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선생님의 철학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1
고병권 지음, 정문주.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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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자유고 공부고 우정이고 행복이다. 생각한다는 것이 다르게,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고 따라서 삶을 다르게, 새롭게 사는 것이란 정의가 신선하다. 우리는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습관과 편견, 통념대로 사는 것일 뿐이고 그렇게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악마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생각한다는 것이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도 재미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는 나는 이미 이전의 나와는 다른 존재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그만큼 나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나의 자유도 커진다. 또한 그만큼 삶을 살아가는 기술과 행복도 커진다. 그러나 철학은 혼자 할 수 없다.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친구가 있기에 공부도 자유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 친구를 갖기 위해선 내가 먼저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삶, 내 운명과도 친구가 되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남들의 말이나 관습, 자신의 편견에 빠져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마치 꿈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꿈속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잠을 자고 있는 것이듯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p.62

다른 음식을 먹듯 술도 즐길 수 있는 사람과 술 아니면 못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르지요. 자유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요. 다르게 생각하는 힘, 다르게 살아가는 힘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롭습니다. p.95

혼자의 힘으로는 ‘다른 생각’, ‘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가 어렵습니다. 혼자서 나의 편견과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힘들지요. p.111

서로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람, 서로를 공부하게 만드는 사람,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사람, 여러분 그런 사람이 되세요. p.113

처음에 저는 철학을 ‘잘 사는 기술’이라고 불렀어요. 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게 산다는 말이겠지요? 철학은 삶을 잘 가꾸는 기술, 즉 행복하게 사는 기술이지요. 그런데 행복한 삶을 위해서 철학이 제시한 기술은 무엇이었지요? 바로 생각하는 것이었지요. 철학은 잘 살기 위해서 ‘생각을 하자’고 말합니다. 그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뜻이었지요? 그것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그냥 무턱대고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켰다고 무조건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책이나 신문에 나왔다고 무조건 믿는 것도 아니지요. 잠자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생각한다는 것은 습관이나 관습, 통념, 편견 등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새로운 생각을 낳을 때 우리는 그때 ‘생각한다’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새로운 삶을 낳는 일이라고 말했지요? 우리가 새로운 생각, 새로운 삶을 낳을 때, 우리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를 배운 것이고요. 그것이 공부입니다. 여러분, 공부는 쉬지 않고 해야 합니다.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공부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놀지 말고 만날 책만 읽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놀이도 공부가 될 수 있지요. 우리에게 다른 생각, 다른 삶을 만들어 준다면요. "이만큼이나 공부했으니 이제 공부는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걸을 때도, 이야기할 때도, 놀 때도 배울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배우지 않읗려는 사람, 더 이상 공부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고집쟁이가 될 뿐입니다. 공부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자유란 공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지요. 편견이나 습관, 통념에서 벗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자유를 느낍니다. "나는 여기까지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런 한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갈 때 자유가 시작된답니다. 그러고 보니 한계는 우리의 자유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시작되어야 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여러 번 말했듯이, 혼자서는 자기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공부할 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철학은 친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군가의 친구가 되세요.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삶, 여러분의 운명과 친구가 되세요.... 행복하게 산다는 것, 생각한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 친구를 만든다는 것, 이 모든 말들이 ‘철학을 한다’는 말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p.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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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스트로프이론이란 플라톤의 형상철학이 형상의 속성으로 규정한 불연속성을 기술하는 것 같다.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불연속의 점들을 카타스트로프의 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넘어가는 형태 발생을 일으킨다. 즉 형상에 대한 현대적인 규준으로서의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 발생을 연구하는 것이 카타스트로프이론인 것이다. 플라톤이 질료와 형상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형상의 불연속성을 분석했다면, 베르그송은 물질과 생명이라는 연속하는 두 실재가 타협한 결과물이 불연속적인 사물들(물체와 생명체)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카타스트로프이론은 연속성이 아니라 불연속성에 주목함으로써 변화의 양적 측면이 아니라 질적 변화를 기술하고자 한다. 즉 위상학의 연장선상에서 불연속의 존재론을 시도하는 것이다.

