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이 적어도 소크라테스 이전까지는 완전히 일치했다. 철학 또는 과학이 발생할 때 우주에 대한 사색으로 시작되었는데 이 우주가 어디서 왔느냐는 문제는 뒤에 나오고 처음에는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우주를 이루고 있는 근본이 무엇인가? 근본 물질이 무엇인가? 이런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초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 하고 우주론(전체적인 우주, 나아가서 그 내부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정량적(주로 수학적)인 연구를 말한다)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이 철학이고 동시에 과학이다. Science is what you know, philosophy is what you don't know 과학은 우리가 아는 것이고,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다.(버트란트 러셀) 철학에서 아무리 살림을 많이 낸다고 하더라도 철학의 영역은 계속 무한한 것으로 남는다.

과학과 철학이 사색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도구를 만드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산물은 기술과 예술이다. 기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과학의 발생은 우리가 배경을 보면 하나의 신화에서 논리로 넘어 오는 그 과정에 있다. 신화시대에 자연을 해석하되 어디까지나 초자연적인 힘을 빌려가지고 했었는데 이제는 초자연적인 것은 차단을 하고 자연의 원리는 자연 안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철학이나 과학이라고 한다면 또 기술은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 시작했는데 과학으로 넘어오면 그것을 끊어버리고 어디까지나 그 자체를 위한 지식이 된다.

방대한 지식에서 원리적이고 순수하고 예지적인 부분은 철학이 맡고 좀 더 경험적이고 실용적인 쪽은 과학이 맡고 일종의 역할분담이 생겼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는 그 분화가 점점 진전이 되가지고 중세를 거쳐서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과학의 분리과정이 계속된다. 19세기에 오면 과학과 철학의 분리가 아주 두드러져가지고 독일의 대학에서 과학과 철학이 완전히 과목으로 분류가 된다. 과학은 처음에 철학과 함께 출발하면서 기술과 완전히 분리가 된다. 처음에 참 신기한 분리인데 과학은 그 기원에서 기술에 힘을 많이 입었는데도 그리스의 과학은 기술과 상당히 다른 길로 발전한다. 상호작용이 별로 없다. 그것은 과학에 종사한 계급과 기술에 종사한 계급이 완전히 다르다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이 가까워진 것이 과학 혁명이다. 산업혁명의 특징은 처음에 증기기관이라던가, 방직기계라는 것은 별로 과학과 관계가 없는 순수한 기술의 전통의 산물이다.

그 다음에 19세기말쯤에는 전기학이라던가, 유기학이라던가 하는 것은 단순한 장인전통을 가지고는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복잡해진다. 여기에서는 정말 그 기술전통과 과학전통이 아주 밀접하게 협조를 하게 되서 과학적인 기술 기술적인 과학 이런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점점 경향이 심해진 것이 오늘날의 과학기술인데 지금의 과학은 철학과는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할 정도로 멀어졌다.

대개 19세기는 과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불렀다. 과학 혁명 이후에 인문적인 요소, 철학적인 요소를 계속 제거하면서 수학화, 기계화, 가속화한 결과 오늘날은 아주 추상적이고 맹숭맹숭하고 아주 재미없는 내용이 되어 버렸는데, 한편 과학은 기술하고 굉장히 가까워져가지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심동체가 되었다. 어디가 과학이고 어디가 기술인지 명확한 경계선을 그을 수 없을 정도로 과학과 기술이 융합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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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전국시대에 대한 비판과 진단

