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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ㅣ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20
이청준 지음, 이진우 그림, 방민호, 조남현 감수 / 휴이넘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요즘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더없이 버거운 논술이 대입시험과 함께 대학입학을 위해 넘어야 할 어마어마한 양대산맥으로 가로놓여 있다. 그래서인지 학교주변이나 학원가에는 우후죽순으로 논술학원이 들어서고, 출판사들도 앞다투어 논술교재 및 논술용 문학작품들을 펼져내고 있다.
이 책 역시 '서울대 교수진이 내놓은 통합 논술'이란 수식어를 앞세우며 <교과서 한국문학>시리즈로 아이들의 논술에 힘(?)을 길러주고자 새단장을 하고 나온 모습이다.
요즘 논술이 초등저학년 심지어는 입학도 안한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학습의 대상이 된터라 표지의 그림이 사뭇 조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용의 핵심(주제)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지만, 초등고학년이나 중학생들에게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1976년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이청준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당신들의 천국'은 제목부터 이기적이다. '우리들의'가 결코 될 수 없는 '당신들의' 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1970년대 사회로부터 외면 아니 추방당한 나병 환자들의 도피처인 소록도에서 펼쳐지는 봉사와 희생을 앞세운 다양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이야기로, 읽는 내내 요즘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로만 치부하는 나 자신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난 나의 머리속에는 오히려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마치 지금의 모습을 미리 내다본듯한 작품의 내용에 놀랍기까지 하였다.
작품속에서 하나같이 소록도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치 자신은 무엇인가를 베풀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는 사람들, 지난날 소록도에 낙원을 건설하고자 했던 주정수 원장이나 사토 간호장을 비롯하여 지금의 조백헌 대령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소록도를 그들의 섬이 아닌 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의 섬으로, 그 섬에 만들고자 했던 천국이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이었다면 결코 무참하고 냉대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나 역시 꽃동네라 부르는 곳에서 학교일로 잠깐 동안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직접 그 속으로 들어가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나 역시 그들이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기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고 들어본 그들에게서 결코 가난과 소외는 그들만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들에게는 빈곤층으로서의 대접(?)과 대책이 당연히 실현되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했다. 오히려 현실을 무시한 각종 제도와 현실성없는 혜택으로 더욱더 그들을 깊은 수렁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후로 국가나 사회단체가 약속하는 그네들을 위한다는 복지정책이나 사회제도에 그다지 믿음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경험으로, 지금도 방송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하며 제3세계등에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회단체를 보면 코웃음부터 난다. 이유인 즉, 딸아이가 태어날 무렵 그 단체 역시 TV를 통해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태어나면서부터 병원신세를 진 딸아이를 보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이 들어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딸아이의 이름으로 국내 아이 한 명을 후원하게 되었는데 6~7년 정도 후원금을 보내고 드문드문 아이가 직접 만든 카드며 편지를 사진과 함께 받고는 하였다.
결코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 아이에게 누군가가 힘이 되고싶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기쁜 일이었기때문에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는 것말고도 아이의 생일이나 연말연시에는 정해진 후원금말고도 더 많은 돈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지로로 송금하던 것을 자동이체로 변경해달라는 단체의 요청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때그때 여유가 되면 더 많은 금액을 보낼 수 있는 지로를 고집하였다. 그랬더니 얼마 뒤부터는 아예 지로용지조차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단체로 전화를 해보니 지로방식은 처리비용이나 효율적이지 않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궁색한 변명을 들으며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방송에서는 당신의 1000원, 2000원이 소중한 생명을 구하니 어쩌니 하면서.... 결제방식이 비효율적이어서 그나마 후원을 마다하다니...... 결국, 나는 그 뒤로 그 아이와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도 그 아이로부터 받은 카드와 편지 그리고 사진을 가끔 보면 이런저런 불편한 생각과 아쉬운 생각이 머리속을 어지럽힌다.
나 역시 '우리'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마음 한 켠에 '너의 천국'을 만들어주고자 했던 자만이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며 문득 밀려드는 질문에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