역자서문_위상학과 존재론


이어짐과 끊어짐, 연속과 불연속의 이러한 착종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개념들, 제도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우리는 이를 존재론적 분절의 문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연속/불연속의 문제이자, 하나/여럿의 문제이자, 같음/다름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존재론은 개별 과학들의 근본 원리들을 검토함으로써 그들의 가능성의 조건을 드러내는 선험적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p.13~4


엘레아 학파는 운동을 환상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자연철학을 좌절에 빠지게 만들었으나, 그것은 또한 앞으로의 자연철학이 나아갈 기본적인 방향을 정초해준 것이기도 했다. 이 기본적인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1) 운동이 성립하려면 다와 불연속이 정립되어야 한다.

(2) 파르메니데스의 주장과는 달리, 실재는 불연속적인 어떤 존재들이며 오히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운동)은 연속적이다.

(3) 현상의 연속성과 복잡성은 이러한 불연속적 존재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되고 얽혀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연철학의 작업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1) 실재, 즉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 궁극적인 요소들은 무엇인가.

(2) 이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어 우리가 감각적으로 확인하는 현실(나타나 있는 실재), 즉 운동을 형성하는가. p.16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질료/형상의 이원적 구도를 그 근간으로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있어 철학이란 이 질료와 섞여 있는 형상을 순수하게 정련해서 드러내는 것이 된다. 즉 질료는 아페이론의 성격을 지니며 이 아페이론적인 성격이 형상을 그 자체로서 존재하지 못하도록 만듦으로써 이 세계를 운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질료적인 차원의 질서는 혼돈스럽고 유동적인 흐름(flux)의 세계이지만 이 질료의 질서가 형상의 질서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비로소 우주는 질서를 지니게 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p.17~8


이러한 질료-형상설의 구도에 있어 질료는 연속성의 성질을, 형상은 불연속성의 성질을 부여받게 된다. 질료는 하나의 흐름이며 어떠한 극한도 지니지 않은 아페이론의 세계이다. 이러한 질료가 어떤 우주적 질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형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즉 질료에 어떤 극한이 부여됨으로써 시작과 끝이 있는 구체적 사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형상은 질료에 극한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하며 무한을 테두리지을 수 있는 불연속성을 그 필수적인 속성으로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불연속을 찾아내는 것이 형상철학의 중요한 작업이며, 나아가 이러한 작업 즉 분석의 작업이야말로 서구 합리주의 사상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p.18~9


베르그송은 세계의 연속성을 실재로 본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연속성은 아페이론으로서의 연속성이 아니다.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연속성은 운동하는 연속성, 질적 생기로 가득차 있는 연속성, 생명의 창조력으로 차 있는 연속성이다. 그래서 그의 철학에는 두 실재가 있게 된다. 하나의 실재는 아페이론으로 화하려는 경향을 그 근본적인 성격으로 가지고 있는 물질이며,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질적인 차이를 생성시키고자 하는 약동하는 에너지로서의 생명이다. 이 두 실재는 모두 연속성을 그 기본 성질로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들, 불연속성을 띠고 있는 개체들은 이 물질과 생명이라는 두 실재가 말하자면 타협한 결과들이다. 그래서 베르그송에 있어 기본적인 구분은 물체와 생명체가 아니라 물질과 생명이다. 물체도 생명체도 물질/생명 간의 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베르그송은 물질/생명의 운동을 우주의 ‘하강운동’과 ‘상승운동’으로 표현하며, 이 두 운동이 교차한 결과가 물체나 생명체 등의 사물들인 것이다. p.20


연속/불연속의 개념쌍은 서로 상관적인 것이며 서로 상대적으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간의 양자택일이란 무의미하다. 그러나 베르그송 이후 과학 및 철학의 흐름은 존재론의 맥락에서든 다른 맥락에서든 불연속에 무게중심을 두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슐라르의 불연속의 철학, 양자 비약의 개념에 근간하는 양자역학,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 아날 학파의 역사학, 불연속적인 계열의 개념에 근간하는 구조주의적 인간과학들, 미셸 푸코의 새로운 역사철학, 토마스 쿤의 인식론 등이 모두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세계에 대한 포괄적인 불연속의 존재론에 도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위상학은 불연속을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기법을 제시했다. p.21~2