천자가 봉건 제후(公,侯,伯,子,男)를 세우고 통칭 공이라 하고 천자는 왕이라 했다. 공은 사방 최대 100리, 천자는 사방 1000리의 영토를 다스렸다. 천자와 제후가 두는 관리는 大夫, 士, 庶人이었다. 특히 천자의 대부는 제후급이었다. 왕이 중심이 되는 정치가 왕도정치이고, 제후가 좌지우지하는 정치가 패도정치였다. 춘추전국시대는 주왕조시대인데, 이전의 하왕조의 걸왕을 폐위하고 역성혁명으로 은왕조를 세운 탕왕은 天命미상을 내세워 천명은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은왕조는 하늘에 대한 제사(禮)를 통해 자신이 천명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예에는 천명을 계속해서 받고 싶은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은왕조의 주왕에게는 문왕과 무왕(부자관계)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무왕이 주왕을 치고 주나라를 세웠다. 무왕도 천명미상을 내세워 역성혁명을 정당화했다. 하늘에 제사만 지낸다고 해서 천명을 붙들어 둘 수 없음을 알고 民心天心을 말했다. 민심을 얻기 위한 지배층의 규율로서의 예가 확대되어 정착되었다. 여기서 예절, 예법이 등장했다. 그리고 德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생겨나고 예치, 덕치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자가 점차 천자답지 못하게 되자 제후들도 점차 존경심이 약해지고 춘추시대에는 오패가 등장하고 전국시대에는 천자가 아주 약해지고 대부들이 제후국을 찢어 갖게 된다.

춘추시대 수십개의 제후국이 전국시대 7개 제후국으로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숱한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제후들이 자신을 왕이라고 칭했다. 전국시대 왕들은 군사적, 문화적으로 우월성을 강조했다. 위나라 양혜왕(卑禮厚幣)이 현자들을 초빙해서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질문했다. 맹자는 인의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내 나라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을 왕들이 한다면 대립과 투쟁이 그칠 수 없다. 이로움의 속성은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이로움이란 끝이 없는 것이다. 이로움과 해로움을 초월하는 기준은 의로움이다. 이로움을 추구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제후들이 이로움을 추구하므로 천하가 어지러운데 이로움을 버릴 때 최고의 이로움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 맹자가 하고자 한 말이었다. 正名.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 주왕조가 왕의 경계로 삼은 덕목은 保民 如保赤子이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야 할 왕이 오히려 백성을 착취하여 가축을 살찌움을 비판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정벌, 의로운 전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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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 대해 어떤 사람인지 대답을 못한 것을 공자가 추궁했다. 자로는 왜 공자에 대해 대답을 못했을까? 자로는 공자를 더 위대한 모습으로 설명하고자 했으나 공자가 생각하는 스승의 상은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움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두고 30세에 섰다는 것은 규모가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40세에 불혹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50세 지천명은 변곡점이고 60세, 70세는 완숙되어 가는 경지였다. 지천명이란 인간의 삶이 생각대로 영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사람이 하는 영역이 있고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사람의 일을 다 해야만 실망하거나 미련이 남지 않게 된다. 천명을 알게 되면 여유있게 삶을 대하게 된다. 지천명에서부터 이순, 종심욕구불유구가 가능하게 된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둔 이후로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을 말하고 싶어한 것 같다. 공자는 잘 가르치는 모습이 아니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스승에게 보여주는 최소한의 예물이 속수다. 속수는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으려는 마음의 징표다. 공자는 그것을 중시했던 것이다.

온고이지신은 어떤 사람이 스승이 될 만한가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동일한 것이 변하기 이전이 고이고 변한 이후가 신이다. 이 변화는 지적인 작용과 관계있다. 변화를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 온이다. 온은 식지 않도록 계속해서 데운다는 뜻에 가깝다. 배움의 온도를 지속적으로 가해서 새로운 배움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 스승인 것이다.

공자는 배움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승이 되었다. 스승이 없었던 공자가 스승이 된 것을 보고 제자들은 공자가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을 생이지지자가 아니라 옛을 좋아해서 누구보다 민첩하게 구한 사람이라고 했다. 공자는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서 배웠다. 스승이 없다는 악조건을 승화시킨 데에 공자의 뛰어남이 있다.

