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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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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고르는데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단연 제목이다. 그리고 글쓰는 사람의 책은 일단 믿고 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근데 이 책은 '제목'이 <다정한 편견>이고 손홍규 작가가 쓴 책이라고 한다. 어찌 손을 뻗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실 제목부터가 생각이 많아진다. '편견'에 다정함이 속할 수 있는 것일까? 편견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선을 그어버리는 행동인데, 거기에 '다정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니까 되게 그럴싸해지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도대체 다정한 편견이란 것이 무엇일까.

 

책의 절반은 '체험'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장'인데, 저는 전자가 조금 더 좋았습니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글이다. 이 한 문장만큼 <다정한 편견>이라는 책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은 없는 것 같아 적어보았다. 앞쪽의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과 2부 '선량한 물음'은 작가가 겪었던, 예전의 그 어느 날이 갑작스레 떠오르거나 잔잔하게 떠올라 쓴 글들이 대부분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글대로 작가가 겪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따뜻하다. (2부보다는 1부가 더 따뜻하다) 3부 '바느질 소리'와 4부 '다정한 편견'은 어떤 현상이나 대상에 대해 작가가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글들이 주를 이뤘다. 고개를 끄덕일만한 작가의 생각도 있었고, 폭풍공감을 하며 읽었던 나와 비슷한 생각도 있었으며, 읽으면서 별 생각 없었던 이야기도 있었다. '어른'의 시선이 잔뜩 들어간 충고와 조언의 생각들을 마주하면서, 비록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의 생각은 이런거구나'라는 걸 느꼈다고나 해야할까.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꽤 담담하게 꺼내놓고 있는 글이었지만, 그 글 속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은 아직 내가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듯하게 느껴졌다. 글에서 내공이 느껴지는 책은 또 오랜만이었다.

 

 

<다정한 편견>의 1부의 느낌은 구수한 고향집에 잠시 다녀가는 느낌이 드는 글들이다. 대체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시절 살았던 가난하지만 정겨운 시골 고향집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따금씩 정전이 되는지라 촛불을 늘 준비해놓기도 하고, 홍시가 익을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곶감을 만들던 그런 시골 고향. 그 속에는 작가를 위해 흙탕물을 달려오신 어머니가 계시고, 짜파게티 끓이고 난 후 버리는 물도 못내 아까워 소 여물통에 쏟으려다 면발까지 같이 쏟아버린 아버지가 계신다. 작가의 어린시절이 글 하나하나에 조금씩 조각조각 나뉘어 담겨 있는데, 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중에서 내가 마음에 들었던 에피소드는 '싸목싸목'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이다. 몇몇 울컥했던 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가의 고모가 늘 입에 붙인채 추임새처럼 넣어주던 단어라던, 내게는 꽤 생소한 단어인 '싸목싸목'. 

 

밥 한끼 베푸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대접할 게 없던 그 시절에는 밥상 한번 차려주는 것보다 더한 인정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싸목싸목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배가 불렀다. 바쁜 일 없으면 싸목싸목 오시게나,라고 해도 배가 불렀고 체할라, 싸목싸목 먹으렴, 이라 해도 배가 불렀다. (33쪽)

 

이상하게도 나는 한 번도 들어본 말이 아닌데, 작가의 고모님의 정이 마구마구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정이란 것이 생각보다 낯선 내 또래들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생경한, 그리고 꽤 부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우산'이라는 제목의 글도 되게 좋은 글로 추천한다.

 

 

2부는 1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체험이다. 길가다가 본 어떤 이주노동자의 눈물로 말미암아 '눈물'이라는 것을 생각하기도 하고, 언어살해자라고 불리는 영어를 생각하다 말고 '진정한 언어살해는 뜻이 통하지 않는 말,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판돈'이라는 인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농민의 서글픔을 생각하기도 한다. '다음생'이라는 제목의 글은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한다.

 

전생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바로 전생이다. 마찬가지로 미래가 다음 생이다. 오늘 오후가 그렇고 다음날이 그렇고 다음달이 그렇다. 다음 생에서 불안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 않다면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바로 지금부터 다음 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이번 생은 틀렸어. 다음 생에는 잘 살아볼 거야. 이렇게 투덜대던 벗이여 다음 생은 벌써 시작되었다. (83쪽)

 

 

3부의 글은 꽤 관념적인 단어들과 관련된 사유들이었고, 4부의 글은 현재의 대한민국 혹은 정치에 대한 사유들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은 앞쪽이었으니 3,4부는 좋은 글 몇 문장을 옮겨 놓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세월이 지난 뒤에야 나는 알게 될 것이다. 매번 깨달음은 한 걸음씩 늦게 찾아오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뿐이다. (165쪽)

 

우리는 가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기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줍기 위해 무릎을 굽히기도 한다. 삶은 이 멈춤과 침묵 없이 해석될 수 없다. 멈추고도 멈추지 않는 것 흐르고도 흐르지 않는 것. 우리의 삶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그 무엇이다. (187쪽)

 

때때로 혹은 자주, 공간은 냄새보다 강렬하게 과거를 환기시킨다. 사랑을 고백했다가 퇴짜를 맞았거나, 벗들과 정답게 술잔을 기울였거나, 그보다 더 우울했거나 즐거웠거나 사소했거나 상관없다. 우리가 부려놓았던 감정들만큼 공간은 의미가 있다. (247쪽)

 

사실, 책을 받아들자마자 '다정한 편견'이라는 제목을 가진 글부터 읽어보려했다. 하지만 '다정한 편견'이라는 글은 존재하지 않았다.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4부의 제목일 뿐이었다. 그래서 말도 안되게 내 방식대로 생각해 보건대, '다정한'은 1부와 2부를 지칭하고 '편견'은 3부와 4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4부의 제목이라서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왜인지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서평의 제목이 '다정한 쪽이 좋다'라고 지은 것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이 책 <다정한 편견>은 잘 쓰여진 책이다. 원고지 4.5매의 제약을 뚫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울 따름이다. 2페이지가 채 안되는 분량의 글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내고 그래서 읽는 이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 좋은 책- 그래서 나도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을 가져보려고 한다. 다정한 편견이라는 것이 세상속에 존재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편견들 속에 다정함을 살짝만 넣어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결국엔 '다정한'만이 남게 된다면 내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조금은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다정한 쪽이 더 좋은 나는, 편견을 다정하게 바꾸어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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