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

 

 한참 전에 읽었던 벵상 욍베르의 책.

크리스쳔인 사람과 안락사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당연히 그 친구의 반응은 절대 안되지 였다. 우리의 목숨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하나님이 거두어 가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라고.

난 믿음이 없기에 사람답게 살 수 없다면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며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뇌사상태에 빠지거나 치매에 걸려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도 없고, 그들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라면.

평온하게,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기에 난 내가 죽을 때의 모습이 좀 두렵다.

큰 사고가 나서 코마에 빠져 수년을 깨어나지 못하거나, 정신은 있더라도 거동을 못하거나.. 그런 상황이 될까봐 난 무섭다.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난 누군가에게 나를 그만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것이다.

 

화상으로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 이지선씨. 사고가 나기 전 그녀는 얼마나 밝고 예뻤던지. 독실한 크리스쳔이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게 놔두지 그랬냐고 오열했던 그녀. 이런 시련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기에 주신 것이라 믿고, 살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그녀가 나로서는 이해못할 정도로 대단해보였다.

저러고 어떻게 살아. 하는 사람들의 말이 제일 가슴아프다는 그녀. 내가 그녀의 입장이 되어도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난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은주씨의 사망기사를 인터넷뉴스에서 읽었을 때, 또 무슨 영화를 찍나보다. 생각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젊고 재능있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손목에 주저흔이 남아있었고 그걸로 혈서를 썼다고.. 얼마나 절박했길래 목숨을 끊어야 이 고통이 끝난다고 믿었던 걸까. 손목을 그을 때의 공포를 극복할만큼.

그녀의 자살소식은 우리 병원 역시 떠들썩하게 했다. 내 방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박원장님.

"난 한 번도 죽고 싶단 생각은 해 본 적 없는데. "

맞은 편에 앉아계시던 김원장님.

"우리 식구들은 한번씩은 자살 생각 했었고 실행에 옮긴 적도 있습니다. "

박원장님 그래? 눈을 둥그렇게 뜨시더니 나를 향해

"당신은(상대를 지칭하는 호칭으로 가끔 당신이라 하심.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님 -_-;) 자살 생각 해본 적 없지요? "

난 웃으며

"저는 행복한데요. "

박원장님. 왈. 고민 좀 하고 살아라. -_-;;

사실은..

나도 죽고 싶었던 적이 있다. 5년전 쯤.

내게 일어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을 겪고 난 후, 난 죽어버리고 싶었다. 죽고 나면 이 고통은 끝나지 싶었다. 그러나, 죽지 못했다. 고통스러울 것이 무서웠고 남겨질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팠다. 그냥 이대로 살아서 내가 힘든 게 낫겠다 싶었다.

시간이 약이란 말.

가끔씩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지만.. 그래도 시간은 약이 되었다.

자살하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엄마는 그 사람들을 비난한다. 저렇게 죽고 나면 부모 가슴에 못박는 건 생각 못하냐. 저렇게 나약해서야 쯧쯧.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대단하다 싶다. 그 용기가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용기로 삶을 택할 수는 없었을까. 조금만 더 생각했으면. 그녀를 도울 누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죽음 뒤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콘스탄틴에서처럼. 자살한 자에게 안식이 없다는 무서운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녀 이젠 부디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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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onnight > 나는 이기적이다. -_-

얼마전 직원 회의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가 병원에 읽을 거리가 너무 없다. 환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드는 게 어떠냐. 는 의견이 나왔다. 멍하니 딴 생각을 하던 난 귀가 솔깃해졌다. 좋은 책들을 고르고 주문하는 게 너무 기분좋을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박원장님. 왈. 집에 책 많은 사람이 들고 오면 됩니다. -_-; 그러시는 거다. 그리고는 일제히 내게 와 꽂히는 시선들.

나는 책 욕심이 많다. 그냥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방에 두고 보고 싶다.

부모님은 서점을 경영하신다. 지금은 영리목적은 완전히 포기하고 -_-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논어,맹자,사서삼경 같은 한문책들을 주로 팔고 주변 상가 사람들이 찾는 가벼운 잡지같은 것들이나 몇 부씩 들어오지만 어렸을 땐 그래도 동화책, 만화책, 소설책전집이 가게에 꽉 차 있었다.

영주에서 서점을 하다가 초등학교 입학전에 대구로 이사 나왔는데 가게를 열기 전 며칠동안 책을 읽고 싶어서 끙끙 앓았었던 기억이 난다. 보다못한 엄마가 안겨준 것이 무지 두꺼운 백과사전 것두 의학관련 -_- 그 이후로는 조용해지더랜다.

