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onnight > 나는 이기적이다. -_-
얼마전 직원 회의
이런 저런 얘길 나누다가 병원에 읽을 거리가 너무 없다. 환자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드는 게 어떠냐. 는 의견이 나왔다. 멍하니 딴 생각을 하던 난 귀가 솔깃해졌다. 좋은 책들을 고르고 주문하는 게 너무 기분좋을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박원장님. 왈. 집에 책 많은 사람이 들고 오면 됩니다. -_-; 그러시는 거다. 그리고는 일제히 내게 와 꽂히는 시선들.
나는 책 욕심이 많다. 그냥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방에 두고 보고 싶다.
부모님은 서점을 경영하신다. 지금은 영리목적은 완전히 포기하고 -_-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논어,맹자,사서삼경 같은 한문책들을 주로 팔고 주변 상가 사람들이 찾는 가벼운 잡지같은 것들이나 몇 부씩 들어오지만 어렸을 땐 그래도 동화책, 만화책, 소설책전집이 가게에 꽉 차 있었다.
영주에서 서점을 하다가 초등학교 입학전에 대구로 이사 나왔는데 가게를 열기 전 며칠동안 책을 읽고 싶어서 끙끙 앓았었던 기억이 난다. 보다못한 엄마가 안겨준 것이 무지 두꺼운 백과사전 것두 의학관련 -_- 그 이후로는 조용해지더랜다.
집이 서점이다보니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가질 수는 없었다. 책에 줄을 긋거나 뭘 쓰는 것도 물론 절대 금지였다. 팔아야 했으니까. 가게를 보고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손님이 고르면 정말 마음이 아팠었다.
그래서일까. 돈을 벌게 되고, 난 '나만의 책'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이나 책대여점도 더이상 가지 않았다. 누가 책을 빌려달라. 고 말하면 싫었다. 차라리 새책을 사서 선물했다. 선물할 만큼 친하지 않으면 그냥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면전에서 내가 갖고 있는 책을 좀 보자. 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빌려줬는데 얼른 돌려주지 않으면 정말 안절부절이었다. -_-;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배언니가 그런 케이스였는데 결혼한다고 병원그만두는 날이 낼모렌데도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 그전에 두어번 달라 했을 때 아, 그 책. 하더니 잊어먹었는지 잃어버렸는지.. ㅠㅠ 어디선가 울고 있을 내 책.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생각하며 밤잠 못 이루다 결국은 선배가 퇴근한 후, 몰래 선배의 방에 침투했다. -_- 꾸려놓은 짐들 속에서 내 책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ㅠㅠ 다시 원래대로 낑낑 이삿짐을 싸면서 원래 싫었던 그 선배가 몇 배는 더 싫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분명 있을 것이다(어쩌면 많을지도 ;;). 박원장님. 나랑 친하긴 하지만(친하기에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시는 거겠지만) 도대체 그 많은 책들 집에 쌓아놓고 뭐하냔다. 병원에 들고와서 대기실에 꽂아두면 위생사들도 읽고 환자들도 읽고 좋지 않겠느냔다. 내가, 책에 줄도 긋고 써놓기도 하고 해서.. 어쩌고 궁색한 변명을 하면(내 책 내가 갖겠다는데 왜 변명을 해야 하는지도 이상하지만 -_-) 그렇게 요점만 밑줄 그어두면 더 읽기 좋지요! -_- 하시는데는 정말이지.. 사람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라요? 까지 나오면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는 없다. ㅠㅠ
그래, 나 이기적이다. -_-
소유하게 되면 집착하게 될 뿐이며,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안다. 윤대녕의 책을 읽어보니 그도 그토록 사모았던 책들,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더라고 했다. 그리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이 자신이 좋아했던 책들, 음반들을 타인과 함께 그 느낌을 나누고자 기꺼이 빌려주곤 한다는 얘기들도 듣고 감탄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못하겠는 걸 어쩌냐. ㅠㅠ
내가 밑줄긋고 포스트잍 붙여가며 열심히 읽었던 책들, 다른 사람들이 귀퉁이 접거나 침 묻히며 읽는 모습을 본다면 난 분명 전전긍긍 하다 우엥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추하다. -_-;)
어쩐지 그건 나만이 간직하고 싶은 비밀스런 일기장을 모든 사람들이 돌려읽는 거나 비슷한 기분.
난 그냥 이기적인 인간으로 살란다. -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