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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다는 것 - 이찬수 선생님의 종교 이야기 ㅣ 너머학교 열린교실 6
이찬수 지음, 노석미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12월
평점 :
믿음은 집중력이다
지금 나는 졸리고 피곤해서 눕고 싶고 자고 싶다. 그런데 내가 졸리고 피곤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순간, 갑자기 졸음이 가시고 몸이 상쾌해진다. 무언가를 분명하게 아는 순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왜 졸리고 피곤한데 누워서 자지 않았는가. 자고 나면 졸리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무엇을 바라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으며 졸려도 자지 않는 쪽을 선택했는가. 나는 마술을 보면서 그것을 알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다. 그런 바람(희망, 꿈)이 있기 때문에 집중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집중력이 바로 믿음인 것 같다. 그런 믿음이 졸음과 피곤함마저 이겨내게 한 것 같다. 믿음은 어떤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믿음에는 한계가 없다
믿음은 지금 당장의 현실만을 보는 게 아니라 좀 더 멀리 그리고 좀 더 깊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 한계에 갇히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 지 그 한계를 알 수 없다.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영원히 있는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언젠가 꿈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믿음과 소망은 필요가 없지만 사랑은 마지막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전에는 믿음과 소망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믿음은 노력하는 과정이다
졸리고 피곤할 때 편한 것을 좋아하고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냥 잘 것이다. 그리고 자고 나서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을 바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해낼 때까지 노력할 것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과정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길임을 믿는 것이기도 하다. 해내든 해내지 못하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믿을 수 있다.
믿음은 사랑하고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나는 바라기 때문에 믿는다. 믿는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것이다. 노력한다는 것은 집중한다는 것이다. 집중한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믿는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을 바탕으로 모르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거나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면 사랑하고 바라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온전한 믿음은 어떤 가치나 사실을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내적 상태이자, 적절한 이해, 건강한 지성, 희망적 기대, 용감한 결단 등이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p.101
신이 모든 곳에 있다는 말이 신이 ‘하나’, 즉 유일신이라는 말의 핵심입니다. 신이 하나라는 말은 단순히 여러 가지 것 중의 하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전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p.110
모든 것이 신 안에 있으니 그 신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됩니다. 비유하자면 신은 자연법칙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시시각각 구름의 이동 모습을 관찰하고서 모든 것은 자연법칙에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관찰하고 말하는 사람의 눈과 귀까지도 자연법칙에 따릅니다.... 마찬가지로 신은 경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해 주는 주체이기도 합니다. 경험의 대상은 일부나마 말로 표현해 볼 수 있겠지만, 경험의 주체이기에 그 말 안에 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그렇게 보고 듣는 주체에 가까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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