집이 서점이다보니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가질 수는 없었다. 책에 줄을 긋거나 뭘 쓰는 것도 물론 절대 금지였다. 팔아야 했으니까. 가게를 보고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손님이 고르면 정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서일까. 돈을 벌게 되고, 난 '나만의 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나 책대여점도 더이상 가지 않았다. 누가 책을 빌려달라. 고 말하면 싫었다. 차라리 새책을 사서 선물했다. 선물할 만큼 친하지 않으면 그냥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면전에서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좀 보자. 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빌려줬는데 얼른 돌려주지 않으면 정말 안절부절이었다. -_-;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언니가 그런 케이스였는데 결혼한다고 병원그만두는 날이 낼모렌데도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전에 두어번 달라 했을 때 아, 그 책. 하더니 잊어먹었는지 잃어버렸는지.. ㅠㅠ 어디선가 울고 있을 내 책.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생각하며 밤잠 못 이루다 결국은 선배가 퇴근한 후, 몰래 선배의 방에 침투했다. -_- 꾸려놓은 짐들 속에서 내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ㅠㅠ 다시 원래대로 낑낑 이삿짐을 싸면서 원래 싫었던 그 선배가 몇 배는 더 싫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분명 있을 것이다(어쩌면 많을지도 ;;). 박원장님. 나랑 친하긴 하지만(친하기에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시는 거겠지만) 도대체 그 많은 책들 집에 쌓아놓고 뭐하냔다. 병원에 들고와서 대기실에 꽂아두면 위생사들도 읽고 환자들도 읽고 좋지 않겠느냔다. 내가, 책에 줄도 긋고 써놓기도 하고 해서.. 어쩌고 궁색한 변명을 하면(내 책 내가 갖겠다는데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도 이상하지만 -_-) 그렇게 요점만 밑줄 그어두면 더 읽기 좋지요! -_- 하시는데는 정말이지.. 사람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라요? 까지 나오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는 없다. ㅠㅠ

그래, 나 이기적이다. -_-

소유하게 되면 집착하게 될 뿐이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안다. 윤대녕의 책을 읽어보니 그도 그토록 사모았던 책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더라고 했다. 그리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책들, 음반들을 타인과 함께 그 느낌을 나누고자 기꺼이 빌려주곤 한다는 얘기들도 듣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못하겠는 걸 어쩌냐. ㅠㅠ

내가 밑줄긋고 포스트잍 붙여가며 열심히 읽었던 책들, 다른 사람들이 귀퉁이 접거나 침 묻히며 읽는 모습을 본다면 난 분명 전전긍긍 하다 우엥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추하다. -_-;)

어쩐지 그건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비밀스런 일기장을 모든 사람들이 돌려읽는 거나 비슷한 기분.

난 그냥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란다. -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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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onnight > 영감님 쾌차하셔용 m(__)m

점심시간에 밥을 5분만에 먹고(바빠서 좋아하는 계란찜을 하나도 못먹었다. 훌쩍 ㅠㅠ) 조**선생님 병문안을 갔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 -_-;

우리과 1대 선배인데다 카리스마가 굉장해서 첨 뵜을 땐 조폭 두목인 줄 알았다. ㅠㅠ 그래도 생각보다 다정하시고 따스한 면도 있으셔서 존경하는데.. 요즘은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어쩔 수 없는 영감님-_-이 되시는 바람에 잔소리가 넘 심해지고 삐치길 잘해서 경계하고 있는 중이다.

근데 뜬금없는 다리 수술이라니.

테니스와 골프를 무척 좋아하시는데 적당히 즐기시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하드하게 -_- 치시는 분인데 15년전부터 양쪽 다리가 시큰거리셨다나. ;; 피로골절이란다. 이번에 양쪽 발목과 오른쪽 무릎의 뼈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으셨다는데.. 그걸 알면서도 지난 설때는 친구분들과 치앙마이로 골프여행(3박4일이나 -_-;)도 다녀오시는 등. 절룩거리시면서도 온갖 일은 다 하셨다니 놀라울 뿐이다 ㅠㅠ

원래 까만 얼굴이 더 까매지셔서(안 씻었기 때문이겠지? ;;) 초췌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양호한 모습이셨다. 원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길래 1년 후배인 Y과 나는 옆침대에 앉아있는데..

M아. 너도 올해는 결혼해야지.