톰의 이론이 다루고자 하는 우선적인 대상은 구조적 안정성이다. 구조적 안정성이란 형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현대적인 규준을 의미한다....어떤 작은 범위 내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이 공간은 불연속이 존재하는 공간이며 이 불연속의 점을 카타스트로프의 점이라고 부른다. 이 카타스트로프의 점은 하나의 형태가 다른 하나의 형태로 넘어가는 형태 발생을 구성한다. 카타스트로프이론이란 이 구조적 안정성과 형태발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p.23


카타스트로프이론은 사물들의 양적인 측면들보다는 그 질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즉 중요한 것은 어떤 점에서 카타스트로프의 점이 발생하는가, 사물들의 질적인 변화에 있어 포착할 수 있는 특이성들은 어떤 것들인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카타스트로프이론은 변화 과정의 양적인 측면들은 문제시하지 않으며 그 변화의 불연속성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일종의 질의 과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p.24


근대 과학의 승리는 연속성과 시간의 정복에 의한 승리라고도 할 수 있으며 베르그송의 철학은 이러한 맥락에서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위상학의 연장선상에서 카타스트로프이론은 다시금 불연속의 파악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바슐라르가 말한 ‘순간의 직관’에 대한 빼어난 과학적 예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p.25


과학과 철학이 하나로 뭉쳐 있을 때 진정한 의미의 과학/철학은 성립한다. 그러나 과학과 철학이 분리될 경우, 과학은 기술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며 또 철학은 종교나 주관적 사변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철학은 그것이 객관적인 인식에 즉 과학에 토대를 두었을 때 철학이다. 과학의 근본 원리들을 검토, 비판하고 보다 깊은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철학의 역할인 것이다....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19세기 이후 전개되어온 칸트, 헤겔로 대변되는 사변적·주관적 철학 전통이 아닌 오귀스트 콩트, 베르나르, 쿠르노 등에서 연원하는 실증적·객관적 철학 전통이 복구되는 일이다...이 프랑스 메타과학의 전통이 복구될 때 우리의 철학도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p.27~8


들어가면서


모든 과학들은 무엇보다도 우선 어떤 현상에 대한 탐구입니다. 한 과학의 대상이 되는 현상들은 형태학에 의해 파악되는 공간, 즉 우리가 기저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공간 내에서 발생하는 일정한 형태를 갖춘 사물들로서 등장합니다. p.31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실험과 단순한 관찰을 구분함으로써 과학들을 대략 두 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여기에서도 역시 어떤 이상화가 개입합니다...어쨌든 ‘연구하기’ 위해서는 즉 인식하고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형태학은 어떤 ‘안정성’을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안정성의 개념은 하나의 직관에, 형태학적 유형에 관련된 모든 탐구들에 있어 요구되는 기본적인 조건에 관련되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안정성이 일종의 보조적인 가설, 하나의 전제 나아가 하나의 도그마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p.36~8


형태학은 모체(카타스트로프적인 점들의 집합 K)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성질들에 있어서의 불연속성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통상적인 양적인 방법들은 이러한 불연속성들을 기술하기에 부적절한 해석학적인(즉 연속적인) 함수들을 사용합니다. 이 불연속적인 경우 환원주의는 난관에 부딪힙니다. P.41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과학이 과거에 종교가 했던 것과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오늘날의 과학은 인류의 종말론적 희망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죠. P.48


보다 거대한 이론적 노력을 그리고 과학이 정치적인 요구에 연루되지 않고서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학제성을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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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즐길 수는 없을까? 민음 바칼로레아 28
브노아 리토 지음, 곽은숙 옮김, 김인수 감수 / 민음인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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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학습의 비결을 찾아서' 라는 부제가 무색할 만큼 별다른 비결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수학자로서 저자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학에 대해 진저리치는 말을 듣다 보니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나 보다. 수학이 일반 사람들에게 왜 낯설고 어려운 것이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리고 그런 점을 감안하고라도 수학은 결코 낯설지도 어렵지도 않음을 강변하고 싶었나 보다. 그의 말을 믿어도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기꺼이 용기를 내게 된다. 수학 속으로 뛰어들어 정면돌파하겠다고 말이다. 더 읽어볼 책을 참고해도 좋겠다.

