모양입니다. (99쪽) 라는 권정생의 말처럼, 생각이 잘 맞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과연 내 주변에 몇이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관심과 배려, 그리고 위로를 건네는 편지를 꺼내 읽기만 해도 즐거웠을 것만 같은 이 둘의 이야기.

 

보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두 사람의 마지막을 담은 몇 장을 제외하곤 따뜻한 책이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한 세상 살다 가면서 이런 사람 하나쯤 만들어 놓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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