갑작스러운 말씀과 함께 공격 -_- 도대체 이유가 뭐냐, 정신적인 문제냐 (맞다. 성격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건만 입이 안 떨어졌다. -_- ) 남들 하는 건 다 해 봐야지. 결혼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어찌할려고 그러냐. 등등등.. ㅠㅠ

게다가 함께 간 쌍둥이아빠인 후배에게도 (챙피하게!!) 남자 소개시켜주지 않고 뭐하냐고 야단치셨다. ㅠㅠ

후배는 소개시켜줄려고 말꺼내면 누님한테 더 혼난다며 일러줬다. -_-;

영감님이시니 -_-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어쩔 수는 없지만.. 왜 사람들은 결혼을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인데 뭔가 문제가 있어서 낙오된 사람으로 취급하는 건지 ..ㅠㅠ

다수가 아닌 건 잘못된 거. 라는 생각.  가끔 나 자신도 갖고 있는 걸 느끼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바른 생각. 편견없는 생각으로 살고 싶다.

영감님. 제 걱정 너무 하지 마세요. 잘 살아가겠습니다. 얼른 나으셔서 퇴원하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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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onnight > 내가 나빴던 게 아니다.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윤대녕의 책은 재미있다!

라는 명제와도 같은 평을 여러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을 훨씬 이전에 주문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찾을 수가 없다. 읽어야 할 책무덤속에서 울고 있는 것인지도-_- ) 그리고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역시 그렇군.

이었다. 그리고 난.

... 많이 울었다.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손이 바빴다. 산문과 소설의 중간형태라는 작가후기를 읽고서야 이거 실화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던 의심을 접고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다. 때로 현실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거고 소설은 삶보다 더 건조한 것이니까.

삶의 어느 순간에 등장해 함께 걸어가다 기억속으로 사라져간 사람들. 작가는 그들을 '버스 정류장에서 함께 버스에 올라탄 승객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 열 두명과 한 사람이 나누는 삶의 이야기들, 그들이 들은 음악들, 먹은 음식들, 취한 술들을 내 머리로, 가슴으로, 눈으로 함께 했다. 이제는 어쩌면 남은 생애 다시 못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추억, 그 애틋함이 녹아 있는 이야기들은 참 좋았다.

마지막 이야기, 매기의 추억에서 눈물은 터졌다.

미란. 그가 오래토록 사랑했던 누이. 말을 아끼고 오래 참고, 자신의 슬픔 같은 건 안으로만 삭였던 그녀가 찡하게 와닿았지만 나를 그토록 자극했던 건 매우 개인적인 이유였다. 

 

 

'가난은 사춘기의 여자아이에게 치명적인 수치심을 안겨다준다.

아이가 옷장속에 남몰래 저축한 돈으로는 가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토록 예민한 시기에 생이 누추하다는 것은 곧 불행이다.

가난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적어도 아이들의 일이 아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해서도 안된다.

그러한 부모는 적어도 자신이 아이들이 남 앞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라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진한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하다. 설사 가난하더라도 아이의 기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그것을 극복하는데 어쩌면 평생을 다 써도 부족할지 모를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알고보면 그다지 강한 존재가 아니다.

어려서 받은 상처나 속박의 굴레는 죽을 때까지 벗어던지기 어려운 게 사람살이의 또다른 이면이다. '

 

 

나의 집은 가난했다. 찢어질정도로 가난해서 세끼 밥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포시랍기만한 불평이랄 수도 있겠지만 두살터울의 삼남매가 함께 나란히 학교에 다니기에 넉넉하지 못했다. 유교적,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전형적인 경상도사람인 부모님께는 아들이 우선이었다. 중간에 박힌 딸이었던 난 중고교를 다니는 동안 수업료가 늦어서 수업시간에 호명되어 일어나야 하는 일이 너무 싫었었다. 엄마를 졸라 당시 유행했던 유명메이커 운동화를 사들고 들어온 오빠와 남동생. 다 떨어져서 안에 넣어둔 스폰지가 드러나보이는 내 싸구려 운동화를 외면하는 엄마. 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다락방에 숨었었다. 1등한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내밀었을 때도 엄마는 잘했구나. 그렇지만 오빠에겐 일등했다고 말하지 마라. 기죽는다. 라고 말씀하셨다. 상고에 진학한 친척 언니가 집에 왔을 때 내게 너도 여상 가서 일찍 돈벌면 좋겠다. 그러셨었다.

지금 부모님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실까?

당연히 못하실거다. 내가 부모님께 잘못한 일들을 기억 못하듯.

그분들은 내게 상처주려고 그러셨던 게 아니니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히, 더 열심히 사는데도 현실이란 녀석은 자꾸만 더 무거워지고 자꾸만 더 멀리 달아나기만 하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셨던 거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던 거다.

텔레비젼에서는, 선생님들은, 책에서는 한결같이 그랬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단지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고.