수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즐기려면, 확실히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그것은 수학의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학 속으로 뛰어들어 정면돌파해야 한다.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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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는 것 - 오항녕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3
오항녕 지음, 김진화 그림 / 너머학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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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기억과 관련있다. 그 기억은 무엇을 위함인가. 성찰과 희망을 길어올리기 위함이다. 지은이는 역사기록의 의의가 인간이란 존재가 대등하게 만나는 장에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역사라는 시간의 지평에서 모든 인간은 위계없는 대칭적인 존재인 것이다. 국가와 왕의 출현 이후 사라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칭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역사(기록). 그러나 기록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왜곡되고 독점되어 대칭성을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현대 사회에서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보공개제도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형식화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실질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조선의 문치주의를 꽃피우게 한 것과 같다. 삶의 궤적이 역사이며 그것을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과거는 이야기로 기억되며 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지속성과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며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p.32

사냥의 성공을 기원한다든지, 점을 친다든지 하는 용도에서 벗어나, 뭔가를 더 기억하려는 목적에서 기록이 등장하면서 ‘역사’라는 관념이 시작됩니다. p.45

차차 사람들은 "나라는 망할 수 있어도, 역사는 사라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p.48

흥하고 또 망하는 문명이나 국가, 왕조 등과는 달리, 인간에게 기억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곧 인간이란 존재가 대등하게 만나는 장이다, 그렇기에 그런 문명들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뜻이 아닐까요? 그러나 근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를 ‘진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인간, 현재의 인간, 미래의 인간 사이에 위계가 생겨 버립니다. 대칭성이 다시 붕괴됩니다. p.64

오랜 기간 합의와 관행을 쌓고 역량을 쌓은 결과, 사림들이 정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선조 연간 이후에는 ‘사화’의 범주에 넣을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조선의 문치주의가 꽃피고, 실록이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믿을 수 있는 기록’이 되었던 이유였습니다. p.86

시민들 누구나 자신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정보라도 적절한 절차를 거쳐 알고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정보공개제도입니다. 정보 공개가 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정부가 독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면,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맙니다. p.103

바로 여러분의 삶이 흐르는 길, 하루하루가 만들어지는 리듬이 곧 역사이며, 그것은 기록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잘못된 일을 성찰하게 하여 삶을 깊이 있게 해 주고, 잘한 일은 흐뭇하게 떠올리게 하여 삶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합니다. 성찰이든 희망이든, 우리를 저 깊은 속에서부터 뿌듯하게 해 주는 무엇이 아니던가요?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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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혁명

-당연히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상적인 범위 바깥의 통계라 불리는 것에게. 스티븐 스펜더

 

이 장에서는 진자로 대표되는 동역학계에 대한 카오스 연구자들의 관심과 동역학계의 복잡성을 이해함으로써 계의 물리학적 본질이 아니라 새로운 기하학적 본질을 보여준 스메일, 목성의 거대 반점이 카오스와 안정의 공존, 즉 무질서 속의 구조임을 증명한 마커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혁명은 종종 학제적 성격을 띤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각자의 분야에 고립되어 있던 기상학, 물리학, 천문학, 수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정상과학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험실의 과학은 현실세계의 신호를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 없었다. 진자의 규칙성에 내재한 불규칙성과 진공관의 불규칙한 잡음 문제를 해결한 것은 결국 수학자의 몫이었다. 위상수학에 정통한 스메일이 계에 변화가 생길 때의 전체 운동 행태를 편자 모델로 가시화함으로써 로렌츠가 발견한 초기조건의 민감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커스는 컴퓨터를 사용하여 난제였던 목성의 거대 반점이 자기조직화하는 안정된 카오스 계라는 것을 밝혀냈다. 스스로를 카오스 전문가로 지칭한 일은 카오스 이론이 드디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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