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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다 - 강제 징용자들의 눈물 ㅣ 보름달문고 37
문영숙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이웃나라 일본을 두고 흔히들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들 한다.
아닌게 아니라 지리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보다 가까운 나라가 어디있을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결코 가까울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유인 즉, 우리의 근대사를 가슴 아픈 상처로 만든 장본인이 다름아닌 일본이기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전근대화의 어둠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조선을 자신들의 세계화 야욕의 근거지로 삼아 마음껏 짓밟고 힘없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씻을 수없는 죄를 짓고도 여태껏 변변한 사과조차 없는 일본을 어찌 무덤덤하게 이웃나라로 규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호시탐탐 우리의 영토, 독도를 제 것이라 우겨대지 않는가.
그런 일본을 어찌 백 년이 흐른들, 천 년이 흐른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여길 수 있을까......
<검은 바다>는 잊을 수도 또 결코 잊어서도 안 되는 우리의 슬프고도 아픈 역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똑똑하던 형 강식이 일본 선생에게 맞아 하루아침에 허우대만 멀쩡한 바보가 된 후에도 장남에 대한 기대와 헌신을 버리지 않았던 부모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강재. 강재와 강재의 부모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감언이설에 속아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술이라도 배우고 좀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꿈에 고향을 떠났을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더러 영문도 없이 끌려온 천석이 같은 무리들도 있을 것이고......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둘도 없는 친구 천석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 강재는 그러나, 머지않아 자신들이 일본과 일본의 앞잡이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쓴이의 말'에서 작가도 밝혔듯이 바다 밑에 탄광이라니.. 소설 속에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일본의 조세이 탄광이 존재했었고, 또 그곳에서 강제로 끌려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하다가 수몰 사고를 당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이야기 속에서 강재와 천석이 감시의 눈길을 피해 막장내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첩보작전처럼 탄광을 탈출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이나, 무너지는 석탄 덩어리에 자신의 몸을 던져 강재를 구해준 박씨가 결국 숨을 거두는 모습 하나하나가 암울했던 우리 역사의 과거를 느끼게 한다.
천석이와의 첫 번째 탈출에 실패하고 탄광이 무너져 혼란스런 틈을 타 강재가 탈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땀을 쥐게 하며 아슬아슬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조선 아지매의 도움을 받아 허기를 달래고 천석이를 만나기 위해 제철소로 향하는 강재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결국, 애타게 찾던 천석이를 만나지 못하고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일본이 항복하고마침내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졌지만, 다시 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야하는 강재의 여정은 또다시 목숨을 건 사투와 다르지 않았다.
귀선표를 얻기 위해 부두에서 짐꾼으로 또 시체를 처리하던 강재가 운명처럼 천석이를 만났으나, 이미 예전의 천석이 아닌 원자폭탄으로 인한 검은 상처들로 정신마저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일본으로 떠나게 된 강재에게 천석이 쥐어준 나무부처를 다시 천석의 손에 쥐어주며 조국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강재가 건너던 그 바다는 과연 희망의 물결이 흘렀을까......
'이 작품을 통해, 나라를 잃고 억울하게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수많은 징용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더 나아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싶었어요. 고국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낯선 땅을 헤매는 한 많은 영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주고 싶었습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가끔 뉴스나 기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를 심심찮게 다루고는 하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과거사 청산인지 의문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위안부 문제든 강제 징용과 같은 문제든 실질적으로 피해를 당한 국민들의 아픔과 입장은 차치하고 정치적, 외교적으로만 풀어나가려는 정부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변변한 사과는커녕 시시때때로 독도를 자기의 영토라 우겨대는 일본을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나라로만 여길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는 치욕스런 과거를 우리의 근대사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