그랬기 때문에 가난해서 불행하다고 느꼈던 사춘기의 난 무척이나 죄책감을 느꼈었다.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네 집에 가서 느꼈던 비참함이 잘못된 거라고, 우리집은 왜 이렇게 가난한 걸까. 원망했던 마음은 정말로 나쁜 거라고 생각했었다.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돈 많이 벌어라. 딸 덕분에 우리도 호강 한 번 해 보자. 엄마의 그 중얼거림이 초등학생이었던 내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되었다. 정작 엄마로서는 그저 가벼운 한탄 정도였을텐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난 아마도 평생 결혼않고 혼자 살 거 같다. 생각했던 건 그런 책임감이 이유의 일부일 것도 같다.

어제밤. 책속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면서, 가슴속 무언가가 시원하게 씻겨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나빴던 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거 같았다. 고마운 줄 모르는 계집애라는, 어린애였던 내가 들어야 했던 야단이 언제까지고 내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는 표현인 거 같아서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움츠러들곤 했던 난 허리를 쭉 펼 수 있을 것만 같다.

한 권의 책이, 한 줄의 글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다..

겉으로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대도 나는 어제와는 다른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작가의, 글의 힘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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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onnight > 눈이 온다.

점심시간에 영어수업을 하다가, Park 선생님이 it's snowing!! 외쳤다.

모두, 오오오~~~ ^^

지난 겨울, 지지난 겨울엔 눈이 꽤 많이 왔던 거 같은데 올해 대구는 눈이 너무 귀하다. 와도 쪼금씩 아껴내린다. 그나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택도 없다 -_- 고 했던 성탄 전야에 내린 눈은 정말 기뻤지만.. 것두 거의 비 비슷했었다.

오늘은 흩날리는 눈발이 눈에 보일 정도로 꽤나 탐스러웠는데..

지금은 가느다래져서 역시 비 비슷해졌다. -_-;;

눈은 비 만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겨울엔 눈이구나. 폴폴 내리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해도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십여년 전^^; 당시 남자친구랑 가까운 산에 놀러갔다가 눈땜에 오도가도 못 할 지경이 되었었다. 히치하이킹-_- 을 해서 트럭 짐칸에 올라타고서 겨우 시내까지 나와 집으로 갈 수 있었다. 통금시간을 넘겨버려서 엄마에게 무지무지하게 혼났던 기억이.. 훌쩍. ㅠ_ㅠ

그리고 몇 년 전이었던가. 혼자서 해리 포터- 2편이었을 거다. - 를 보고 나왔는데 허걱. -_-; 왠 눈이 그렇게 많이 왔는지. 대구에 드물게 눈 많이 온 해였던 거 같다. 우산도 없이 머리위로 눈이 쌓이고 발밑에는 푹푹 눈밟히는 소리가 나고.. 버스 끊길까봐 조금 불안했지만, 어깨를 감싸안고 눈내리는 밤 데이트를 즐기는 쌍쌍들 속에서 혼자였지만 외롭진 않았다. 그때 문득, 혼자서 이 눈오는 밤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라고 느꼈었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집까지 가는 길도 참 행복했던 거 같다.

그리고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 비랑 반반 섞인 눈을 맞으며 술을 마시러 갔다. ^^ 술집 많은 골목엘 가서 어딜 갈까 두리번거리다 70년대 고등학교 교실을 재현해놓은(추억의 7080분위기) 막걸리집엘 갔다. 김치찌개를 시켜놓고 처음엔 막걸리로 시작해서 백세주로.

크리스마스와 너무 안 어울리는 거 아니냐. -_- 고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서 항의를 받았지만 뭐. 난 와인보다는 소주쪽인뎅 ;;

알딸딸-_-;하게 취한 후에 노래방엘 갔었다. 음주가무를 즐기지만 능하진 못한 난 숫자만 열심히 눌렀다. westlife의 my love,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beatles의 I will, 휘성의 불치병, k-pop의 추억의 향기 등등.. 카테고리없는 선곡들을 실컷 감상했었다. 교회 성가대라더니, 노래 정말 잘한다. 부럽다. ㅠ_ㅠ

문득 눈오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가 듣고 싶어졌다. 어제 밤에 읽은 윤대녕의 소설 비슷한 에세이집에 나온 곡이라 그럴까? 엘튼 존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배경음악이 되면 잘 어울릴 듯..

밖으로 나가서 돌아댕기고 싶다. ㅠ_ㅠ

참. 근데 윤대녕의 책에선 we are fall in love sometimes로 적혀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하지만 we all이 맞는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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