술이부작이란 말이 참 공자다운 말인데 작은 창작이다. 창작이란 없던 것을 처음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술이란 있던 것을 좀 더 보완해서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공자가 했던 모든 말은 옛 사람이 했던 말을 자기화해서 전해주었을 뿐이다.

조문도 석사가의, 그 정도로 도를 듣는다는 것이 가치있다는 뜻이다. 인간다운 삶의 길이 가치있으며 그런 길이 있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공감하고 합의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라 각자 멋대로 가려고 한다.

군사부일체.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고 임금은 나를 장성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스승은 나를 가르쳐준 분이다. 스승은 나의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스승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스승은 도를 전수하고 학업을 제공하고 미혹을 풀어준다. 개인이 아니라 도를 스승으로 삼는다.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계신 곳이다. 전통사회의 위계질서는 나이와 지위가 결정한다. 그러나 도를 알고 사는 것은 나이와 지위도 중요하지 않다. 전통사회에서 스승을 임금과 아버지와 같은 지위로 본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규정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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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 - 이찬수 선생님의 종교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6
이찬수 지음, 노석미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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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집중력이다

지금 나는 졸리고 피곤해서 눕고 싶고 자고 싶다. 그런데 내가 졸리고 피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순간, 갑자기 졸음이 가시고 몸이 상쾌해진다. 무언가를 분명하게 아는 순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왜 졸리고 피곤한데 누워서 자지 않았는가. 자고 나면 졸리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으며 졸려도 자지 않는 쪽을 선택했는가. 나는 마술을 보면서 그것을 알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런 바람(희망, 꿈)이 있기 때문에 집중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집중력이 바로 믿음인 것 같다. 그런 믿음이 졸음과 피곤함마저 이겨내게 한 것 같다. 믿음은 어떤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믿음에는 한계가 없다

믿음은 지금 당장의 현실만을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멀리 그리고 좀 더 깊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 한계에 갇히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그 한계를 알 수 없다.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히 있는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믿음과 소망은 필요가 없지만 사랑은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전에는 믿음과 소망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믿음은 노력하는 과정이다

졸리고 피곤할 때 편한 것을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냥 잘 것이다. 그리고 자고 나서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해낼 때까지 노력할 것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해내든 해내지 못하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믿을 수 있다.

 

믿음은 사랑하고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라기 때문에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것이다. 집중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 사랑하고 바라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은 어떤 가치나 사실을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적 상태이자, 적절한 이해, 건강한 지성, 희망적 기대, 용감한 결단 등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p.101

신이 모든 곳에 있다는 말이 신이 ‘하나’, 즉 유일신이라는 말의 핵심입니다. 신이 하나라는 말은 단순히 여러 가지 것 중의 하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p.110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으니 그 신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됩니다. 비유하자면 신은 자연법칙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시시각각 구름의 이동 모습을 관찰하고서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관찰하고 말하는 사람의 눈과 귀까지도 자연법칙에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신은 경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경험의 대상은 일부나마 말로 표현해 볼 수 있겠지만, 경험의 주체이기에 그 말 안에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그렇게 보고 듣는 주체에 가까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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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부모는 야합(예를 갖추지 않고 결혼)해서 공자가 태어났다. 공자의 이름은 名-丘, 字(관례이후)-仲尼(본댁에 형이 있었음)이다. 성장과정에서 본댁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가난하게 성장한 공자가 어떻게 유학이란 사상을 펼치게 되었는가? 공자는 지도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좋은 지도층이 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지 지도층을 옹호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천자를 통해서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했다. 난세에 대처하여 고민하는 지식인은 은자적이거나 현실참여적인 두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유가와 도가는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유가는 봄, 여름과 같아서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고, 도가는 가을, 겨울과 같아서 인간이 생산을 할수록 부정적인 면도 커지는 것을 비판하고 깨부수려고 한다. 유가가 서 있는 장은 인간이 인간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영합하지도, 그렇다고 은자적이지도 않은 중용의 지점을 찾아가려는 것이 유학이고 공자의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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